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가치·이념과 조선(북한)의 인권

[기고] 이재봉 원광대 명예교수

2025-09-08     이재봉

이재봉 /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1. 인류의 가치와 이념

인류의 가치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두 가지를 꼽는다면 자유와 평등일 것이다. ‘나’를 앞세우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우리’를 내세우면 집단의 평등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집단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은 보완적이면서도 상충적이다.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면 집단의 평등이 깨지고, 집단의 평등이 확장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기 쉽다.

이런 가치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경제·사회 이념과 체제 역시 나·개인과 우리·집단 가운데 어느 쪽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의 자유’를 앞세우면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문화적으로는 개인주의를 지향하며, 인권에서는 자유권 또는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중시한다. 흔히 보수 또는 우파로 분류된다. ‘사회적 평등’을 내세우면 정치적으로는 인민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사회문화적으로는 집단주의를 추구하며, 인권에서는 사회권 또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중시한다. 대개 진보 또는 좌파로 평가받는다.

2. 인권에 관한 논의와 종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엔에서 ‘보편적 인권 (universal human rights)’을 규정하는 선언문이나 서약서 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1948년 많은 나라들이 ‘양도할 수 없는 인권에 대한 포괄적 목록 (comprehensive list of inalienable human rights)’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1948년 12월 유엔총회는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을 결의안으로 채택했다. 흔히 ‘세계인권선언’이라 불린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며, 그들의 ‘기본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내용이다.

이 선언에 법적 구속력이 없고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1966년 12월 유엔총회는 법적 구속력을 지니고 인권을 더 구체화할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두 가지 국제조약을 채택했다. 첫째,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으로, 줄여서 ‘사회권’ 또는 'A규약'이라 불린다. 실질적 평등, 정의로운 분배, 일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등을 비롯한 적극적 권리의 보장을 요구한다. 둘째,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으로, ‘자유권’ 또는 B규약이라 불린다. 재산 소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을 포함한 소극적 권리의 보장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 규약을 합친 게 ‘인권에 관한 국제법안 (International Bill of Human Rights)’이다. 흔히 ’국제인권장전‘ 또는 ’국제인권규약‘이라 불린다.

3. 인권의 잣대와 미국·중국·한국·조선(북한)의 인권보고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 조선은 서로 다른 인권의 잣대를 적용해 저마다 경쟁국·상대국의 인권현황이 최악이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한국은 개인의 자유를 앞세우는 자유권 또는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더 중시하고, 중국과 조선은 집단의 평등을 내세우는 사회권 또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미국과 한국이 비판하는 중국이나 조선의 인권상황을 자세히 보도하지만, 중국과 조선이 지적하는 미국의 인권상황은 거의 보도하지 않기에, 후자의 보고서를 상대적으로 길게 인용한다. 물론 모두 편향적이다.

첫째, 미국은 매년 세계 ‘인권보고서 (Human Rights Reports)’를 발표한다. 국무부가 ‘1961년 대외 원조법 (Foreign Assistance Act of 1961)’에 따라 미국 원조를 받는 나라들의 인권상황을 조사해 의회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부터 미국을 제외한 세계 200여 국가들 대상으로 ‘국가별 인권보고서 (Country Reports on Human Rights Practices)’를 만들어왔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악의 인권 국가엔 중국과 조선이 뽑히기 마련인데, ‘자유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2025년 8월 공개한 ‘2024년 국가별 인권보고서’의 조선 편에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처형, 신체적 학대, 강제 실종, 집단 처벌을 포함한 잔인성과 강압을 통해 국가의 통제를 유지했다.” 중요한 인권 문제로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자의적이거나 불법적 살인이나 실종, 고문이나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자의적 체포나 구금, 표현·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한, 강제 낙태나 강제 불임수술, 강제 노동을 포함한 인신매매, 최악의 형태의 아동노동, 독립적 노동조합 금지......”

둘째, 중국은 해마다 ‘미국의 인권기록’을 발표한다. 중국 국무원이 미국 국무부의 국가별 인권보고서에 맞서 미국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1990년대 말부터 내기 시작했다. 미국이 만든 보고서엔 “중국을 포함한 190개 이상의 국가와 영토의 인권상황에 대한 왜곡과 비난으로 가득 차 있다”며, 미국이 인권을 “다른 나라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흑인을 비롯한 소수민족 차별, 끊임없는 폭력범죄와 총기사건에 따른 국민의 생명과 안전 위협 등 정작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며 타국의 인권 문제를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도 곁들인다.

