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 축제, “생명에 대한 경의감을 느낀다”

[연재] Peace At Jeju(5) - 문영임

2025-10-07     문영임
[‘2025 토종씨앗 축제’가 9월 27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서리복지회관에서 열렸다. [사진 – 고애숙]

지난 몇 달동안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준비하여 온 ‘2025 토종씨앗 축제’가 9월 27일 안덕면 서광서리복지회관에서 열렸다.

2주 동안 서울에 다녀오느라 회원들이 미리 준비하는 과정을 돕지 못해서 죄송하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당일엔 참석하기 위하여 주말 비행기를 탔었다. 행사는 10시부터지만 8시 30분까지 모여달라는 연락이 있어서 일찍 도착한 행사장에는 전날 늦게까지 일했을 만큼 말끔하게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

토종씨앗을 지키기 위해 애지중지 재배하는 여농회원들은 올 여름 뜨거운 햇빛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아마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멱을 감아야했을 것 같다. 텃밭이라고 잠깐 나가봐도 땀이 줄줄 흐르고, 시간마다 ‘낮시간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전화기에 뜨는 경고가 올 여름에 하루종일 올라왔었다. 한더위가 지난 후 잠깐 나가면 바람처럼 몰려드는 모기떼에 견디다 못해 옷에 에프킬라를 뿌리고 나갈만큼 괴로웠던 여름이 끝나자 이번 토종씨앗 축제가 열린 것이다.

축제 시간이 되어가자 이웃 여농회원 분들과 지자체에서 축하하러 오신 분들이 속속 도착하고, 회원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처럼 서로 얼싸안고 좋아한다. 임경애 님의 사회로 멀리서 찾아온 귀빈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기후위기가 여성농민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짧은 영상으로 축제가 시작되었다.

추미숙 안덕면 여성농민회장 님의 개회인사. [사진 – 문영임]

토종생태 농업이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축사를 한 하성용 도의원, 축제에 오신 많은 귀빈들과 이웃 농민들께 하는 추미숙 안덕면 여성회장 님의 개회인사, 언니네 텃밭의 참여를 독려하고, 얼굴있는 행사자와 소비자가 함께 직접 나누는 토종씨앗 농사와 다음 세대의 먹거리까지 함께 지켜나가자는 고애숙 서귀포여농회장 님의 격려인사가 이어졌다.

여러 귀빈들의 덕담이 끝나자 미리 준비된 토종씨앗 전시대와 여러 체험마당과 각종 음식나누기 등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고정매, 차복희님이 담당한 작물전시대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쌓인 목화바구니, 웬만한 아이들 머리통보다 더 큰 늙은 호박들, 어른 손바닥만한 작두콩, 땅콩호박, 까치콩, 동아박 등은 처음 보고 들어보는 토종작물들이다. 오늘 행사를 위해서 꺽어온 꽃무름과 해바라기가 장식된 토종 작물 전시대에도 신기한 듯 사람들이 만져보고 들어보고 웃음이 넘친다.

김명화 토종씨안 연구회장 님의 수세미 만들기. [사진 – 강영숙]
토종씨앗을 나누고 설명하는 안성면 여성농민회 총무님. [사진 – 강영숙]

그동안 모아 온 토종씨앗들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펼쳐놓고 설명하고 소개하는 토종씨앗과 우리 제주에서 나오는 토종씨앗 전시함도 인기가 많았다.

토종씨앗 연구회장이신 김명화 님이 담당한 수세미 만들기도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찾았다. 먼저 어른 팔뚝만한 수세미를 인정사정 볼거없이 발로 밟아서 껍질을 부서뜨린 후에 껍질을 손으로 벗기고 원하는 크기로 잘라가며 속에 씨앗을 빼면 벌써 수세미가 된다. 집에 가져와 한번 삶아내고 그늘에 말리면 그동안 판매대에서 만지작거렸던 수세미를 직접 만들게 되는 것이다.

축제 마당에서는 기회가 없어서 얻어 온 수세미를 당장 만들어 이웃 할머니에게 선물했더니 “넌 이런 것도 만들 줄 아냐!”며 고마워한다. 아마 할머니께서도 한번쯤 만들어 보셨을텐데도 나에게 유난히 친절하시고 큰 딸이 생겼다고 좋아하시며 부추며 호박이며 갖다주신다.

