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속의 중립국 현황, 그 미래 전망

[연재] ‘중립화 담론’과 한미동맹② - 고승우

2025-09-26     고승우

21세기 국제환경은 지정학적 긴장, 지역 분쟁, 강대국 간 경쟁 심화 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는 과거의 냉전식 미·소 양극구도가 아니라, 여러 강대국과 중견국이 복수의 전략적 블록을 형성하며 경쟁과 협력이 병존하는 다극화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패권 경쟁, 국가들이 이념이나 단일 가치보다는 실용적 이익(경제, 기술, 안보 등)을 최우선시하는 국가간 합종연횡 식의 블록화가 활성화되고 있다.

2차대전 종전이후 상당기간 지속된 국제적 힘의 구도가 변화하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대만 문제, 한반도의 긴장 등 여러 분쟁지가 글로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전략적 계산이 교차되는 핵심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탈세계화, 보호무역 강화, 첨단기술(특히 AI, 바이오, 디지털 인프라) 분야의 경쟁이 심화되고, 각국은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다수의 중견국들이 적극적으로 독립적 노선을 모색하는 연합·경쟁의 혼합구도로 진입했으며, 경제·안보·기술이 복합적으로 엮여 국경을 넘는 불확실성이 심화된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의 세계정세가 국가간, 블록간 대립과 경쟁에서 벗어나 초연한 상태의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는 국가의 정체성, 즉 중립화 추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투명하다. 역사적으로 중립이라는 국가정체성은 해당 국가들의 생존전략 성격이 강했고 그에 따라 그 내용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오스트리아는 국제법적·헌법적으로 제도화된 중립으로 국제적으로 합의된 중립국 성격인 반면 핀란드·스웨덴은 국제법적 보장보다는 지정학적 상황과 정책 선택에 따른 것으로 환경에 따라 변동 가능한 중립국이라 할 수 있다.

핀란드·스웨덴의 경우도 차이가 있는데 스웨덴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 중립국의 형태였다. 핀란드는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제약적 중립국의 형태였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후 비슷한 시기에 두 나라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것도 자국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다. 두 나라의 선택은 국가 존립이라는 최우선 목표의 달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1. 현재의 중립국 다양한 형태

중립국가의 중립성 개념은 국가별로 국력, 안보환경 등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지속적으로 진화해오고 있는데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중립국가라는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 즉 중립성(neutrality)은 앞으로도 세계가 국가간 갈등과 경쟁이 존속하는 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국가들이 생존전략의 하나로 새로운 형태로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

중립국가 선택은 단순한 외교적 전환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지구촌이라는 공동체가 시기별로 다양한 변동 현상을 보이든 중립국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전제로 현재 목격되는 중립국을 대상으로 한 그 정의와 나라별 특성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중립국 정의

중립성은 국제법상 “교전국 간 분쟁에 불간섭과 공정성을 유지하는 국가의 지위”로 정의된다. 이는 전시에만 적용되는 임시 중립(ad hoc neutrality)과 평시에도 중립을 유지하는 영구 중립(permanent neutrality)으로 구분된다. 영구 중립국은 타국의 승인과 국제조약을 전제로 하면서 군사동맹 가입이 금지되며, 중립성 유지를 위한 신뢰성 구축을 위해 외교, 경제, 안보 정책을 조정한다. 임시 중립은 상황·시기 한정적이며, 국가가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정책으로 국제적 승인, 다른 나라의 동의나 조약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두 중립의 형태는 강대국에 의해 무시되고 파괴되는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즉 영구 중립의 경우 벨기에, 스위스처럼 국제법적으로 보장되더라도, 강대국의 군사 전략이 우선일 때 무시되었다. 임시 중립의 경우 미국, 스웨덴처럼 스스로 선언만으로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취약하고 실질적 보장 장치가 존재하기 어렵다.

