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별세

[추가] 29일 ‘고(故) 황건 선생 사월혁명회장(葬)’ 추도식

2025-08-28     김치관 기자
황건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 2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2010년 통일뉴스 인터뷰 당시 모습. [자료 사진 - 통일뉴스]

황건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 2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 13호실에 마련됐으며, 29일 오후 6시 장례식장에서 ‘고(故) 황건 선생 사월혁명회장(葬)’ 추도식을 가진 뒤, 30일 오전 5시 발인해 마석모란공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고인은 1939년 평양에서 출생해 1945년 3월 서울로 이사했고,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4.19 혁명 당시 서울대 법대학생으로 시위를 주도했으며, 법민회, 사회법학회 활동을 했다. 1961년 5·16 군사쿠테타에 의해 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사건과 이후 1964년 한일협정 반대투쟁 배후, 소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특히 4월혁명 공간에서 서울대 민족통일연맹 조직위원장과 서울법대 학회평의회 의장으로 활약했고,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결성준비위원회 서울대학교 대표, 전국학생 한미경제원조협정반대 투쟁위원회 위원, 2대악법(반공임시특별법과 데모규제법) 반대 전국학생투쟁위원회 총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같은 경력으로 사월혁명연구소 연구위원장, 사월혁명연구소 4대 소장, 사월혁명회(전신은 사월혁명연구소) 8,9대 상임의장, 사월혁명회 감사 등 사월혁명 관련 단체의 중책을 맡았다.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가져온 노중선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황건 선생은 사물을 이해함에 있어서 본질 문제에 접근해, 통일 문제나 민주화 문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 문제는 사람이 된다고 파악했다”며 “아주 참 끈질긴 뚝심의 소유자”라고 기렸다.

노중선 전 상임의장은 “영어 번역을 해서 밥벌이하고 애들을 키웠는데도 대화에 영어는 단 한 마디도 안 쓸 정도로 철저한 친구였다”며 “사월혁명회도 황건이 만들었고, 나중에 내가 4월혁명회 의장을 한 것도 자기가 물러나면서 강요에 의해 하도록 한 것”이라고 각별한 관계를 회고했다.

황건(黃建) 이력

1939년 7월 2일 평양 상수구리 출생
1945년 3월 서울로 이사
1953~58년 서울중·고등학교 졸업
1958~6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88~94년 사월혁명연구소 연구위원장
1994~96년 사월혁명연구소 4대 소장
2000~07년 사월혁명회(전신은 사월혁명연구소) 8, 9대 상임의장
2007~20년 감사

(자료 제공 - 사월혁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