메밀베개 만들기에 둘러앉은 가족들. [사진 – 강영숙]

양금순 님과 고재순 님이 맡은 메밀 베개 만드는 마당엔 부모님과 자녀들이 함께 둘러앉아 미리 준비된 작은 천에 메밀껍질을 넣고 직접 바느질을 해가며 자신의 베개를 만들어간다. 작은 아기 베개지만 집에 가져와 컴퓨터 받침으로 무릎에 올리고 사용하니 아주 딱이다. 메밀을 조금만 넣어서 허리 받침대로도 하나 만들었다.

이렇게 까실까실한 메밀껍질을 한 움큼씩 집어보는 재미도 유별났다. 한알도 서로 붙어있지 않고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메밀껍질이 왜 정겹게 느껴지는 걸까? 우리 텃밭에 심어놓은 메밀도 잘 자라서 메밀껍질을 만져볼 수 있을만큼 잘 자라주면 좋겠다.

토종작물 판매대. [사진 – 문영임]

우리 여농회원들이 함께 만들어서 귀빈들에게 선물도 하고 참가자에게 판매하는 마늘고추장과 막장들은 일치감치 동이났다. 직접 생산한 토종콩과 유기농 고추 재료를 쓰고 맛도 좋으니 인기도 있지만 추 회장님이 안타까워하는 너무 저렴한 가격 탓일 거다. 예쁜 유리 용기까지 새로 구입해서 담은 고추장이 한병에 단돈 만 원, “만오천 원은 해야지”하셨던 고추장을 난 하나도 못 잡았다. 당일 아침에 만든 두부도 그렇고 미숫가루며, 보리며 축제 시작하고 두 시간도 못 되어 동이났다.

박복선 님과 내가 맡은 쥐이빨옥수수로 만드는 팝콘과 매실차 나눠주는 우리 마당도 팝콘튀기는 고소한 냄새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와서 두세컵씩 받아가니 준비한 쥐이빨 옥수수가 동나고, 옆에 장윤화, 강순미 님이 만들어 온 호박죽이 가장 먼저 동난 것 같다. 축제 전에 맛을 보지 못했다면 너무 아쉬웠을 것 같다.

김원자, 오점례 님이 만들어 주는 강정만들기, 쌀튀김이랑 독세기 통, 땅콩, 잘게 썬 귤껍질을 넣어서 금방 금방 만들어 내는 강정이 구수하고 달콤하면서도 귤피에서 나는 특이한 맛이 강정마당을 복닥거리게 했다. 뜨거운 강정을 컵에 담아놓기 무섭게 사람들마다 한손에 들고 먹었다.

나도 강정이라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으로 엄두를 못냈었는데, 이번에 쉽고 빠르게 만드는 강정을 배워와서 집에 있는 보리튀김에 땅콩과 깨만 넣고 만들어 남편에게 주었는데 연신 맛있다며 한그릇을 순식간에 먹었다.

토종 호박죽 맛보기. [사진 – 강영숙]
두부 비지로 만드는 전 만들기. [사진 – 고애순]

구정자, 이미경 님이 맡은 두부만들고 나오는 비지에 각종 야채를 넣고 버무려 전을 만들 수 있도록 통에 담아 나눠주는 마당에서도 바구니 가득 가득 담아온 재료가 떨어지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이건 판매해도 될 만큼 손도 많이가고 준비 작업이 컸는데도 무료로 몇 개씩 나눠주니 보기에도 아까웠다.

농삿일이며 가정주부로 살림도 맡아하고, 이웃을 위한 공동체 일도 나서서 하는 여성농민회원들은 몸이 열이어도 모자랄 만큼 애쓰고 힘써서 사는데도 여유와 유머가 넘치는 것이 너무 좋다.

토종 콩과 귤피로 강정 만들기와 시식 마당. [사진 – 문영임]
내가 만든 바가지와 수세미. [사진 – 문영임]

어쩌다 내가 제주에 와서 이런 분들과 인연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을 줄 알았다. 수세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렇고 커다란 통통 소리가 좋은 박이 어떻게 크는지도 모르고 그저 가게에 가서 사서 쓰고 먹거리를 사대는 것이 생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내가 손을 대어 텃밭을 가꿀 수 있고, 시시때때 밭에서 자라는 채소를 나눠먹을 수 있고, 가는 곳마다 보이는 귤밭이며 콩밭이며 잘 밭갈이 된 넓고 검은 밭들을 볼 때면 생명에 대한 경의감을 느낀다.

지금은 한창 수확한 참깨를 길가에 세워 말리고 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할때마다 고명으로 쓰던 참깨가 밭에서 크는 것부터 말리고 터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한 초보 농민이 된 나는 지금 세상 부러운 것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