나폴레옹, 히틀러 같은 전쟁광이 출현하거나 트럼프처럼 국제 무법자처럼 구는 자들이 출현할 경우 강대국들의 폭력이나 침략으로 약소국들의 국격, 정체성은 보호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UN은 12월 12일을 '국제 중립의 날'로 지정하는 등 중립성을 공식적으로 지원한다.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경우다. 투르크메니스탄은 1991년 독립 후 주변 강대국(러시아, 이란,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 사이에서 안보적 균형을 위해 ‘중립국’ 노선을 선언했다. 이후 유엔이 1995년 12월 총회 결의로 투르크메니스탄의 영구 중립적 지위를 인정했다.

유엔 결의 내용을 보면 국제사회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중립적 지위를 존중해야 하며, 투르크메니스탄은 자국 영토 내에 외국 군대를 주둔시키거나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평화적 중재와 국제 분쟁 해결, 에너지 수송로의 안정적 관리 등에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가자 전쟁처럼 이해당사자들이 복잡한 국제 사회를 배경으로 무력 충돌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유엔이 직접 군사력을 행사하거나 강제로 중단시키기 어렵다. 유엔이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과 무력 분쟁을 제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강대국의 이해가 걸린 곳에서는 유엔이 구조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중립이 국제 조약 또는 다자 협정, 법적·정치적 제도로 성립할 수는 있지만, 국가 존립의 최종 보장은 힘(군사력·동맹)과 국제 정치적 균형에 달려 있다. 즉, 중립은 절대적 안전 보장이 아니라, 강대국의 이해 속에서 언제든 무시될 수 있는 조건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한계를 전제하면서도 미래에도 국제 사회의 합의를 통해 새로운 중립국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중립화 가능성 여부를 다각도로 점검 해보는 작업은 필요할 것이다.

2) 중립국 결정 과정

중립국은 큰 틀에서 몇 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이 거론되지만 실제 국제환경과 당사국의 이해관계 등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외국군이 주둔한 상태에서 성립된 중립국도 있었다. 인간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엉터리 논리를 만들어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거나, 강대국이 밀어붙이는 식인데 이는 오늘날 트럼프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파괴하면서도 자신을 합리화하고, 미 국민 일부가 강력 지지하는 속에 좌충우돌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중립국’은 국제법적으로 자국의 군사적 중립을 선언하고, 다른 국가들이 이를 승인·보장하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세세하게 살필 경우 중립국 요건에 100% 부합하지 않은 경우가 세계사에서 발견된다.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나 당사국의 정치적 필요가 변형을 만들어 낸 것이다.

몇 개 중립국의 경우를 살피면 외국군이 주둔한 상태나 외국군의 영향력아래 에 공식적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한 ‘중립국’이 출현했고 일부 국가는 필요에 따라 중립국 정체성을 집단안보 체제 편입으로 전환했다. 중립화는 국제적 공인 속의 국가 생존 전략이라는 특성이 강하다고 할 것이다. 그 사례는 아래와 같다.

- 스위스

1815년, 스위스가 영구 중립국으로 승인될 당시 주변 강대국 군대가 스위스 영토에 주둔하고 있었다.

배경과 빈 회의 ;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빈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1815년 3월,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오는 백일천하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유럽 연합군은 나폴레옹을 저지하기 위해 프랑스로 진격했고, 이 과정에서 스위스 영토를 통과하거나 일부 주둔했다. 스위스는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강대국들의 군사적 압력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제2차 파리 조약과 중립국 지위 ; 1815년 11월 20일, 제2차 파리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나폴레옹의 최종 패배 이후 맺어진 것으로, 유럽 강대국들은 스위스의 영구 중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 조약 체결 당시에도 스위스 영토에는 외국 군대가 여전히 주둔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스위스는 빈 회의와 제2차 파리 조약으로 영구 중립국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지만, 조약이 체결된 시점에도 외국 군대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이 조약으로 스위스는 법적으로 중립국 지위를 확보하고, 이후 외국 군대가 철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 핀란드

핀란드는 1947년 이후 강대국(특히 소련)의 영향 속에 제한적 중립을 유지하다가, 우크라 전쟁이후 NATO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글로벌 탄소중립 선도국가를 추진하고 있다. 주변정세에 따라 국가 정체성을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핀란드는 1947년 이후 제한적 중립국으로 움직였으며, 이는 사실상 소련의 외교·안보적 영향 아래 실행된 전략적 선택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의 우호·상호지원조약에 따라 핀란드는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소련의 요구를 따르며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신중히 대응했다.

