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배제 조건에서 한국 중립국 추진 가능성 점검
[연재] ‘중립화 담론’과 한미동맹⑨(최종회) - 고승우
1. 중립국화 추진 시 고려사항
한미동맹을 배제한 조건 하에서의 중립국을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 자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기는 하나 국제정세는 급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작업을 생략할 수 없다.
한국이 장기적으로 중립국 지위를 추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한미동맹을 전제로 글의 앞부분에서 살펴보았는데 지금부터는 한미동맹의 요인을 배제하고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는 기존의 중립국들의 경우와 수평 비교해 보자는 취지도 있다.
최근 국제정세가 미국의 독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중립국의 의미가 재조명되면서, 한국 역시 기존 동맹 중심 외교전략의 대안으로 중립화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은 지정학적 조건, 국력, 국민적 합의라는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중립국의 장단점, 기존 중립의 특성과 한국의 특성 등을 살피면서 한미동맹을 배제한 조건 하에서의 한국 중립국 추진 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정리했다.
중립국(Neutral State)의 개념은 군사적 동맹을 거부하고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등 역사적 경험을 가진 국가들을 중심으로 중립국의 장단점이 국제정세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다. 중립국의 기본 장단점은 외교, 안보, 경제,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 장점 : 평화 노력과 국제적 신뢰
중립국은 전쟁에 직접 휘말릴 위험을 줄이면서 국제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스위스 사례처럼 국제법적으로 중립성이 법적 보장을 받으면 침략 억지 효과도 기대된다. 이러한 외교적 중립성은 국제 신뢰와 위상을 높이며, 갈등 당사국 사이 중립 외교 공간을 제공해 국제기구 유치를 가능케 한다. 예컨대 제네바가 유엔 유럽본부를 유치한 것은 중립국 지위에서 비롯된 국제적 자산이다.
경제 측면에서도 전쟁과 제재의 직접적 피해를 피하고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금융과 서비스, 무역 등 평화적 산업 육성에 유리하며 해외 투자 유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내부적으로도 특정 진영에 편입되지 않아 국민 자율성 확대와 군사비 부담 감소라는 사회적 안정성을 확보한다.
- 단점 : 안보 취약과 외교적 고립 위험
중립국은 군사 동맹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자체 방위력 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국제법적 중립 보장이 무력화될 경우 침략을 막기 어려워지며, 역사적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가 독일 침공에 직면한 상황이 대표적이다.
외교적으로도 강대국 간 대립에서 소극적 태도로 비춰져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고, 압력이나 고립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군사 동맹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혜택을 포기함으로써 국제 협력에서 밀려날 위험도 존재한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자주적 중립과 안보 불안 사이의 균형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돼 사회적 갈등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며, 중립 유지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 결론 : 방위력과 국제관계에 달린 성공 여부
중립국의 성공 여부는 국력과 국제사회 내 위상·주변 강대국의 인식에 크게 좌우된다. 스위스처럼 강력한 자위력과 국제법적 보장을 갖춘 경우 중립국이 성공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국제정치의 부정적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
중립국화는 단순한 평화선언 이상의 실질적 조건들이 요구되는 현실적 도전이며, 자국 이익과 안보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전략적 국가 운영의 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중립국 제도는 국제평화에 공헌하는 한편, 안보 전략과 외교 다변화 측면에서 장단점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중립을 희망하는 국가는 강력한 방위력과 외교적 신뢰 구축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2. 기존 중립국들이 공유하는 공통점 분석
중립국은 전쟁과 국제 분쟁에서 어느 한 편도 들지 않는 외교 정책을 채택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중립국들은 공통적으로 지정학적 위치, 국력, 국제적 보장, 그리고 국민적 합의라는 네 가지 핵심 요소를 공유한다.
기존 중립국들은 강대국 사이 완충지대로서 지정학적 요인을 지니고, 독자적인 자주 국방과 탄탄한 경제력을 갖춘 중견 규모 국가들이다. 국제 강대국들의 법적 승인과 내부 국민들의 확고한 동의가 중립국 존속의 핵심이다. 중립국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지정학, 국력, 국제적 관계, 그리고 국민적 정체성이 어우러져야 한다.
