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대통령의 9.19 기념사와 주한미군 사령관 동행의 모순
[기고] 변학문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평화연구센터 소장
문재인 전 대통령이 9.19 남북공동선언 7주년 기념사에서 2018년 남북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이유를 ‘남북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따라주지 못한 국제정세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다시금 "용기 있는 결단"을 보여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국제정세 때문'이라는 말은 합의 불이행에 대한 책임 회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주변국들과 국제정세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2018년 판문점과 평양의 합의 당사자가 자신의 실행 의지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결과 또한 달라지기 어렵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대립 국면에서 우리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했다. 이번 기념사 발언은 그때의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
김정은에게 결단을 요구한 대목 역시 모순적이다. 자신에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던 국제정세가, 상대방에게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될 수는 없다. 이는 자신은 책임에서 비켜서고 상대에게만 일방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모순은 발언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드러났다. 문 전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동북아에서 진영 간 대립 심화가 한반도 평화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주변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기념식 이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했는데, 이때 주한미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이 동행했다.
브런슨은 소위 ‘거꾸로 지도’를 내보이며 한국을 중국 앞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비유한 바 있는, 한국을 노골적으로 대중국 전초기지로 만들고자 하는 인물이다. 즉, 문 전 대통령은 말로는 동북아 진영 대립 심화를 우려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그 대립을 앞장서서 부추기는 미국 군부의 핵심 인물과 함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타임지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가교”가 될 것인지 “대립의 최전선”에 설 것인지 갈림길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빠질 대로 나빠진 남북관계마저 개선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최악의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문 전 대통령이 남북 합의 이행이 좌절된 경험에 대해 단순한 아쉬움의 토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자기 성찰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평화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박사.
대학에서 미생물학, 대학원에서 북한 과학사를 전공했고, 북의 과학기술에 기초한 경제발전 전략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의 '과학기술 강국' 구상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2018) 등이 있고, 공저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선택―10년의 변화 10개의 키워드』(블루앤노트, 2022), 『김정은의 전략과 북한』(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21) 등이 있다.
* 이 칼럼은 평화너머 정책연구소 이슈 브리프 <현황과 분석> 2025년 16호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