서방 진영과의 군사동맹은 물론, 소련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은 원칙적으로 피했다. 이로 인해 일명 ‘핀란드화’라는 국제 정치적 개념이 등장하며, 약소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현실적 타협을 통해 생존하는 사례의 상징이 됐다.

2020년대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 격변 속에서 핀란드는 역사적 중립노선을 완전히 버리고, 2023년 NATO에 정식 가입했다. 현재는 명확히 서방 진영 소속 국가로 분류된다. 안보정책은 유럽연합(EU)과 NATO 중심으로 재편됐고, 러시아와의 전력망 연결도 끊는 등 안보와 에너지 측면에서 러시아 의존도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한다.

핀란드는 기후·탄소중립 분야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국가다. 2035년까지 국가 탄소중립 달성을 법제화했고,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청정수소, 소형모듈원전(SMR)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산업계·정치권·시민사회 모두 탄소중립이라는 목표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회적 논쟁이 없는 수준이다. 각 정권이 달라져도 중립 및 기후정책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는 것이 현재 핀란드 지향성의 특성이다.

-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미·영·프·소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된 상태에서 중립화를 약속했고, 그 대가로 점령군이 철수하며 독립을 회복했고 오늘날 스위스와 함께 가장 전형적인 영세중립국 모델로 평가된다.

오스트리아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대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1955년 5월 15일 오스트리아 국가조약(State Treaty)이 체결되면서 완전한 독립을 회복했고,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영구 중립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중립화는 오스트리아가 군사동맹 가입과 외국 군대의 자국 내 영토 주둔을 금지하는 영세중립국 지위를 공식 선언한 것으로, 이는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과의 복잡한 외교 협상 끝에 이뤄졌다.

소련은 오스트리아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서방 진영과 대립하는 완충 지대로 보는 전략하에, 오스트리아가 서독과 독일 통합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중립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독립국가로 재건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는 길을 택했다.

1955년 이후 오스트리아는 친서방적인 경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과 일정한 선린관계를 유지했다. 중립 정책은 오스트리아 외교의 기조가 되었고, 이는 외국군 주둔 금지와 군사동맹 배제 원칙에 기반한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1995년 가입했으며, 국제 평화유지 활동과 유럽 공동 안보 정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냉전 이후 안보 환경 변화로 중립주의가 일부 변형되었으나, 여전히 외국군 임시 체류와 무기 이동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유지하면서도 NATO의 평화 파트너십(Partnership for Peace, PfP) 참여 등 실용적 외교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요약하면 오스트리아는 1955년 강대국 간 협상으로 영세 중립국을 선언하고 군사동맹과 외국군 주둔 금지 원칙을 세웠으며, 이후에는 경제적 친서방 노선과 동구권과의 유화적 관계를 병행해왔다. 현재는 중립 정책을 유지하는 가운데 유럽연합 내에서 적극적인 평화 및 안보 협력에 동참하는 국가다.

- 스웨덴

스웨덴은 19세기 초부터 2009년까지 무력 분쟁에 참여하지 않는 중립 정책을 유지해왔다. 1812년 중립 정책을 공식화한 이후,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에도 일관되게 중립을 지켰다. 중립은 단순한 비동맹을 넘어서 강력한 군사력 기반의 '무장 중립' 정책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정규군과 민방위, 방위산업을 발전시켰다. 이른바 ‘마지널 독트린’으로, 주변 강대국 간 충돌에서 직접 주요 타겟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 속에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방위를 강화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위기가 심화되자, 그간의 중립 노선을 포기하고 NATO 가입 신청을 하였으며, 2024년 3월 7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32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이는 스웨덴이 적극적인 집단 안보 체제 아래 자국 안보를 강화하려는 결정이다. 스웨덴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기도 하다.

