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해방과 조국통일의 열기로 마음이 충만했다”

[하태한의 촛불 일지] 광복 80주년과 153차 촛불대행진(2025.8.16.)

2025-08-20     하태한
8월 14일, 15일, 16일, 17일은 매우 바쁜 한 주였다. 광복 80주년 기념일이지만 남다른 의미가 부여되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8월 16일(토) 3주차 153차 촛불행동의 촛불대행진 시작합니다.

정확히 촛불일지를 작성한 지 1년이 되었다. 지인들의 많은 제언과 열정, 노력에 감사하고 기쁘다.

8월 14일, 15일, 16일, 17일은 매우 바쁜 한 주였다. 광복 80주년 기념일이지만 남다른 의미가 부여되었다. 12.3 계엄사태를 극복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했고, 21대 대통령 선거를 승리하고 맞이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타임라인을 따라 기술하며 마음속으로 다가오는 감정선을 그려보겠다.

14일은 국회의장 주최로 국회 잔디마당에서 광복 80주년 전야제 <대한이 살았다>라는 제목으로 행사를 열었다. 많은 문화행사와 발달된 기술로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을 재현했고, K-pop 공연을 통해서 독립과 내란극복을 알렸다.

그러나 이날은 친구들이 수안보에 놀러와서 늦은 시간까지 웃고 떠들고 마셨다. 행사를 참관하지 못하고 대화와 영상으로 참가했다. 다음날 15일 일찍 서울로 출발해서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 시내로 나갔다.

[15일] 통일선봉대, 단일한 대오에서 다양한 대오로

‘광복 80년 평화, 주권, 역사정의 실현 8.15 범시민대회’에 전국을 돌아서 도착한 통일선봉대들이 도착했다. 각양각색의 컬러들이 돋보였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너무 많은 행사가 열리는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는 광복을 알리는 현수막과 대형태극기로 큰 건물들을 치장해서 분위기는 이미 넘치고 있었다. 시청역에 도착하니 대학민주동문회와, 정당(진보당), 사회단체, 민주노총 등의 천막들이 넘쳐났다. 떡과 음료수를 돌리고, 서명대도 많았고, 유인물도 넘쳐났다.

본행사인 ‘광복 80년 평화, 주권, 역사정의 실현 8.15 범시민대회’에 참석했다. 민주노총, 진보당 조끼를 입은 조합원과 당원들이 넘쳐났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전국을 돌아서 도착한 통일선봉대로 대학생, 시민, 노동자들로 각양각색의 컬러들이 돋보였다. 전에는 한가지로 통일된 복장이었으나, 시민, 노동자, 학생들이 다른 색깔의 조끼를 입어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옷에 새긴 글자들도 마찬가지로 다양하게 표시하여, 단일한 대오에서 다양한 대오로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광화문으로 이동해서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을 참관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대회가 한참 진행되는 가운데 나는 광화문으로 이동해서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을 참관하였다. 그런데 탄핵 국면에서는 행사장 앞까지 접근해서 사진을 찍기도 했으나, 정부 공식행사가 되면서 행사장에는 초대장을 신청하고 받은 인사들과 시민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보고 싶은 시민들은 넘쳐났고, 스크린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거리가 멀어져서 아쉬웠으나 어찌하리오. 얼마전까지는 가까이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으나 대통령이 되면서 접근은 더 어려웠다. 제발 국민과도 멀어지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임명식을 마치고, 3부로 공연이 시작되었으나 지하철 시간이 많지 않아 함께한 동지들과 애프터를 하기로 해서 치킨집으로 이동했다. 지지난주에 갔던 경성치킨으로 맥주와 치킨이 일품이고 민생회복 쿠폰도 쓸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오늘도 무용담은 꽃을 피웠고, 마시는 맥주는 윤활제가 되어 목소리들은 신명이 났다.

국민임명식을 실시간으로 취재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기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인증샷!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오늘도 무용담은 꽃을 피웠고, 마시는 맥주는 윤활제가 되어 목소리들은 신명이 났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오늘은 해방과 조국통일의 열기로 마음이 충만했다. 일주일을 다져온 통일선봉대도,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 시민들, 정당인들도 신이나 있다. 이 마음이라면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 건물도 태극기로 넘치고, 통일구호로 도배된 현수막과 걸개그림들이 넘실넘실....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시청 주최의 큰 공연도 하는 것이 ‘진보수’를 가리지 않고 80주년 광복절을 축하했다. 이렇듯 충만한 분위기가 하루뿐이 아니라 달달이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밤은 깊어 갔다.

