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국민주권 '대표자'의 '실용외교' 

[기고] 강문 전 북 대외경제 담당 간부

2025-08-31     강문
한 사람은 편한 자세로 누리는듯한 모습, 또 다른 상대는 정중한 자세, 누가 봐도 평등치 않다. [사진-대통령실]

정상의 외교술에 대다수 국민들은 만족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걸 양보한 대가로 환심을 얻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외교적 '성과라는 것도 굴욕을 감수한 결과라는 걸 뻔히 알지만 그건 무시하고 좋아 보이는 것만 떠올리는 듯하다.

일본과의 불평등한 회담은 논하지도 않겠다.

얼마나 오랫동안 종속적인 관계였길래 그런진 모르겠지만, 한미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긴장감으로 인해 편안해 보이지 않는 '정중'한 자세를 세계가 다 지적하는데, 한국에서만은 무언가를 지키려는 모습처럼 보인 것 같다.

분명히 윤석열과는 다르다. 달라야 했다. 그러나 전혀 달라진 속셈이 보이지 않았다. 

외교는 동등한 상호 간의 소통이이어야 하며, 대등한 다자외교를 상징하는 것이 '원탁회담'(Roundtable) 같은 표현이다. 

한 사람은 편한 자세로 누리는듯한 모습, 또 다른 상대는 정중한 자세, 누가 봐도 평등치 않다. 

사냥꾼의 미끼를 물었을 뿐이다. 미끼인 줄 알면서도 다급한 사냥꾼의 미끼를 어쩔 수 없이 물어야만 했던 또 다른 다급함에 아연할 뿐이다. 그러니 어찌 대세를 판단할 여력이 있었을까. 

북핵문제, 북미회담, 북녘 정상에 대한 미사여구 등 격에 맞지 않은 화제로 시간을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민족의 중대사를 김빠진 악마의 수뇌에게 단지 잘 보이기 위한 '미끼'로 활용한 것도 기가 막힐 일이다. 

외세에 기눌려 세뇌되어 온 국민도 동족에 대한 위기감만 견제할 수 있다면 뭐든 팔아버리는 기득권의 처세술에 계속 희롱당하고 있다. 

트럼프의 외교술수인 소셜미디어(SNS) 선제 공격에 말려들어 처음부터 수그리고 들어갔다. 자존심마저 버린 '실용'(구걸)외교를 마치고 얻은 것은 'Nice Guy'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조선'(북)이 받아들일 여건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대한민국이 부탁하고 미합중국이 원하는 북미정상회담을 운운하며 서로의 체면유지나 한 셈이다. 

그 무대 뒤에서 초대국을 압도하며 다극화로 내닫는 거대한 세력들이 현실적인 실천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을 정녕 두 나라 정상만 모른다는 말인가? 두 정상의 '싸구려 외교', '가소로운 쇼'에 세상이 놀랄 뿐이다. 

"산넘어 산, 들넘어 들"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어려운 일을 겪고 나니 또 다른 어려운 일이 닥친다, 상황이 점점 더 어렵고 곤란하게 변한다는 뜻인데, 곧잘 북녘의 상황을 비유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북은 이미 산을 넘고 넘어, 들도 지나고 지나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지평선에 다다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북녘을 일컬어 '가난하지만 사나운 이웃'이라고 한 건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다. 그 상대는 자기를 지키기에 급급한 그 옛날의 '고슴도치'가 아니라 세상을 노려보며 발톱을 숨겨온 '호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족의 밝은 미래를 예감하고, 각성하여 사대의 근원을 뿌리뽑는 일, 진정한 자유와 민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이다. 민족의 유일한 선택은 자주이다.

누누이 주변에 알려왔지만 조만간 세계는 전혀 뜻밖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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