과거 스웨덴의 중립은 단순히 군사적 비참여뿐 아니라 외교적 독립성을 상징하는 국가 전략이었다. 20세기 들어서는 주변 강대국들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군비를 증강했으며, 전쟁 위기에도 국제정세를 신중히 조율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 환경 변화로 중립 정책을 수정하고 적극적인 안보 동맹에 참여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스웨덴은 19세기부터 2009년까지 강력한 무장 중립을 유지하다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중립노선을 버리고 NATO에 가입하며 안보 정책을 전면 재편한 나라다.

2. 21세기 환경 속의 중립국?

21세기 국제환경에서 새로운 중립국의 탄생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과거의 전통적 ‘중립국’(스위스·오스트리아·스웨덴 등)과는 성격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19~20세기 중립국은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강대국 간 분쟁에서 불개입을 약속하며 국제법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21세기 국제환경의 특징인 미·중 전략경쟁 심화로 양극화가 다시 강화되면서, 중립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선택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 약화되고 국가간 연계성이 양분화 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디지털 네트워크, 에너지 안보 등이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블록화 되면 완전한 중립 유지가 어렵다.

- 지역 분쟁의 확산의 확산 속에서, 강대국들의 힘겨루기기가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남중국해, 대만해협 등에서 강대국들이 제3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중립국이더라도 ‘제재 참여’나 ‘안보 협력’ 요구를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21세기에도 강대국 간 경쟁이 심화될수록 오히려 중립국의 외교적 가치와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져 새로운 개념의 중립국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19~20세기 식 ‘영세중립국’이라기보다는, 디지털·에너지·중재 중심의 기능적 중립국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대국들이 이해관계상 해당 국가의 중립을 인정하거나, 그 나라가 지리적·정치적으로 ‘완충지대’ 역할을 할 때 가능할 것이다.

미·중·러 경쟁 속에서 특정 국가가 ‘영세중립’ 지위를 표방하고 그것이 국제적으로 수용 가능할 경우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걸프국가 중 일부가 강대국의 군사적 대립 속에서 중립 외교를 택해 국제적 지위 확보를 시도하거나, 아프리카 신흥국이 미·중 영향력이 격돌하는 상황에서, 외교적 자율성을 지키려는 국가가 중립화 논의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형 중립 국가는 과거처럼 군사적 불개입만이 아니라, 새로운 성격, 예를 들어 디지털 중립국을 택해 사이버·데이터 전쟁에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적 데이터 허브 역할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기후·에너지 중립국의 입장을 택해 화석연료 갈등 속에서 중립적 ‘에너지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고 카타르처럼 중립적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협상·중재 외교를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오늘날 국제적으로 중립국 지위는 반드시 외국군 철수 이후 국제조약이나 회의에서 보장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군이 남아있는 한 ‘중립국’은 형식적으로도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다”라는 논리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의 영향 하에 진행되는 중립화라 해도 국제 여론을 고려해 형식요건 등을 충족시키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동시에 중립화 대상이 된 국가에서 정치적으로 논란이 없는, 즉 대외적으로 국가 전체가 추진하는 모양새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가 불안해하거나 진정성을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21세기에는 외국군 주둔 상태에서는 중립국이 성립할 수 없는가를 국제법 논리와 해당 국가의 현실 정치 상황 등을 점검해 보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아래와 같다.

1) 국제법 논리

- 중립국의 정의 ; 1907년 「헤이그 중립협약」 등에 따르면, 중립국은 전쟁 시에도 타국의 무력 사용이나 군사 기지 제공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즉, 외국군 주둔 자체가 중립성 위반으로 간주된다.

- 주권과 중립의 불가분 ; 중립국은 국제법상 완전한 주권 행사가 보장되어야 한다. 외국군이 주둔한다는 것은 주권 일부(군사권, 치안권)를 타국이 행사하는 것이므로, ‘완전한 주권’과 배치된다 할 것이다.

