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만 하고 와도, 동맹은 굳건하다

[기고] 장창준 /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센터장, 평화너머 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25-08-25     장창준

한일 정상회담은 실망을 넘어 분노스러운 결과였다. 과거사 사과는 자취를 감추었고, 역사 정의는 실종되었다. 17년 만에 발표되었다는 한일 정상 공동언론발표문에는 이시바가 하고 싶은 이야기, 트럼프가 듣고 싶은 이야기로만 가득했다.

‘이재명’이라는 이름을 ‘윤석열’로 바꾸어도 전혀 구분할 수 없는 공동언론발표문이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한미일 공조”, “한일관계 발전과 한미일 공조” 등의 표현은 윤석열 외교 정책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윤석열의 정책이 이재명 정부에서도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 한일 정상회담이었다.

단지 역사 정의만 실종된 것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주권도, 평화도, 실리도, 실용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동맹 현대화’에 쐐기를 박으려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명분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북중러의 위협’, ‘한미일 협력’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의 예고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더라도 ‘동맹 현대화’라는 단어가 한미 정상 합의문에 박히는 순간 전략적 유연성, 대중국 전초기지화,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 인상, 국방비 인상 등은 ‘빼박’이 된다. 한미 정상 합의에 기초해 국방부, 외교부는 ‘동맹 현대화’를 본격적으로, 구체적으로, 빠르게 추진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를 만나 ‘동맹 현대화’에 대한 어떤 합의도 보지 마시라.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동맹 현대화’ 자체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만은 우리의 영토도, 미국의 영토도 아니다. 한미 조약은 오직 ‘한국과 미국의 영토에 대한 무력공격’을 상정하고 있을 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규정한 것은 협의뿐이다. 100번 양보해 ‘북중러의 위협’이 실재하더라도, ‘동맹 현대화’에 합의할 의무는 전혀 없다. 

트럼프를 만나 협의만 해도, 동맹은 굳건하다. 제발 아무것도 합의하지 마시라!
 

* 이 칼럼은 평화너머 정책연구소 이슈 브리프 <현황과 분석> 2025년 14호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