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씨름] 5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49)

2025-09-21     심규섭
엿장수 총각의 모습. 상투를 틀지 않은 총각이다. 코가 크고 덩치가 크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이 그림에서 엿장수 총각의 존재는 강렬하다.
엿장수는 미술 구도적 관점이든, 내용이든 간에 불필요한 요소이다.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트린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당당하게 그려 넣은 의도는 뭘까?

“엿장수는 이동식 장사꾼이네. 이동식 장사꾼은 손님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형식이지.
치고 빠지는 기동성이 장점이지.
엿장수는 엿판을 목에 걸고 가슴팍에 놓았네.
목에 엿판을 걸면 두 손이 자유로워지지.
한 손으로 엿을 건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돈을 받았네

실제 엿장수 총각의 사진이다. 김홍도의 씨름에 나오는 엿장수는 끈을 교차해서 목에 걸었는데 사진 속 총각은 엿판에 줄을 나란히 달아 양쪽 어깨에 걸었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이런 특성에 맞는 음식을 팔아야 하네.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하는 자극적인 맛이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단맛이 최고였네. 꿀은 너무 귀하고 비싸니 제외하고, 조청을 이용한 엿이 가장 적합했지.
엿의 원료가 되는 조청은 쌀뿐만 아니라 보리, 옥수수, 고구마, 감자 따위로도 만들 수 있네.

무엇보다 엿은 가성비가 좋았네.
집에는 만들어 먹기 어렵고, 잔칫날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희귀성, 무게와 부피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었지.
물론, 먹기도 편했네. 손으로 집어 입에 넣기만 하면 끝이니까.”

“그림 속 관객들은 모두 씨름꾼을 보고 있네.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그림 속 관객들을 따라 씨름꾼을 보고 있지.
쳐다보지도 않는데 장사가 잘되겠나?”

“엿장수가 매고 있는 엿판에는 엿을 팔고 받은 엽전이 보이네.
웃고 있는 표정인데, 장사가 잘된 모양이군.
아니, 잘 될 수밖에 없었네.”

“어찌 그리 장담하는가?”

“엿장수의 존재를 이해하려면, 이 씨름판을 누가 만들고 운영하는지를 알아야 하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판이 아닐까? 심판도 없는데 말이야.”

“흔해 빠진 조기축구에도 운영자가 있네. 하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씨름 경기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졌겠는가?
김홍도는 이 씨름판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주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네.
또한, 운영자를 그림 속에 넣어 씨름판의 구조를 정확히 표현하고자 했지.”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씨름판의 구조를 눈에 보이도록 만든 장치란 말인가?
엿장수 총각이?”

“엿장수 총각은 씨름판을 만든 운영진 소속일세. 주로 관람료를 받는 역할이네.”1)

“그러니까 차력과 마술을 공연하고 약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약장수와 비슷하단 말이지?”

“정확한 비유일세.
씨름판은 열린 공간일세. 관객과 행인을 구분하지 못하지. 따라서 관람료를 직접 징수할 수 없었네. 대신, 엿을 팔아 남긴 이윤으로 씨름판을 운영하는 것이지.
엿장수 총각이 씨름판 안쪽까지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운영진이기 때문일세.
씨름판에서 관람료를 걷는 일은 씨름 경기만큼이나 중요하네.”

“엿장수 총각이 씨름 경기를 보지 않는 이유였군. 직업의식이 투철한 직원이 아닐 수 없네.
엿장수 총각이 웃고 있네. 승부가 결정되는 짜릿한 순간이야말로 많은 엿을 팔 수 있는 시간이겠지.”

“엿을 팔아 모은 돈은 씨름판 운영에 사용했네. 우승자에게 주는 상금부터 씨름꾼을 섭외하고 장소 대여 및 설치, 홍보와 운영진 인건비 따위로 쓰였지.
이 그림에는 관람료를 걷는 엿장수 총각뿐만 아니라 설계자도 표현되어 있네.”

“어디에 있는가? 찾기 어렵네.”

“우측 위에 턱을 받치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사람일세.”

“이 자가 설계자, 운영자인지 어떻게 아는가?”

“조금 퉁퉁하게 생겼고 상투는 했는데 망건은 하지 않았네.
총각 빼고 모든 남자는 망건을 하고 있네.
망건을 하지 않고 생머리를 노출한 것은 사회적 예의를 씹어 먹은 행동이지. 이는 몸에 문신을 새겨 겁을 주는 야쿠자처럼 강한 인상을 주지.
힘 좀 쓰는 씨름 선수와 판정시비를 관리하기 위함이네.

비스듬히 누워 조용히 웃고 있네.
긴박한 씨름판에서 이런 여유를 부리는 사람은 운영자밖에 없지.
웃는 이유는 간단하네. 씨름판이 잘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지.

