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락회’와 함께한 제주4.3 진아영 할머니 추모제

[연재] Peace At Jeju(2) - 문영임

2025-09-16     문영임

들어가는 말

미국에서 37년 만에 제주로 돌아와 제주 여성농민회에 들어가게 되면서 회원들의 생활을 가까이 보게 되었고, 또한 지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시민활동에도 참여하면서 제주에서의 생활을 기록해 보게 되었습니다.

뉴스로는 나오지 않기는 하지만 여성 농민들의 활동과 토종씨앗 농사로 우리의 먹거리를 지키는 삶속에서 역이민자로의 생활을 성공적으로 정착해 보겠습니다. /필자 주

 

“이어 이어라...”는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21주기 추모 문화사업의 제목이다. 지난 달 8월 30일 제주 탑동광장에서 있었던 무명천 버스킹에 이어 9월 6일 월령리 해변공연장에서 추모 문화제가 있었다.

이곳에 내가 좋아하는 산오락회 노래패의 공연이 있었다. 추모 문화제를 여는 첫 무대에 올라온 산오락회는 이번에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를 위하여 지은 <노란 선인장>이란 노래를 선보여줬다. 산오락회는 김강곤님이 전라도, 조애란님이 경상도, 최상돈님이 제주도 이렇게 세 곳의 지방에서 세 사람이 모인 노래패이다.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21주기 추모 문화제가 6일 제주 한림읍 진아영 할머니 삶터에서 열렸다. 산오락회의 공연 모습. [사진 - 문영임]

일부 방송에서 일본 엔카에서 시작된 트로트를 부활시켜 방송국마다 어린 트로트 가수의 열기가 한창일 때에, 이들 산오락회는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가요 전문 노래패로 2017부터 4.3항쟁의 역사유적지를 찾아 음악으로 추모곡을 전하며 활동했다. 잊혀진 독립운동 노래와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달하여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이 노래패의 순례가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 부쩍 남북관계 회복을 위하여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게 연일 뉴스로 올라온다. 하지만 이들 노래패가 남과 북이 같이 불렀던 노래,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대중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중앙방송에서 듣기 어렵다.

이들이 이번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추모 문화제에 초청된 것을 알고 미국에서 매번 유투브로만 보고 듣던 그들을 직접 무대에서 만난다는 기쁨에 단숨에 달려갔다. 진아영 할머니처럼 4.3항쟁으로 인해 온갖 삶의 고통을 감수하셔야 했던 당신들의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풀어내는 <기억의 손길> 공연은 책에서나 읽어봤던 풍선으로 만든 무대 뒤에서 연세드신 유가족분들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직접 인형극을 하셨다.

제주 트라우마 치유센타 기억의 손길팀이라고 소개된 연극의 주인공 문순덕님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주셨다. 덕훈 오빠가 대학교육까지 약속하여 주었지만, 4.3 당시에 아무런 잘못이나 이유도 없이 경찰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오빠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자신은 고등교육까지 받고 잘 살아있다는 인사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어 윤정애·김은이 모녀의 <무명천이여 그대를 부르리라>라는 모녀의 춤 등이 이어졌다. 4.3항쟁의 역사적인 일에 대한 여러 자료를 읽어보긴 했어도 이렇게 유가족분들의 끊임없는 다양한 노력을 통해 우리들에게 남기고 싶은 역사에 대하여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한 답사를 산오락회분들과 다음날 같이 하게 되었다.

북촌리 너븐숭이 박물관에 전시된 북촌학살자 명단. [사진 - 문영임]

첫 답사지는 북촌 초등학교와 북촌리 너븐숭이 박물관이다. 1992년 시민과 유족의 주도로 11구의 유골이 처음으로 다랑쉬굴에서 발견된 이후, 정부 차원 첫 공식 발굴이 2006년 이곳 북촌리 집단 매장지였다. 이곳 학교 운동장에서는 토벌대와 경찰이 500여명의 학생과 주민을 모아두고 사격연습을 했다고 한다. 북촌 대학살사건, 북촌 아이고 사건이라고 불릴만큼 어린아이들이 집단으로 학살당한 자리에 작은 돌무덤들이 그 날의 처참함을 고발하고 있었다.

아기 돌무덤을 옆에 끼고 있는 너븐숭이에 오르니 유난히 센 바람이 “아이고, 아이고, 내 새끼가 왜 여기 누웠느냐”고 부르짖는 부모들의 울음소리 같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설명엔 4.3소요사건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최상돈님은 4.3항쟁은 누가 뭐라해도 무장봉기라고 결기있게 말했다.