[16일]  오늘도 조국통일의 열기는 식지 않고 더 충만했다

16일 촛불행동의 153차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은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시작해 바로 행진으로 이어졌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친한 자원봉사자들, 충주와 화곡동친구.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16일은 153차 촛불행동의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에 나갔다. 오후 4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시작한 집회는 간단한 보고 후에 바로 행진을 시작했다. 지방 참가자를 위한 배려와 통일문화한마당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행진은 소녀상을 시작으로 종로구청, 종각역, 을지로입구역, 시청광장, 시청역 7번출구 본집회장까지 이어졌다. 원래는 일본대사관, 광화문, 미국대사관, 광화문역, 서울시청, 시청역 7번출구로 예정되었으나, 청계광장에서 시청까지 극우집회가 있어, 충돌을 방지하기위해 변경을 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김복동의 희망' 부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실제로 시청광장을 지날 때 극우집회 참석자들의 욕바가지를 몇 바가지로 들으면서 지나갔다. 경찰의 저지선 너머에서 들리는 욕설은 승리자의 여유로 듣는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처럼 들리고, 마음으로 받아치지 않고 ‘수고하라’는 여유도 가졌다.

곳곳에 지방에서 올라온 듯한 차번호와 버스 유리창에는 지역과 번호 푯말도 보였다. 이미 물건너간 윤석열 구속과 탄핵, 대선의 부정선거, 중국의 트라우마에 집착하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153차 촛불대행진 본무대.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국민의힘 해산 포퍼먼스. 투표불참 의원 사진을 찢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시청역 근처에서 오후 5시 30분에 시작한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7시에 ‘광복 80주년 통일문화한마당’을 시작했다. 어둑해지고 노래소리 높아지고, 공연도 막마지로 치달았다. 마지막 무대는 우리나라의 공연으로 시작되었고, 대진연 통일선봉대와 청소년통일 선봉대를 따라서 기차놀이가 이어지며 최절정으로 한마당은 막을 내렸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조국통일의 열기는 식지 않고 더 충만했다. 꼭 종교의 메시아를 영접하는 기분처럼 붕 떠올랐다. 이래서 종교에 심취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트럼프 정부나 윤 정부가 통일보다는 전쟁준비에 항상 혈안이 되었는데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확인했다.

광복 80주년 기념 통일문화 한마당.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기차놀이가 이어지며 최절정으로 한마당은 막을 내렸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17일] 왜 떠나고 나서야 알아차리고 배우고 따르려 할까?

17일은 구로시민센터 지도위원과 민주노총간부를 지내고 떠난 강철웅 형님의 9주기 추모식을 위해 파주 낙원공원묘역을 찾았다. 시민센터 동지들과 형님가족들, 연세대 민주동문들이 함께 하였다.

20살 이후의 삶을 자주, 민주, 통일에 투여하고 민주노총에서 근무한 형님의 뜻을 기리고자 모였다. 철웅 형님은 철저한 원칙주의를 견지하고, 투쟁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곧은 나무는 부러진다고 걱정을 하였고, 배우기 보다는 슬금슬금 다른 곳을 바라보기도 했다.

17일은 구로시민센터 지도위원과 민주노총간부를 지내고 떠난 강철웅 형님의 9주기 추모식을 위해 파주 낙원공원묘역을 찾았다.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왜 떠나고 나서야 알아차리고 배우고 따르려 할까? [사진 - 통일뉴스 하태한 통신원]

그러나 지나고 보니 형님의 생활태도와 말씀은 내가 넘을 수 없는 나의 벽이었고, 충고는 몸에 피와 살이 되는 쓴 보약이었다. 나의 나이브와 나약, 불철저를 감추는 행동으로 대립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안다. 왜 떠나고 나서야 알아차리고 배우고 따르려 할까? 지금 이 시간에 철웅 형님의 생각이나 태도, 생활을 따라하거나 못 미치면 하는 척이라도 할 것이라 다짐했다.

파주 너머 임진강의 강바람을 맞으면서 조국통일의 기운을 보내주시고 안녕히 계세요 철웅 형님!!!

며칠을 광복절 주간으로 보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수안보에서 이 글을 작성하지만 괜히 배가 부르고 충만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 생전에 광복의 완성인 민족통일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