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그림 [그림 감상] 2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44)

2025-08-16     심규섭
부채로 입을 가리거나 담뱃대를 뒤로 돌린 행위는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도포의 아랫부분을 쭈글쭈글하게 그렸다. 오랜 시간 앉아 공부한 흔적을 표현한 것이다.

8폭 병풍 그림 속 두 폭에는 실외에서 공부하는 유생의 모습을 담았다.
비단에 수려한 채색은 학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한지에 먹으로 그리고 엷게 채색하여 정갈하게 했다. 
소나무, 버드나무, 매화나무,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거나 무거운 책을 든 일상을 그렸다.
이 그림은 병풍 제작에 필요한 초본 그림이거나, 화첩용으로 제작한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림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토론하는 것인지 강론하는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우측 위쪽에 긴 수염 남자가 그림을 설명한다고 추정한다. 입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수염 난 남자가 스승이고 나머지가 제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제 관계인지, 선후배 관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복식이나 행동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왼쪽 사람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그림에 침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

“접부채는 선비의 애장품으로 용도가 다양하네. 더위를 식히는 부채보다는 교양과 기품을 드러내는 역할이 더 크지. 
김홍도의 다른 그림에서도 얼굴을 가리는 부채가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체면과 염치를 차리는 행위일세. 
말을 하지 않는 남성이 굳이 침 튀김을 방지하기 위해 입을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입을 가리는 행동은 말보다는 듣겠다는 의지이고 동시에 그림에 집중하는 행위일세. 

그 옆에 있는 사람은 한 손에 담뱃대를 들고 한 손으로 그림을 받쳐 들고 있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서 그림을 볼 수도 있네. 하지만 담뱃대를 뒤로 돌렸지. 이 또한 그림에 집중하는 행위일세.
정리하면,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소품으로 표현한 것이지.”

“앞쪽 두 명의 남자가 입고 있는 도포를 유난히 쭈글쭈글하게 그렸군. 비교적 깔끔한 복장의 유생들과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뭔가? 혹시 잘못 그린 것일까?”

“한참이나 보았네. 기법이나 기량 같은 미술 조형 문제는 찾지 못했네. 그렇다면 실제 모습을 보고 그린 것이지. 도포의 아랫부분만 쭈글쭈글해진 것은, 오래 앉아있었기 때문이네. 열심히 공부한 흔적인 셈이지.
일곱 명의 유생 중에, 쭈글쭈글한 도포를 입은 두 명의 유생이 가장 공부를 잘했을 것이네.

작은 질문을 하겠네. 두 명의 유생 중에 누가 더 공부를 잘했을 것 같은가?”

“음, 옷 모양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한 손으로 뭔가를 가리키는 우측 유생을 선택하겠네.”

“이유는?”

“왼쪽 유생은 두 손으로 그림을 잡고 있네. 이에 반해 우측 유생은 한 손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하거나 질문하고 있지. 좌측 세 명의 유생이 집중하고 있네. 이런 사람이 공부를 더 잘하지 않겠는가.” 

“동의하네. 어쩌면 일곱 명은 모두 동문수학하는 유생일 것이네. 중앙의 길고 풍성한 수염의 남자를 스승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스승에게 그림을 잡게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네. 
예의 문제를 떠나서, 두 손이 묶인 상태에서 그림을 설명하는 일은 아주 난감하고, 효율적이지도 않네.
스승에게 수업받는 장면이 아니라 토론하는 장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네.”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들여온 최신 그림을 감상하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생뚱맞네. 중국 그림이 나올 이유가 전혀 없네. 만약 중국의 최신 그림을 감상하는 자리라면 유생이 아니라 부잣집 사랑방이 제격일 것이네.
족자로 만든 그림은 아니지만, 둘둘 말아 놓았다가 펼쳐보는 그림일세. 형식을 갖춘 그림이 아니라 교육용 그림일 가능성이 크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네. 더구나 그림은 눈에 보인다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닐세. 유생은 공부하는 사람이니 그림을 제대로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당연하지.”

“그림의 내용을 알 수 없도록 백지로 표현한 이유는 뭔가?” 