북촌을 떠나 곤을동마을로 가는 길에 함덕 해수욕장이 있다. 에메렐드 바닷물빛이 굽이쳐 있고, 각종 식당과 유흥시설, 바다놀이 영업이 성업 중이다. 북촌에서 느낀 참담한 마음이 한순간에 함덕 해수욕장의 화려함에 탄성이 절로 났다.

이곳도 성산과 대정, 조천과 같이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마을이 소각되고 민간인 희생자가 있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이런 역사적인 기록을 위한 추모비가 없다. 주변 사업체들이 관광객의 마음을 상한다고 절대 반대했다는 사실은 제주 4.3이라는 모호한 말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교모하게 엉켜있어 정명마저 못하고, 어느 곳은 화려한 관광지로 거듭나고, 어느 피해지역은 잡풀로 우거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가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완벽하게 사라진 곤을동 안곳마을. [사진 - 문영임]

중산간 지역이 아닌 곤을동마을은 함덕해수욕장을 지나 바닷가 마을인데도 안곳마을 22곳이 완전하게 폐허가 된 곳이다. 한집 한집이 모여앉아 살았던 돌담 속엔 아직도 헛간이며 장독대며, 돼지우리로 쓰였을 곳을 구별할 수 있을만큼 돌무더기가 남아있다.

이곳에 유격대와 내통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의심 하나로 그들을 색출한다는 숙청작업이 이 곤을동마을 중 안곳마을을 전멸시킨 것이다.

이집 저집 담들을 돌아볼 때에 맑은 하늘에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다. 그나마 덩굴진 칡 더미에 머리들만 넣고 비를 피하던 중에 최상돈님의 선창으로 우린 <친구>를 함께 불렀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너무나 억울한 학생들의 죽임을 두고 고 김민기님은 노래도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때 불러진 노래가 <친구>였다고 했다. 쏟아지던 소낙비가 우리의 노래를 받아주듯이 조용히 그치고 우린 마지막 답사 장소로 이동했다.

제주 민중들을 수탈하고 학살한 옛 제주주정공장 조감도. [사진 - 문영임]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현수막이 세워진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은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앞에 있다. 동양척식회사가 직영한 제주 주정공장은 일제 말기인 1943년에 준공되어 1970년대 말까지 가동된 가장 큰 산업시설이였다.

1949년 3월 “산에서 내려오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선무공작이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하산한 1만여 명의 주민들은 제주읍내 이 주정공장과 고구마 창고에 수용되었다. 제주 4.3항쟁 당시에 민간인을 가두는 최대 수용소였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비검속으로 끌려온 주민들을 감금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이곳에 수용되어 감금되었던 사람들은 4.3 때는 물론이고 예비검속된 사람들이 현재 제주공항으로 이용되는 정뜨르 비행장 부근에서 총살당해 암매장되거나 돌에 묶인 채 제주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제주도에서 오랜 역사동안 구황식품이던 고구마는 일본군의 연료를 만들기 위해 생산량의 8.90%를 빼앗아간 그 주정공장에서 그들은 참혹하고 참담하게 목숨까지 빼앗겼던 것이다.

온 섬이 상주 없는 곡소리를 내고, 너무나 어이없는 죽음에 눈물마저 멈추는 슬픔으로 한날 한시에 온 동네가 제사상에 올리는 눈물과 가족 잃은 설움을 향으로 피워내도 한마디 울음마저 소리낼 수 없었던 제주는 이제 제주 특별시라는 관광특구로 지정된 후 가는 곳마다 화려한 치장으로 덧칠되어가고 있다.

제주 4.3 기록물은 2025년 4월 1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되었다. 제주 4.3 항쟁 관련 기록물은 사건의 진실규명과 화해 과정을 담은 총 1만 4,673건의 역사 기록물에는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옥중 엽서(27건), 희생자와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1만4,601건),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운동 기록(42건),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3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등재에는 국가 폭력으로 발생한 비극을 공동체가 화해와 상생의 방식을 해결한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사례라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로써 제주도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세계 지질공원, 무형문화유산에 이어 세계기록유산까지 합하여 ‘유네스코 5관왕’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참고, 연합뉴스)

 

문영임(Linda Moh)

제주 안덕면 여성농민회 회원, AOK 회원

세계인들의 버킷 리스트 여행지로 꼽히는 제주는 서울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시댁에 인사하러 왔던 내도동에서 새색시라고 난 노란 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고 놀았던 기억이 있는 남편의 고향이다.

미국에서 37년 만에 이곳으로 역이민하여 이젠 제주에서 제 2의 인생을 꿈꿔본다.

문의 : PeaceAtCab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