이들 국가는 미국·중국 같은 초강대국에 비해 작은-중간 규모 국가(인구 대부분 500만~1,000만 사이)인데 스웨덴만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이다. 자원은 다양하다. 스위스·아일랜드는 천연자원이 빈약한 대신 금융·서비스로 국제적 틈새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스웨덴·핀란드는 자원(철광석, 목재, 수력)이 풍부하고 이를 기반으로 첨단 제조업이 발전했다.
지정학적 위치를 보면 면적·인구가 크지 않아도 지형(알프스, 산림, 해양)과 주변의 강대국이 중립화에 합의한 것 등이 중립 유지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또한 자체 국력과 국제 보장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인구와 자원이 제한적이어도 경제·외교 역량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스위스처럼 금융·외교 자본으로 “작은 나라지만 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기존 중립국들의 공통적 특징을 면적·인구·자원 관점에서 보면 초강대국도 아니고, 약소국도 아닌 중견 규모 국가가 대부분이다. 면적과 인구는 작아도, 경제적 틈새 경쟁력과 지정학적 위치가 중립국 성립의 핵심 조건이었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 지정학적 위치 : 강대국 사이 완충지대
대부분 기존 중립국들은 유럽과 북유럽에 위치하며 강대국 사이 전략적으로 민감한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스위스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강대국 사이에 알프스라는 천연 요새와 함께 중립국 지위를 유지한다. 오스트리아는 냉전 시 미국과 소련 사이 완충지대였고, 핀란드는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 접경지로 ‘핀란드화’라는 특수한 중립을 실현했다. 스웨덴과 아일랜드도 각각 북유럽과 대서양 지역에서 전략적 위치를 갖고 있다. 이처럼 중립국은 지정학적으로 ‘틈새’ 국가로 존재하며, 강대국 간 힘의 균형으로 중립이 존중된다.
- 국력 : 자주 국방과 탄탄한 경제력
중립국은 자체적으로 최소한 자국을 방어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스위스는 의무병제와 알프스 방어전략으로 ‘전국이 요새’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스웨덴과 핀란드 역시 군사동맹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강력한 자주 국방체제를 유지한다.
경제적으로는 금융, 첨단제조업, 기술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갖춘 나라가 많은 편이다. 예컨대 스위스는 금융·제약·정밀기계, 스웨덴은 철광석·IT·무기 산업, 오스트리아와 핀란드는 교육과 기술 강국으로 분류된다. 코스타리카처럼 군대를 폐지한 특수 사례도 있으나, 대부분 중립국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군사적 자립성을 보유한다.
- 국제적 합의 및 보장 : 강대국의 동의 필요
중립국 지위는 주변 강대국들의 법적 합의와 국제적 승인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스위스는 1815년 빈회의에서 영구중립국으로 국제적 승인을 받았으며, 오스트리아는 1955년 국가조약에서 미·소·영·프 강대국의 승인을 받고 중립을 선언했다. 핀란드는 서방과 소련 양측의 묵인으로 현실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중립국으로서의 안전과 주권 보장은 국제 강대국들의 공식 또는 암묵적 합의가 필수다.
- 내부적 합의와 국민적지지 : 중립은 국가 정체성
대부분 중립국에서는 국민적 합의가 중립 정책의 근간이다. 스위스는 중립과 직접 민주주의를 국가 정체성으로 간주하며, 스웨덴은 ‘비동맹과 평화 추구’라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오스트리아도 중립을 국가 독립과 동일시하며 내부적 지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중립은 단순 전략을 넘어서 국민적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3. 한국 중립국화 가능 조건 분석
한국이 중립국화(Neutralization)의 조건을 충족하는지 따져볼 때, 기존 중립국들의 사례와 비교하면 뚜렷한 강점과 한계가 드러난다. 한국의 중립화는 국력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현실과 국민적 합의라는 이중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중립국 논의는 단순히 외교 전략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장기적 국가 비전과 직결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력(경제력, 국방력) 면에서 기존 중립국보다 훨씬 강력하며, 지정학적으로는 강대국 틈새에 있어 이론적 중립 필요성은 크다. 그러나 분단 상태, 강대국 전략 경쟁, 그리고 국내 사회의 중립에 대한 찬반 갈등으로 인해 중립국화에 필요한 국제적 합의와 국민적 통합은 아직 요원하다. 즉, 한국은 중립국화 조건 중 국력 측면에서는 부합하지만 현실적·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중립국화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보아야 하는데 주요한 점은 아래와 같다.
