사람과 자연을 함께 치유하는 ‘함덕 해원상생굿’
[연재] Peace At Jeju(9) - 문영임
2025년 4.3항쟁 77주년 스물세 번째 찾아가는 현장위령제가 제주 민예총 주최로 11월 1일 제주 함덕 서우봉 언덕 아래에서 열렸다.
해원상생굿이란 생소한 이름도 4월도 아닌 11월에 4.3 위령제라니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인가 궁금했지만 버스를 타고 1시간이나 걸려서 제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벌써 멀미로 어지럽고, 오한이 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터미널에서 함덕까지도 1시간이고, 집으로 돌아오려도 1시간이니 오도가도 어렵기 마찬가지라 약국에서 멀미약을 사먹고, 잠시 쉬었다 함덕으로 향했다. 잠깐 잠들었다 싶었는데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방향감각을 다시 잃어버렸다. 이러다가는 행사 끝나고 도착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다행히 CU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의 도움으로 가까운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멀리 장대에 걸린 영기가 보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다행히 산오락회 노래패의 김강곤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아직 순서가 되지 않았다고 하니 터미널에서 돌아가지 않은 보람이 생겼다. 해원상생(解寃相生) 굿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 산자와 죽은 자가 서로 통하도록 길을 여는 상징적인 굿이라고 한다. 2002년 다랑쉬굴에서 희생된 유골이 발견된 10주년을 기념으로 시작된 해원 상생굿은 올해로 23번째다.
4.3학살이 일어난 제주 전역에 걸쳐 비극적 죽임을 당한 ‘학살의 터’를 찾아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상처받은 장소, 즉 ‘죽임의 장소’였던 자연의 공간까지도 함께 치유하는 ‘상생의 굿’이며 ‘생명의 굿’이라고 한다. 이 굿은 인간과 자연이 동시에 치유되어야 할 대상임을 일깨우는 일이며, 이제는 죽음의 터전이 되어버려, 상처로 인해 몸서리치는 ‘죽은 땅’을 되살리는 ‘회생의 제의’라고 했다.
내 자신이 기독교인으로 오랫동안 여러 예배를 드려왔지만,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치유한다는 의식은 없었던 경험에 비해 죽은 자의 한을 풀고, 산자의 애환을 위로하면서도,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인간들에 의해 피폐해진 땅과 자연을 치유한다는 의미가 아주 새롭게 와닿았다.
4.3항쟁 해원상생굿을 하는 제주큰굿보존회는 서순실 심방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이날 굿도 주도했다. 먼저 영혼이 저승의 좋은 곳으로 가도록 기원하는 시왕맞이 굿판에는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이 줄지어 붙어있어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우상숭배니, 귀신이니 하면서 굿을 터부시해왔다. 나도 굿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아서 일체 관심이 없었지만, 한날 한시에 왜 붙잡혀 죽는지도 모르고 한 가족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이런 위로의 굿이라도 없었다면 어지 그 한(恨)을 잠재우고 한 날인들 살 수 있었을까 싶다.
서순실 심방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니 여기저기 어른신들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옆에 앉은 두 할머니는 연신 절을 드린다. 당시 7살이었는데 10살 위의 언니가 살해되었다고 하는 할머니는 언니가 총살당한 그 날을 단 하루도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가정에서 드리는 차례도 있지만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희생당한 현장에서 드리는 위령제는 더욱 절실하게 영령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한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만 당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웃이 함께 당한 죽임이고 애환이니 서로가 함께 위로할 수 있고, 이런 공개된 위령제가 마을 전체를 위로할 수 있는 큰 역활을 할 수 있겠다.
11월 1일 오늘, 함덕리에서 처음으로 공개 총살이 벌어졌다. 함덕리 주민 1명을 포함해 6명의 청년들을 끌고 나와 “앞으로 폭도와 연락하거나 식량을 제공한 사람은 이렇게 된다”며 시범 처형을 하려고 하는 토벌대를 말리던 항일운동가였던 한백흥 초대이장까지 무참히 살해했다. 이후 배고픔과 추위,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중산간을 헤맸던 많은 젊은이들이 토벌대에 발각되는 즉시 처형됐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4.3에 대한 역사의 왜곡이 계속되고 있지만 상생굿을 통해서 진실이 밝혀지고 미래세대에게 진실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시왕맞이 굿이 끝나고 추모공연으로 사단법인 마로의 창작 공연이 있었다. 제주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창의적인 공연 형식을 탐구한다고 소개되었다. 전통 타악과 거문고, 대금에 맞쳐 고혜수 님의 소리와 박수현 님의 춤은 아련한 회한과 살아있는 사람들을 회개하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있었다. 함덕유족회장인 한문용시인의 ‘관투모살에 뜬 달무리’ 시낭송과 산오락회 최상돈님이 작곡한 ‘함덕서우봉서’ 노래와 ‘아기 동백의 노래’가 이곳에서 잊혀져간 사람들의 회한을 기억하게 했다.
중간에 김밥과 컵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이어서 질치기와 뒤맞이가 있었다. 저승길을 닦아 영혼을 위무하고 저승길로 보내는 시간이라는 길치기에는 18살 미만의 어린 나이에 학살당한 어린 청년들과 아기들의 이름이 일일이 불려졌다. 누가 누군지 시체 수습도 할 수 없도록 바다에 던져버리거나 불살라 버려졌을 영혼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해주는 것은 비록 78년 전 사람들이지만, 분명히 세상에 뜻을 갖고 태어났을 인물인 것을 이제라도 제대로 불러주고, 어지럽던 시절에 무참하게 살해되었어도 귀한 생명이였던 그 이름의 주인이 이제라도 제대로 저승길에 갈 수 있도록 깨끗한 옥양목과 지전과 다랑이경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한다.
4.3 함덕 해원상생굿을 설명해주는 책자에는 이곳 함덕에서 있었던 민중의 역사가 간략하게 소개되어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 21일에 있었던 만세운동부터 해방이후 1949년 1월 19일까지 함덕리에서 있었던 군경과 무장대의 관계와 두 집단에 의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총살되거나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1948년 11월 1일부터 1949년 4월까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덕리에서 크고 작은 학살 사건이 이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된 아름다운 함덕 모래밭도, 오늘 해원상생굿이 열리고 있는 서우봉의 해안을 오르는 사람들의 그 발길에서도 끔찍했던 양민학살이 있었던 바로 그 피의 땅과 바다, 모래밭이라는 걸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화해상생굿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바램일 것이다. 제주 4.3 항쟁의 슬픔을 애기 동백꽃에 빗대어 노래한 가사를 다시 한번 새기고자 이곳에 옮긴다.
애기 동백꽃의 노래
최상돈 작사.작곡
산에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리면
들판에 붉게 붉게 꽃이 핀다네
님 마중 나갔던 계집아이가
타다 타다 붉은 꽃 되었다더라
님 그리던 마음도 통꽃이 되어
하얗게 님의 품에 안기었구나
우리 누이 같은 꽃 애기동백꽃
봄이 오면 푸르게 태어나거라
묽은 애기 동백꽃 붉은 진달래
다 같은 우리나라 곱디 고운 꽃
남이나 북이나 동이나 서나
한 핏줄 한 겨레 싸우지 마라
애기 동배 꽃 지면 겨울이 가고
봄이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울긋불긋 단풍에 가을이 가면
애기동배 꽃 피는 겨울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