2025년 8월 발표한 ‘2024년 미국의 인권 침해에 관한 보고서는 대략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미국에선 투표자 권리보다 당파 이익이 우선되며 돈이 정치를 통제한다. 2024년 미국 선거의 총 지출은 159억 달러를 넘었다... 노인, 소수민족, 장애인, 저소득 유권자, 학생 등 많은 집단이 투표권을 행사할 기회가 제한되거나 박탈당했다...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빈자들은 더욱 가난해지면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4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빈곤 속에서 살고, 가구의 13.5%가 식량 불안에 직면했으며, 1,380만 명의 어린이들이 식량이 부족한 가정에서 살았다. 교육 불평등은 악순환을 초래하며 세대 간 빈곤을 고착시켰다... 미국은 보편적 의료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유일한 고소득 국가이며, 선진국 중 평균 수명이 가장 낮다... 총기 폭력은 생명을 위협하고, 경찰의 잔혹성은 인명을 완전히 무시하며 지속되었다... 2024년 503건의 대량총격과 45건의 학교총격이 발생했다. 1,400명이 넘는 어린이를 포함해 4만 명 이상이 총기 폭력으로 사망했다... 경찰은 매년 최소 30만 명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그중 약 1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2024년 한 해에만 경찰의 총격으로 1,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소수 민족은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차별과 배제를 받으며 인종차별적인 언어가 만연한다... 흑인은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할 확률이 백인보다 세 배나 높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아동 중 61%가 흑인이다. 도시의 고체 폐기물 소각장의 거의 80%가 흑인, 히스패닉계, 저소득층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흑인들의 기대수명은 백인들보다 거의 5년 짧고, 영아사망률은 두 배 이상 높으며, 산모사망률은 거의 세 배 높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변함없는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제공해 왔으며, 가자에서의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막기 위해 거부권을 7번 행사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확대로 10만 명 이상이 죽고, 가자 인구의 약 90%가 피난민이 되었다... 유엔총회에서 32건의 결의안이 압도적으로 연속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적 상업적 재정적 금지조치를 고수했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고문 장치는 끔찍한 수법으로 계속 작동했다... 권력과 자본의 결탁 아래 인권은 인권의 핵심 가치와 기본 원칙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치적 '쇼'의 단순한 소도구 및 권력 '카지노'의 협상카드로 왜곡됐다.

셋째, 한국은 ‘북한인권 보고서’를 발행한다. 2016년 박근혜 정권 때 만들어진 ‘북한 인권법’에 근거해 통일부 북한인권센터가 2017년부터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2023년 윤석열 통일부가 처음으로 공개 발간했다. 나아가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유린의 실상이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며, 전 세계에 널리 알리라는 윤석열 지시에 따라 이 보고서를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6개 유엔 공식 언어로 작성해 국내외 주요기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정치범 수용소, 강제 노동, 감시와 고문, 공개처형 등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인권유린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2024 북한인권 보고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이라며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지금, 김정은 정권은 민생은 외면한 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며 4대 세습까지 꿈꾸고 있습니다. 외부 정보 차단과 극심한 감시, 공개처형, 그리고 탈북민 강제북송 이후 가해진 심각한 인권침해로 북한 주민들의 신음은 날로 깊어만 갑니다. 우리는 여기에 북한 당국에 의한 참혹한 인권유린 실상을 알리고자 합니다. 북한인권 문제는 주민들의 삶은 물론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 안보와도 직결되기에 그 심각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최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 보장될 때,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는 현실이 됩니다.”

그리고 “2024 북한인권 현주소: 김정은 집권 이후 최소한의 인권조차 박탈당한 북한 주민들의 삶”이란 항목 아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적용’과 ‘종교 박해’로 ‘사상의 자유 완전 부정’; ‘정치범수용소 운영’과 ‘공개처형 자행’으로 ‘주민 생명권 위협’; ‘식량 상황 악화’와 ‘장마당 곡물 거래 금지’로 ‘굶어 죽는 사람들’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넷째, 조선도 인권백서를 가끔 발표한다. 조선 인권연구협회가 “인권의 정치화에 중독된 미국과 서방 나라들의 강권과 전횡”을 비난하거나, 국제사회에 “조선 인민들의 인권보호증진을 위한 공화국의 력사와 현실태”를 알리는 내용이다.