- 보장국 체제의 전제 조건 ; 중립국 지위는 강대국들이 보장(guarantee)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외국군 주둔은 보증국의 중립 존중 의무와 모순되므로, 합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2) 해당국가의 정치적 상황 논리

- 강대국 각축장화 가능성 ; 외국군이 주둔한 상태라면, 해당 국가는 사실상 어느 한 세력권에 속한 것으로 간주된다. 전후 독일은 미·소 주둔 때문에 중립이 불가능했고, 결국 동서 분단으로 귀결되었다.

- 국내 정치 분열 ; 외국군 주둔, 중립화 추진 등은 국내 정치세력 간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립국의 핵심 조건인 ‘국내 합의된 중립’의 조건에 반한다.

- 안보 딜레마 발생 ; 중립국은 스스로 방위를 유지해야 하나, 외국군 주둔은 ‘방위 자율성’을 훼손한다. 인접국은 이를 중립 위반으로 보고 공격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3. 21세기형 중립국 추정

21세기 국제환경에서 새로운 중립국의 탄생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과거의 경직된 모델보다는 현대적 위협과 지정학적 현실에 맞춰 진화된 형태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중립성은 강대국 간 완충 역할, 국내정치 합의, 국제적 보장 등을 통해 구현될 수 있지만, 군사 동맹의 확대나 국제법적 모호성 같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같은 분쟁 종료 방안으로서의 중립화 협정은 미래에 다시 제안될 가능성이 있다.

중립성은 단순히 전쟁을 피하는 전략이 아닌, 약소국이 자주성과 안보를 유지하는 합리적 선택의 수단으로 등장하겠지만 국제 사회 다극화, 지역 분쟁 지속 등과 같은 상황에서 중립성 개념 정립이나 국제적 보장 가능성이 관건이 될 것이다. 미래에 등장한 중립국 형태는 다음과 같이 상정할 수 있다.

- 코스타리카처럼 군대 없는 국가 지향

코스타리카는 1948년 내전 이후 헌법을 제정하면서 군사 쿠데타와 정치 불안정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군대를 폐지하고 경찰·민방위·국경수비대·해안경비대 등 치안 조직만이 존재한다. 외교적으로는 중립 외교와 국제법·유엔·미주기구(OAS) 같은 다자기구를 활용해 안보를 보장받고 미국과의 비공식 안보 협력(정보·훈련·장비 지원 등)을 유지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직접 충돌 무대가 아니고, 주변국도 상대적으로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 나라는 중남미에서 비교적 안정된 민주주의와 높은 사회 발전 지표를 유지하고 있으나 군사 안보는 강대국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안보 위협에 노출될 경우 중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코스타리카는 사실상 미국의 안보 우산에 편승했다는 평가도 있다.

코스타리카형 중립국가의 보편화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가능한 경우는 지정학적 전략 가치가 낮고, 국제기구·강대국이 안보를 보장해 주며, 내부적으로 민주적 안정과 치안 역량을 가진 국가에 국한한다. 불가능한 경우는 강대국의 패권경쟁 지역, 전쟁 위협이 상존하는 지역 등인데 한반도, 중동, 동유럽처럼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지역이 대표적이다.

- 비동맹과 중립성의 결합

역사적으로 비동맹(non-alignment)은 냉전시기의 정치적 개념이었으나, 미래에는 군사 동맹 불가입을 의미하는 중립성과 결합될 수 있다. 몽골이나 세르비아가 이에 해당한다. 비동맹과 중립성의 결합은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국제분쟁에서 특별히 어느 편도 들지 않는 독립적 평화외교를 지향하는 모델이다.

비동맹은 냉전기 제3세계 국가들이 주도한 정책으로, 미국·소련 등 강대국 블록에 속하지 않고 국가 자주성과 평화적 공존 원칙을 앞세웠다. 중립성은 국제분쟁(특히 전쟁)에서 특정 진영이나 군사행동을 피하며, 국제법상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은 채 충돌을 피해가는 방식이다.

비동맹과 중립성의 결합 모델은 강대국 블록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국제 분쟁 시 독자적 평화외교와 협력을 추구하는 국가전략이며, 유럽과 제3세계 일부 국가에서 다양하게 실천된 정치모델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국가는 군사블록 미가입, 영토 내 외국군사기지 거부, 내정불간섭, 평화공존, 국내외 정치적 독립성에 중점을 둔다.