- 지정학적 위치 : 지정학적 긴장 속 완충지대 가능성 제한적
한국은 동북아에서 미·중·러·일의 4대 강국 사이에 위치하며, 특히 분단 상태와 북한의 존재로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정학적 긴장 환경에 놓여 있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처럼 강대국들이 합의한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기존 중립국들과 달리, 한국은 분단과 미·중 전략 경쟁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중립 합의 기반 마련이 극히 어렵다.
- 인구 규모 : 중립국 대비 압도적 대규모
한국 인구는 약 5,100만 명으로 세계 28위권이다. 기존 대표 중립국들은 대부분 500만~1,000만 명 수준으로, 한국은 중립국 평균 인구 규모보다 훨씬 크다. 이는 경제 및 군사적 자립 능력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하나, 반대로 강대국들의 관심과 개입 가능성 역시 커지는 요소다.
- 경제력 : 초국가적 수준 넘는 막강 경제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첨단 제조업과 무역에 강점을 가진 GDP 약 2조 달러 규모다. 스위스·스웨덴 등 기존 중립국 경제 수준보다 훨씬 우위에 있어 독자 생존 능력은 충분하다. 중립국의 경제적 틈새 경쟁력 조건은 한국이 이미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 국방력 : 뛰어난 자주 방위 능력 보유
한국은 국방비 세계 10위권, 병력 50만 명 이상, 첨단 무기와 군산복합체 산업 기반을 갖추어 중립 유지에 필요한 최소 국방력을 충분히 충족한다.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처럼 강력한 자주국방을 가진 중립국들과 견줄 수 있으나, 한국은 복합적 위협 요인(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을 동시에 안고 있어 전략 환경은 복잡하다.
- 국제적 합의
기존 중립국들은 모두 강대국 간 합의와 승인을 통해 중립 지위를 얻었다. 스위스(1815년 빈회의), 오스트리아(1955년 국가조약), 핀란드(냉전 묵인)가 그 예다. 반면 한국은 미·중·일·러·북한 등 5개국의 동시 승인이 필요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장애물로 평가된다.
- 국민적 합의는 최대 과제
중립화 추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사회의 합의다. 한국은 분단 이후 70여 년간 남북 대치 구조 속에서 안보·이념 갈등이 고착화되었다. 보수 진영은 대체로 한미동맹을 안보의 근간으로 보고 있으며, 진보 진영은 자주적 외교와 남북 화해를 강조한다. 이처럼 사회 내부의 좌우 갈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중립국 지위를 추진하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중립화는 단순한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변화와 직결되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은 더욱 격화될 수 있다. 중립화 선언 자체가 국내에서 ‘안보 공백’ 논란을 불러올 수 있고, 국제적으로도 기존 동맹 관계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적 합의는 강대국의 승인 못지않게 중립국 실현의 핵심 조건이 된다.
중립국은 선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의 승인, 국민의 합의, 그리고 실질적 자위 능력이 모두 필요한데 한국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중립 논의는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가 완화되고, 국내 사회적 합의가 성숙될 경우, 한국이 중립적 외교를 통해 동북아에서 새로운 안정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대화와 국제적 협상력이 필수적이다.
- 한국의 국력과 지정학적 위치
한국은 인구 약 5,200만 명으로, 중립국들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대규모 인구를 가진 사례가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GDP를 보유하고 있으며, 첨단산업·무역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군사력 또한 국방비 세계 6위 수준으로, 첨단 무기와 조직력을 갖춘 ‘준강대국’이다.
4. 한국 중립화 가능, 불가능 시나리오
우선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그것이 추진된다면 내부의 좌우 갈등과 남북 대치 상황 속에서 ‘중립국화’라는 국가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 중립국이란 군사적 동맹을 거부하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외교적 지위를 가지는 국가를 뜻한다. 이런 전략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실현 가능성은 아래와 같은 다각적 조건에 좌우된다.