결정적인 증거가 있네.
앞에 놓인 모자일세.”

씨름판의 설계자이자 운영자이다. 덩치가 크고 맨상투를 하고 있다. 전립을 벗어 앞에 놓았다. 일반 갓과 다르다. 김홍도가 설계자를 특정하기 위해 배치했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다섯 개의 갓이 보이는군. 그런데 운영자 앞의 모자는 특이한 모습인데?”

“보통 전립(氈笠), 벙거지라고 부르는 모자이네.2)
현재 이와 같은 형태의 전립은 유물로 남아있네.
김홍도의 풍속화 ‘무동’에 등장하는 삼현육각 연주단이 쓰고 있는 모자와 똑같네.”

모자 끝이 뾰족한 형태의 전립을 쓴 세악수의 모습이다. 세악수는 군영에 소속된 삼현육각 악단으로 군인은 아니다. 칼춤을 추는 여성 무용수가 쓰기도 했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삼현육각의 세악수가 씨름판을 운영했다는 말인가?”

“삼현육각 악단은 공연기획자이자 매니지먼트(Management) 역할을 했네. 쉬운 말로, 연예기획사일세.
모든 공연의 바탕에는 음악이 있었지.
악단은 소리꾼과 춤꾼, 심지어는 기생을 섭외하고 관리하면서 공연을 주도했네.
특히 세악수는 군영에 소속된 민간인이지. 민관을 오갔다는 말일세.
씨름판은 인기가 높아 많은 관객이 몰렸네. 큰돈을 벌 수 있었지.
기획력과 풍부한 공연 경험을 가진 세악수가 씨름판을 장악하고 운영하는 것은 당연했지.
처음에는 세악수가 직접 운영하다 점차 씨름판 전문 운영자가 생겨났네.
망건을 쓴 세악수와 달리 맨상투의 건장한 남자는 씨름 전문 운영자인데, 전통에 따른 권위를 위해 뾰족한 전립을 쓴 것이네.”3)

“씨름판은 어떻게 기획하는 것인가?”

“기록이 남아있지 않네. 하지만 상식적으로 추론할 수 있네.

씨름판이 열리는 날짜와 장소를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씨름판을 연다고 갑자기 씨름 선수가 나타나겠는가?
선수는 쉬지 않고 경기만 하는가?
관객을 오랫동안 붙잡아 놓을 방법은 있는가?
우승 상금을 비롯한 운영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는가?
이러한 상식적인 질문을 따라가면 씨름판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네.

씨름판은 사전에 준비해야 하네.
단오 씨름 경기에 수천 명이 모였다고 하네.
장터 씨름 경기라 하더라도 수백 명은 모였을 것이네.

그림 속에 관중은 19명일세.
관객이 너무 적다고 느낄 것이네.
하지만 김홍도 손바닥만 한 그림에 가장 많은 사람을 그렸네. 최소 10배 이상 관중을 압축한 미술적 표현, 즉 ‘아주 많음’으로 이해해야 하네.

당연히 관청의 협조를 받아야 하네.
날짜와 장소를 미리 정해 알려야 하네.
씨름 선수를 미리 섭외하고 기획사 소속의 전문 씨름꾼도 준비시켜야 했지.
흥을 돋구는 악단과 춤꾼을 불러야 하고 관람료를 받는 사람, 질서를 유지하고 선수를 준비시키는 진행요원, 심지어는 선수를 소개하고 경기상황을 설명하는 이야기꾼도 있어야 하네.
이 정도 씨름판으로 설계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명의 이상의 전문 요원이 필요하네.”

해방 직후에 열린 씨름대회. 편을 가른 20여 명의 씨름 선수가 조직되었고, 5백 명 이상의 관중이 모였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씨름꾼은 어떻게 섭외하는가?”

“아마추어와 전문 씨름꾼이 뒤섞여 경기했을 것이네.
참가를 원하는 씨름꾼을 사전에 모집했지. 때론 현장 모집했지.
기획사에 소속된 전문 씨름꾼도 준비했네.
일반 참가자가 7~8할 정도로 훨씬 많았네.
이들은 관중 속에 있다가 승자에게 도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네. 하지만 우승자는 언제나 기획사 소속 전문 씨름꾼이었네.
그림에서 찾아보게.
관중 사이 사이에 전문 씨름꾼이 숨어있네.”

“왼쪽 관중 중에 무릎을 세우고 깍지를 낀 남자가 전문 씨름꾼으로 보이는군.
다들 웃고 놀라는데, 유독 진지한 표정이거든.”

“가끔은 일반 씨름꾼이 우승하기도 했지. 관객은 마치 자신이 나가서 싸우는 착각이 들었지. 현란한 기술과 힘으로 고수를 이기는 짜릿한 승부에 환호했네. 그야말로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네.”