ASEAN(아세안)은 ‘지역적 중립지대’의 대표적 모델로, 다국적 협력과 내정불간섭, 주권 존중, 외부 군사적 개입 배제, 평화적 분쟁 해결 원칙 등을 통해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대표적 지역적 중립협력 사례다.

ASEAN 중립지대 모델은 주권국가 협력, 내정불간섭, 외부 군사개입 배제, 평화적 분쟁 해결, 경제·사회·문화적 통합을 통한 안정과 번영을 이끌어낸 국제사회는 ASEAN 방식을 ‘지역적 중립지대’의 성공적 사례, 갈등 완화와 상호존중, 개발 협력의 모범으로 인정한다. 최근에는 경제·사회·문화 통합, 스마트시티 네트워크, 비전 2020/2040 등 정책적 협력이 정교화되고 있다.

- 디지털 중립성(digital neutrality)

21세기에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중립성이 새로운 의제로 부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이버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하거나 데이터 주권을 강조하는 국가들이 등장해 정치적, 군사적 동맹은 맺지 않지만, 특정 분야에서 인류에 기여하는 ‘전문가 국가’가 되는 모델이다. 탄소중립, 녹색성장, 그리고 첨단기술의 혁신과 국제협력을 핵심으로 하는 지속가능 국가 모델을 지향한다.

미래의 중립국은 디지털 중립국의 역할을 하면서 세계적인 데이터 센터나 사이버 보안 기술의 허브로서, 어떤 국가에도 편향되지 않고 공정한 데이터 통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기후 중립국의 기치를 내걸고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과 국제 협력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환경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4. 결론

21세기에 등장할 미래의 중립국들은 과거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제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겠지만 과거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냉전기에는 양대 진영 사이에서의 균형 유지가 주요 과제였다면, 오늘날은 다극 체제와 신흥 세력의 부상 속에서 중립의 의미가 재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디지털 전환 같은 비군사적 요소가 중립국 추진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전통적 중립국들이 자신만의 생존 전략을 모색했던 것처럼, 새로운 중립국 모델도 시대적 안보 구도에 따라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전략 경쟁,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 그리고 신흥 안보 이슈들은 중립정책의 성격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중립국을 지향하는 국가는 군사동맹 회피와 동시에 국제협력의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강대국 간 경쟁이 심화될 경우, 중립국은 군사적 압력과 경제적 제재라는 이중의 부담을 견뎌야 한다. 또한 기존 중립국 사례처럼 국제사회의 승인과 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국가는 안보 불안을 피하기 위해 중립을 선택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강대국들 사이에서 정치·경제적 압박을 피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군사 동맹과 경제 의존이 교차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완전한 중립을 유지하기는 과거보다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디지털 안보,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같은 비군사적 요인도 중립국 정책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따라서 미래의 중립국들은 단순한 외교적 선언만으로는 지위를 확립할 수 없고, 복합적인 협정과 국제적 보장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다자협력 기구와 유엔 체제의 역할이 강화된다면 중립국의 입지는 넓어질 수 있다. 오늘날 유엔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기근을 무기로 한 집단학살, 전쟁범죄에 대해 속수무책인데 트럼프 식의 약탈적 국방안보 정책 속의 약육강식의 논리가 심화될 경우 그 위세는 더 약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일랜드처럼 유연한 중립성이나 스위스형 전통적 중립을 지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부 국가는 중립을 국가 브랜드로 활용해 외교적 신뢰도를 높이고, 분쟁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은 틈새시장 식 외교노선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국제적 긴장이 심화될 경우, 중립국 지위 자체가 정치적 의혹이나 회색지대 전략으로 비판받을 위험도 있다. 결국 미래의 중립국 등장과 그 과정은 국제 권력질서의 재편 속에서 다층적이고 불확실한 궤적의 과정을 보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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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전 한겨레신문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고문

제2회 조용수언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