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시대, 한일관계의 미래: 양보와 타협을 통해 친근한 이웃국가로 거듭나야

[칼럼] 이상수 박사

2025-10-22     이상수

일본 정치에 마침내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2025년 10월 21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총재가 중의원 총리 지명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며 제104대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일본 근대 정치 140년 만에 처음 탄생한 여성 총리라는 사실은 분명 상징적인 사건이다. 흔히 말하는 '유리 천장'을 깬 셈이다. 중의원 10선이라는 굳건한 기반 위에서 비세습 정치인으로 최고 권좌에 오른 그의 개인적 성취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여자 아베'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의 강경 보수 성향이 한일 관계의 미래에 짙은 불확실성을 드리우고 있다. 다카이치 시대의 한일 관계는 단순히 '협력도 하고 갈등도 하는' 모호한 공존을 넘어, '원칙을 가진 미래 지향'이라는 고난도의 시험대에 올라섰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 철학은 뿌리부터 철저한 강경 보수에 박혀 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 정기 참배, 평화헌법 개정 주장, 심지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합사를 옹호하는 등 일본 우경화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이다.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사죄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노선을 그대로 잇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물론 이번 추계 제사(10월 17~19일) 때 직접 참배 대신 사비로 다마구시를 봉납하며 외교적 반발을 의식하는 신중함을 보이긴 했지만, 이것이 그의 본질적인 태도 변화를 의미한다고 보긴 어렵다.

더욱이 연정 파트너 교체는 일본 정계의 보수 색채를 한층 짙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동맹을 유지했던 중도 성향의 공명당 대신,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연립 합의문은 '국가관 공유 및 자립 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며 헌법 9조 개정 협의회 설치, 스파이 방지법 제정, 방위비 증액, 원자력 잠수함 도입 검토, 방산 장비 수출 제한 폐지 등을 명기했다. '군축'이나 '유일 피폭국' 같은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일본 정치의 중심축이 중도 보수에서 확실히 우익으로 이동했음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나에노믹스'를 통한 경제 부양과 적극적인 안보 정책은 재정 확대와 방위력 증강이라는 양날의 칼이 될 것이다.

다카이치 시대 한일 관계의 미래는 결국 안보 이익과 역사적 정의라는 두 개의 평행선을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북한 핵 위협이 고도화되고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카이치 총리의 방위력 증강 노선은 한미일 군사 훈련을 정례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그가 경제안보담당상 시절부터 강조해온 "산업과 안보의 일체화" 구상은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핵심 공급망 안정화에서 실질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부각한다. 60년 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연간 1200만 명이 오가는 상호 방문 시대가 열렸듯, 한일 간 경제, 문화, 인적 교류는 이미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강경한 역사 인식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강제 동원, 위안부 배상 문제, 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서 일본 측이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면, 안보 연대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 될 수 있다. 어렵게 복원된 관계 회복 기조에 찬물을 끼얹을 위험이 매우 크다. 과거사를 정치화할 경우 '구조적 악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어 한미일 협력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갈등을 관리하면서' 안보와 경제 협력을 병행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재 한일 관계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숨겨져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등장으로 그 시계 초침은 더욱 빨라진 느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당일 SNS 축하 메시지를 통해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 강화"에 대한 희망을 표명하며, 셔틀 외교를 통한 잦은 소통과 경주 APEC에서의 건설적인 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역시 한일 정상회담 실무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제 한국은 '협력과 갈등 공존'이라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고도의 전략을 발휘해야 한다.

첫째, 실용적인 협력은 가속화해야 한다. 경제, 통상, 문화, 공급망 등 외교 마찰과는 별개로 성과를 창출하여 갈등을 완충하는 방안을 도출해야한다.

둘째, 과거사 원칙은 견지하되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정의를 토대로 신뢰를 재구축하는 데 단호하되,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처하는 안보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실리 균형이 필수적이다. 역사를 외면한 협력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지만, 실리 없는 고집도 국익에 해가 될 수 있다.

다카이치 시대는 한국 외교의 지혜와 강단을 시험하는 무대이다. 안보와 경제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역사적 정의를 어떻게 조화시켜 국익을 극대화할지가 동북아 평화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깝고도 먼 이웃인 일본을 양보와 타협을 통해 친근한 이웃으로 만들 공통분모를 확대할 때이다.

 

이상수 박사 프로필 

 

한국학중앙연구원(정치학 박사, 2003)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책임연구위원 2006-2023)
플로리다 주립대 정치학과 (방문학자)
US Naval War College(방문학자) 
현재 제주평화연구원(초빙연구위원 2024-현재)
한국외대 글로벌정치연구소(초빙연구위원 현재)

주요 저서로 이광요의 국가경영리더십(2006), 한반도 분간극복을 위한 정치리더십(공저, 2007), 동북아 전략환경과 한국안보(공저, 2007), 아시아 안보와 평화질서(공저, 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