김홍도 풍속화 씨름. 씨름 경기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조직과 운영, 문화까지 표현한 명작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풍속화는 국가 정책사업으로, 백성의 진솔한 삶과 이상적 미래를 밝힌다고 했지.
풍속화로 씨름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씨름은 조선시대 가장 대중적인 놀이문화였네. 단일 종목으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했지. 정부는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자극적인 경쟁인 씨름을 우려했네.
하지만 없애거나 통제할 수 없었지. 대중 놀이의 제공은 민본정치에 부합했고, 경쟁심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이지.

씨름은 세악수 기획사를 중심으로 발전했네.
조선시대 음악은 정서적 사회질서를 뜻할 만큼 중요했네.
세악수는 국가 음악을 대중음악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했지.
이렇게 대중문화의 중심 조직인 세악수는 폭력과 도박이 판치는 씨름을 건전한 백성의 놀이문화로 발전시켰네.

씨름이 풍속화의 주요 소재로 결정되었을 때,
씨름 선수만 그려도 되고, 씨름 선수와 관중만 그려도 되는 그림이었네.
하지만 김홍도는 진정한 씨름판을 표현하고 싶었지.

씨름판은 씨름 경기와 판으로 이루어져 있네.
씨름 경기에는 선수, 규칙, 선발, 체급, 모래, 장비 따위가 있네.
판은 조직, 운영, 자금, 문화이지.

김홍도는 씨름꾼이 경기를 통해 만들어내는 절정의 순간을 표현했네.
많은 관중과 각각의 표정을 통해 백성의 즐거움을 표현했네.
판을 만든 엿장수 총각, 운영자인 세악수를 그려 넣었네.

이로써 풍속화 씨름 그림이 완전해졌네.” (*)

[참고]

1) 1731년(영조 7년)부터 동전 제작이 재개되었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물류 유통이 팽창했기 때문이다.
18세기 토지 매매, 임금 지불 등의 거래는 대부분 동전(상평통보)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삼현육각 연주단을 비롯해 야외에서 열리는 춤판, 줄타기 공연, 탈춤 공연은 무료가 아니었다.
엽전의 통용은 씨름판의 관람료를 받을 수 있게 만들었고 크고 작은 야외 공연의 발전을 가져왔다.
가격 단위가 일정하지 않고 휴대가 불편한 쌀이나 포목, 종이 따위는 관람료로 사용할 수 없었다. 이에 반해 엽전은 엿이나 떡, 과자 따위를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는 방편이었다.

2) 벙거지는 전립(氈笠)이라고도 한다. ‘벙거지’나 ‘벙테기’라는 명칭은 북방 호족(胡族, 만주족)으로부터 온 외래어로, 그 유래는 확실치 않다.
벙거지는 동물의 털에 습기와 열을 가한 후 다져서 종이처럼 만들고, 그것을 반구형의 둥근 형태이다.
조선시대에는 군사가 주로 착용하여 전립이라고도 하였으나, 병자호란(1636) 이후부터 군인뿐만 아니라 사대부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유행했다. (한국민속 대백과사전)

3) 음악 담당인 세악수가 씨름판을 설계, 운영한다는 추정을 근거 없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씨름은 전투용에서 놀이용으로 변화했다. 전투용은 군영에서 기획, 운영했다.
하지만 민간의 놀이로 바뀐 씨름에 군영이나 관청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씨름은 첨단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다.
삼현육각은 음악과 춤, 노래가 필요한 모든 행사를 담당했다. 관청이나 민간에서 연예 행사의 기획력과 경험치를 가진 조직은 세악수밖에 없었다.
한양이나 지역의 세악수는 자기 지역의 씨름 경기와 선수를 운영하면서 독립성과 경쟁을 통한 흥행성을 만들었다.
씨름판은 외국의 여러 격투 경기처럼 조폭이나 사기꾼에 의해 운영되지 않았다.
조선의 씨름판은 예악 문화의 중심이었던 세악수에 의해 발전한 것이다.

세악수

세악수는 조선 후기 삼현육각 편성으로 취고수와 짝을 이루어 연주 활동을 한 군영 악대이다. 세악수는 군사 훈련에 참여하는 점 등에서 군인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군영 악대이지만, 민간활동을 한 반군반민(半軍半民)의 이중적 성격의 악대이다.
세악수는 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로 구성된 삼현육각 여섯 명이 한 단위[牌]를 이루었다.
군인으로서의 세악수의 연주 활동은 왕의 행차, 관찰사의 행렬, 군영의 행렬, 사신 행렬 등에서의 연주와 군영과 관아의 연향 등에서의 연주가 있었고, 민간에서는 풍류 모임에서의 연주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세악수들 또한 기생들과 동반하여 연회에 불려 다녔다. (이숙희/조선후기 군영악대 –취고수, 세악수, 내취/태학사/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