2023년 12월,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기념해 미국 인권을 비판하는 백서를 공표했다. 한국은 조선을 주적으로 삼아 조선을 비난하는 인권보고서를 만드는데, 조선은 미국을 주적으로 삼고 미국을 비난하는 인권백서를 발표한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이 강조한 인간의 존엄과 권리는 오늘 총기류 범죄와 인종차별, 경찰 폭행과 녀성 및 아동학대 등 형형색색의 사회악이 만연하는 미국과 서방 나라들에서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다”면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미국의 연구기관들과 언론들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 지난 30년간 총기류에 의해 사망한 사람들의 수는 무려 110여만 명에 달하며 2022년 한 해에만도 5,800명이 넘는 18살 이하의 미성년들이 총격으로 부상당하거나 사망하였다고 한다. 백인경찰에 의한 흑인살해 사건이 매일과 같이 련발하고 유색인종들에 대한 차별행위가 사회적 풍조로 만연되여 있는 나라도 바로 미국이다. 미국인구의 13%도 안되는 아프리카계 미국사람들은 경찰의 총에 맞아죽는 확률이 백인의 2배, 경찰의 폭력적인 법집행으로 사망하는 확률은 백인의 2.9배, 감옥에 감금되는 확률은 백인의 6배에 달한다고 한다... 침략전쟁과 제도전복, 무력간섭 행위를 수없이 감행하여 인류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유린 말살하여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2001년까지 지구상에서 발생한 248차례의 크고작은 전쟁과 무장충돌 가운데서 80% 이상은 미국이 도발한 것이며 21세기에 들어와서만도 ‘반테로’와 ‘인권보호’의 미명 하에 80여개 나라에서 군사행동을 벌려 약 92만 9,000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약 3,800만 명의 피난민을 초래하였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의 정권과 제도를 붕괴시키기 위해 '인권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해당 국가의 영상을 깎아내리고 악마화하려드는 것은 미국의 상투적 수법이다. 미국이 중국과 로씨야의 ‘인권문제’를 떠들어대는 것은 이 나라들의 발전을 어떻게 하나 억제하고 국제무대에서 최대한 고립시켜 저들이 주도하는 불법무법의 서방식 패권질서를 수립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인권’ 소동 역시 반제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는 우리 국가를 고립압살하고 사상과 제도를 전복해보려는 극악무도한 대조선 적대시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선택성은 이중기준을 동반한다... 다른 나라들의 인권실상을 때없이 걸고드는 미국과 서방나라들이 최근 가자지대에서 감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만행에 대해서는 자위권 행사로 극구 비호 두둔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중 기준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4. 조선(북한) 인권에 대한 한국의 비판에 관해

앞에서 밝혔듯, 한국과 조선은 지향하는 정치·경제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 추구하는 가치와 인권 역시 다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은 자유를 앞세우며 사유재산, 사상과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자유권 또는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중시한다.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조선은 평등을 내세우며 공정한 분배와 경제적 평등, 일하고 교육받을 권리 등 사회권 또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중시한다. 국가의 지향하는 목표나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앞세우는 자유권을 더 중시할 수도 있고 사회적 평등을 내세우는 사회권을 더 중시할 수도 있다. 맞고 틀리는 게 아니다.

이런 터에 한국 정부가 한국의 인권 잣대로 ‘북한 인권법’을 만들어, 일방적으로 ‘북한인권 보고서’를 발행하고,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유린 실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게 바람직할까. 더구나 조선과의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는 통일부가 말이다. 조선의 인권을 비판하기에 앞서, 개인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가장 기본적 개인의 자유인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조차 제한하고 억압하는 모순적 한국의 인권상황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겠는가.

 

* 이 글은 2025년 9월 5일 <남북장애인 치료지원협의체>가 “평화와 북한장애인 치료”를 주제로 주관한 전북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재봉 교수 약력

 

약력:
하와이대학교 정치학 박사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운동 대표
한국중립화 추진시민연대 공동대표

대표 저.편.역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Korea: The Twisting Roads to Unification
『이재봉의 법정증언』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평화의 길, 통일의 꿈』
『통일대담: 역사.문학.예술 전문가에게 듣는 평화와 통일』
『한반도 중립화: 평화와 통일의 지름길』

수상:
2019년 한겨레통일문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