“감상 공부에는 다양한 그림이 필요하네. 따라서 그림을 특정할 수 없었지. 
백지로 표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많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네.” 

“학교를 생각하면 유생이 글을 읽거나 스승이 강독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많을 텐데, 하필 그림 감상 교육 장면을 선택한 이유가 도대체 뭔가?”

“단군 이래,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처음일세. 
사실 사람들은 이 그림의 진면목(眞面目)을 알지 못하네. 그저 그런 풍속화 중에 하나라고 여길 뿐이지.
하지만 이 그림에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핵심 가치와 미술작품의 핵심 역할이 숨어있네. 
유생은 과거시험을 통해 출세를 꿈꾸는 사람일세. 출세는 개인과 세상을 연결하고 품는 그릇이네. 
다시 말하면, 유생이 출세하려면 반드시 그림 감상을 배워야 한다는 말일세.”

“성균관, 사학, 서원의 중요 과목은 철학이라고 알고 있네. 흔히 사서삼경이라고 하지. 논어, 맹자도 아닌 그림 감상이 그리 중요한 것인가?”

“김홍도는 그림 감상을 교육의 핵심이라고 여겼네. 이는 김홍도의 생각이 아니라 임금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이 인정하는 것일세. 
실제 왕은 연초에 왕족을 비롯한 관료에게 그림을 하사했다네. 비단이나 산삼 같은 현물이 아니라 먹지도 팔지도 못하는 그림일세. 
조선 건국 때부터 망할 때까지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매년 1,000점 이상의 그림을 창작해 하사했지. 이를 세화(歲畫)라고 하네.
조선 후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조, 정조 때는 더 많은 세화 창작을 위해 도화서 화원을 대폭 증원하기도 했지.
조선을 그림의 나라라고 규정할 정도였네.”

“알겠네. 출세를 꿈꾸는 유생들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인가?”

“세계관의 확립일세. 
구체적으로는 성리학이라는 철학적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이야기가 슬슬 어려워지는군. 계속해 보게.”

금강전도/겸재 정선/종이에 수묵 담채/130.7*94.1/1734년/국보 217호/호암미술관 소장.세계관을 표현한 그림을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한다. 진경산수화는 조선성리학의 시공간을 표현하고 있으며, 모든 그림의 바탕이다.

“그림은 철학적 시공간을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네. 생소하겠지만, 원론적이고 명료한 개념이지.
철학은 관념, 즉 압축된 생각 덩어리일세.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 하지만 사람은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지. 
그림은 보이지 않는 관념을 보이는 현실로 만드는 역할을 하네. 
동시에 그림의 세계가 곧 이상향이 된다네.”

“그림은 철학을 현실의 신념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군. 더 쉽게는 생각과 현실을 연결한다고 이해하네.”

“<진경산수화>는 이 땅을 이상세계, 신선 세계의 시공간으로 만들지. 이런 인식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준다네. 
<십장생도>는 태평성대에 대한 꿈과 신념을 만들어주고, 선현들의 삶을 그린 <고사인물도(故事人物畵)>는 현실적 삶의 모범이 되네. 
각종 꽃 그림이나 동물 그림은 환경에서 지혜를 배우게 하며, <책가도(冊架圖)>는 양심이 만들어내는 풍요를 보여준다네.” 

“그렇다면, 유생들이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할 그림은 뭔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림이 철학의 시공간을 창조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풍경화일 가능성이 크지.
당시는 산수화라고 했을 것인데, 시대 흐름을 보면 진경산수화가 틀림없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세계관의 정립이 가장 중요하네. 
진경산수화는 조선 사람이 인식하고 수용하는 세계를 표현하고 있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대표 그림일세. 
<금강전도>의 세계는 조선 땅에서 출발하여 우주 끝까지 확장되어 있지. 당시 사람들은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겼다는 말이지.”

“천체물리학이 발전하지도 않았는데, 우주까지 인식한다니 무슨 말인가?”

“성리학의 핵심은 우주적 본성인 양심일세. 인간을 우주적 본성을 가진 존재로 이해했다는 말이지.”