- 중립국의 장단점과 국력
중립국은 군사적 충돌 위험을 줄이고 경제적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력 충돌에 휘말리지 않아 경제나 외교적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며, 다양한 국가와의 교류가 용이하다. 그러나 군사 동맹이 없기 때문에 외부 위협에 취약하고, 국제적 영향력이 제약되는 단점도 존재한다. 대표적 중립국인 스위스는 약 4만 1천 km²의 면적에 87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며, 자원보다는 금융과 서비스 산업으로 강한 경제력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장단점을 놓고 장점 쪽을 선택하는 경우 중립국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 중립국화 가능 조건과 장애물
중립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부 국민과 지도자들의 일치된 의지, 주변 강대국들 간의 법적 보장, 그리고 자위 능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산악 지형과 같은 지정학적 이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은 남북 대치와 국제정세 속에 깊은 이념 갈등이 존재해 국민적 합의를 얻기 어렵다는 현실적 난점이 있다. 또한 주변 강대국들이 중립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할 의지가 부족하거나, 한국의 국방력이 침략을 억제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면 중립국화 추진은 더욱 어려워진다.
- 국민 동의와 정치적 환경
한국 사회 내 좌우 이념 갈등은 중립국 추진에 대한 국민적 합의 형성을 복잡하게 만든다. 남북 간 긴장 상황에서 국민 대다수가 어느 한 편과의 동맹 체계를 선호하기 때문에 중립 지위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 평화를 염원하는 여론이 일정 부분 존재하나,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공론화와 합의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 국제 및 국내 정세 변화
2025년 현재, 미·중 전략 경쟁 심화, 북한의 군사적 도발 위험 등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더욱 엄중하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가 한국의 생존 전략으로 인식되는 가운데, 중립국화는 현실적 도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냉전체제 종료 이후의 새로운 질서와 한반도 평화 확립을 위한 길로서 중립국화 개념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 중립국화는 평화와 안정의 새로운 모색이란 점에서 의미 있으나, 국력, 지정학적 현실, 국민 의식과 국제 환경이라는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실현 가능성은 낮다. 앞으로의 과제는 국민적 소통과 정치적 통합 노력, 그리고 주변국과의 신뢰 구축을 기반으로 미래 전략을 다각도로 준비하는 데 있다.
한국은 국력 측면에서는 중립국 모델에 부합할 자산을 갖고 있지만,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중립화 추진이 양면성을 가진다. 한반도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교차하는 동북아시아의 전략 요충지다. 이는 한편으로는 중립국으로서의 잠재적 가치(강대국 간 균형을 유지하는 완충지대)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각 강대국의 이해 충돌 속에서 독자적 외교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제약도 낳는다. 이런 점을 고려해 한국의 중립화 가능성과 불가능 시나리오를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한반도 중립국화 가능 시나리오
첫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전제되어야 한다.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은 체제 안전을 확보하고 한국은 안보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이 경우 중립화 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해진다.
둘째, 강대국의 합의가 요구된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한국을 완충적인 중립국으로 인정하고,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제공해야 한다. 오스트리아가 1955년에 강대국들의 상호 이익을 위해 중립을 승인받았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셋째, 한국의 국력 유지가 필수적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기술·산업력을 유지하고, 자주 국방 역량(첨단 방위산업, 군사 억제력) 역시 충분해야 한다.
넷째, 국민적 합의와 정체성 확립이다. ‘중립국 한국’이라는 비전이 여야와 세대 간 합의로 국가 정체성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외교·교육·경제 정책에도 중립적 국가 브랜드가 반영돼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면, 한국은 동북아의 스위스 또는 아시아의 오스트리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2) 불가능 시나리오
한국은 경제력과 국방력 면에서 중립국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분단,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충돌, 그리고 국민적 정체성에 대한 합의 부재 등 현실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실제 중립국화 가능성은 낮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강대국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처럼 중립국화를 모색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더 설득력이 높다.
첫째, 한반도는 전쟁이 잠시 중단된 채 분단된 상태로 북한의 군사력, 핵·미사일 보유는 남한에 위협 요소가 된다. 단순히 중립 선언만으로는 위협을 제거할 수 없고, 국제법적으로도 중립 승인 자체가 어렵다.