“어떤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지를 통해 그 사람의 가치관을 가늠할 수 있겠군.”

“진정, 사람을 알고 싶다면 심리나 MBTI 유형이 아니라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감상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네.”

“마지막 질문일세. 유생들이 들고 공부하고 있는 백지에는 진경산수화가 그려져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좋은가?”

“진경산수화야말로 한낮 마당에서 보기에 더없이 좋지.”
(*)


[참고]

1) 나이 많은 유생들이 젊은이와 함께 그림 감상을 공부하고 있다. 유학에서는 배움에 나이의 한계가 없다고 본다. 
제사 위패에는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쓴다. 
여기서 학생은 사회적 존재인 모든 사람을 ‘배우는 존재, 공부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개념이다. 

중국의 90세 할머니가 글자를 배우는 모습이 해외 토픽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외국인 기자가 물었다.

“90세 나이에, 필요도 없는 글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할머니의 대답.

“사람이니까.”

2) 중국 남송의 철학자인 주희(朱熹)는 성리학을 집대성했다. 당시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여 기존 유학과 구별하여 신유학이라고 불렀다. 
조선은 성리학을 수용하여 조선 성리학으로 완성했다.
조선 성리학의 시공간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진경산수화이다.
진경산수화는 다른 말로 동국산수화라고 했는데, 동국(東國)은 조선을 말한다. 
진경산수화는 조선산수화라는 말이다.
당연히 조선의 유생들은 조선산수화를 통해 세계를 인식했고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형성했다.

3) 세화(歲畫)-왕이 연초에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그림을 일컫는다. 왕이 주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국가공식 사업이다. 
도화서(圖畫署) 소속 화원 30여 명은 각기 20장, 10여 명의 차비대령(差備待令)화원이 각각 30장을 그렸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매년 900점을 12월 20일까지 경 진상하였다. 
지방 관아에서 소용되는 것은 그곳에 소속된 화원들이 제작하였다. 
제작 기간은 1, 2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이 걸리기도 하였다.

세화는 등급을 나누어 각 전(殿)과 종실, 재상과 신하들에게 하사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60점 정도였다. 연산군 때부터 증가하여 중종 연간에 이르러 신하 한 사람당 20장씩 하사할 정도로 많은 양이 제작되었다. -홍선표(홍익대학교 박물관, 회화사)

*세화 제작은 고려 때부터 있었다. 이를 계승하여 조선 초기부터 도화서가 폐지되는 1894년까지 제작했다. 
왕이 죽은 해나 가뭄, 홍수, 전염병, 전쟁 시기에는 제작하지 않았다.
500여 년의 조선 역사 기간에 제작한 세화의 양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40만 점 이상이다.

*세화의 목적은 왕과 신하(관료)를 같은 정치사상으로 묶는 역할이다. 정치철학의 통합역할을 하는 것이다. 
숙종 때 화원이었던 정홍래의 <호취도>가 세화에 선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매년 정치적 내용을 세화에 담았다는 말이다.

*조선은 세화의 나라였다.
매년 수 백억원의 예산으로 1,000여 점의 그림을 제작해 공무원에게 무료로 하사했다.
세화를 받는다는 것은, 왕과 함께 정치를 하고, 시대 흐름을 주도한다는 의미였다. 
세화를 받지 못하는 전직 관료, 부자 중인, 지역 유지들은 민간 화공이 그린 세화 모작을 구매해 편승했다.
신윤복과 여러 화원 가문은 민간 세화 시장을 개척하여 발전시켰다. 
왕부터 관료, 중산층, 백성까지 공유한 세화는 세계 예술사에 유일무이하다. 

*민간 세화의 장마당 버전을 흔히 ‘민화’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만든 허접한 용어인 ‘민화’는 세화로 바꾸어야 한다.
세화(歲畫)의 세(歲)는 시류(時流)라는 의미가 포함된 사회적 용어이다.
여기에 같은 발음인 세상 세(世)를 사용하면, 시대의 가치를 담은 모든 그림이라는 뜻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