둘째, 강대국 간 이해관계도 장애물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통해 중국 견제를 원하며, 중국은 한국의 동맹 강화에 반대한다. 일본은 한미일 안보협력 약화을 우려해 중립화에 반대하며, 러시아는 중립화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즉, 4대 강국 모두가 한국의 중립화에 동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셋째, 경제·외교적 의존성도 문제다. 한국 경제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아 어느 한 진영에서 완전히 독립하기 어렵다. 안보와 경제가 미국·중국 같은 특정 블록에 연결되어 있어 독립적 중립 정책 추진이 힘들다.
넷째, 국내 국민적 또는 정치적 이념갈등, 대립은 심각한 장애요인이다. 진보는 자주와 중립에 우호적이지만, 보수는 동맹 유지에 중점을 둔다. 중립이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인데, 사회 전체의 대타협이 부재하고 그 실현도 어려워 보인다.
[부록] 북한의 중립국 지향 가능성?
김일성 주석은 1980년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면서 중립국 체제를 핵심 요소로 강조,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의 갈등에서 벗어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국가(‘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모든 외국 군대 철수, 평화협정체제 전환을 하고 한반도를 미·소 냉전 구도의 완충지대로 전환하여 외세의 간섭을 차단하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며 통일 국가가 중립국으로서 주변국과의 갈등에 휘말리지 말 것을 선언하자고 주장했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연방제를 ‘흡수통일 전략’으로 간주하며 “현실성 없다”며 거부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다뤄야 할 문제”라며 북한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과거 연방제와 중립국 논의가 존재했던 것과 달리, 통일론에서 명확히 후퇴해 남북한에 대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하고 남북을 완전히 별개의 적대적 국가, 교전국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대폭 전환했다. 김정은 시기에는 ‘조국통일 3대 헌장탑’ 같은 기존 연방제 통일 상징물도 철거 지시를 내렸으며, 연방제 통일방안이나 한반도 중립국 체제를 더 이상 공식적으로 표방하지 않고 있다.
최근 북한 정책에서는 평화공존체제나 중립화 개념이 사라지고, 대남 흡수통일론·적대관계 고착, 그리고 군사력 증강과 무력 일변도의 대남정책이 강조되고 있다. ‘연방제’와 ‘중립국’이라는 키워드 모두 오늘날 북한의 공식 노선과 정책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강경한 적대와 대결 구도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북한은 유엔 등 국제기구의 제재를 받고 있으며, 미국과 서방 국가들과는 적대적인 관계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을 표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 경제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대북 제재로 심화된 경제적 어려움은 북한이 중립국으로서 자립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중립국은 국제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국가를 의미하는데 북한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군대를 파견했다. 또한 중국, 러시아와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한다는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2024~2025년에 정상회담과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조약 체결, 무기 제공, 파병 등 군사 부문에서 협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오랜 기간 동맹 관계이고 2025년 9월 중국 전승절 행사 등에서도 북중러 정상들이 ‘북중러 연대’의 이미지를 과시했다.
북한은 미국과 서방의 제재에 맞서 러시아와 군사적 밀착을 강화하며 “반제국주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중립적인 위치와는 거리가 멀며,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대항하기 위해 특정 진영에 속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통해 체제 안보를 보장하려 하고 있는데 이는 중립국 지향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은 자체 핵무기를 체제 생존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중립국 인정은 어려울 전망이다.
현대의 무장중립국 사례인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영세중립국은 강력한 자국 군사력이나 국제협정을 바탕으로 중립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핵무기 보유에 기반한 체제가 중립국 모델과 근본적으로 거리가 있다. 강한 군사력과 무장중립 정책을 바탕으로 한 스위스의 정책은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있지만, 핵개발은 중립 지향과 국제적 중립국 신뢰를 유지하기에 매우 부정적·상충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결국 북한이 외교적으로 ‘중립국’을 지향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 북한의 외교 정책은 체제 생존과 안보 확보라는 목표를 위해 동맹국과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중립국 정체성 지향’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북한의 중립국 지향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지만 만약 북한이 체제 안보를 보장받고 경제적 어려움을 탈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중립국화를 고려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북한의 핵 보유와 주체사상 기반의 체제, 그리고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정 조건 아래서는 전략적 선택지로 고려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핵 군축 또는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완화되면, 북한이 체제 보장과 경제 발전을 위해 중립국 모델을 전략적 선택으로 고려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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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겨레신문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고문
제2회 조용수언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