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舞童)] 신명나는 백성의 삶 –2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42)
무동(舞童)이라는 제목은 잘못되었다.
제목 때문에 그저 연주하고 춤추는 놀이 그림이 되었다.
이 작품은 김홍도 풍속화의 대표작이다.
탁월한 기량이나 기법, 구도 따위를 사용했기 때문은 아니다.
풍속화는 백성의 삶을 살피고 올바른 삶을 제시하는 역할인데, 이 그림은 이러한 풍속화의 가치를 가장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으로 묻겠네. 이 그림은 연주하는 악사가 주인공인가?”
“6명의 악사, 삼현육각이 주인공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네.”
“뭔 소리인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아니라니?”
“악기 연주자는 전문직이라 풍속화와 맞지 않네.
만약 김홍도가 악사라는 직업 자체에 관심이 두었다면,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네.
김홍도는 이 그림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과 표정을 상세하게 그렸지. 연주자의 인격이 아니라, 연주음악의 내용이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함이지.
삼현육각의 악사를 그렸지만, 진짜 주인공은 이들의 음악이라는 말일세.”
“보이지 않은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사를 그렸단 말인가?”
“그렇다네.”
“내가 아는 한,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할 방법은 딱 한 가지이네. 바로 악보(樂譜)이지.
하지만 이 그림 어디에도 악보는 보이지 않네.”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할 방법은 없네.
서양의 화가 칸딘스키가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하는 작품이 있네. 음악을 듣고 그 느낌을 선과 색으로 표현한 것이지. 율동, 리듬 따위를 표현했다고 하지만 그림에는 선과 색만 남았네.
그림은 선의 강약이나 장단, 색의 강약과 농담 따위로 율동, 리듬, 울렁임 따위를 표현할 수 있다네.
실제, 음악을 듣고 그림으로 표현한 경우보다, 그림을 보고 음악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지. 소리는 형상의 정보를 간략하게 전달하는 역할이네.”
“그렇다면 그림 속의 악사들은 어떤 노래를 연주하고 있는가?”
“세종 임금은 중국에서 수입한 음악이 아니라 평소에 익히 듣던 음악을 왕실 제사용으로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네.
조선에서 평소에 연주하고 듣던 음악을 기본으로 삼으라는 말이지.
조선 후기에도 이런 원칙은 지켜졌을 것이네.
따라서 삼현육각의 뿌리는 궁중음악, 국가 공인 음악일세.
단지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삼현육각 악사들은 창작곡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음악을 익혔고, 행사의 성격에 따라 선정한 곡을 연주했네.
만약 외국 사절 환영 행사나 사또 행차라면 장중한 분위기의 노래를, 혼례나 마을잔치라면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연주했겠지.
김홍도의 무동 그림에는 배경이 없네.
배경을 없앤 이유는 특정 행사나 공간을 넘어선 보편성을 얻기 위함일세.
노래의 보편성은 조선 문화의 보편성을 표현하는 것과 같지.
그렇지만 악사의 연주만으로 노래의 보편성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네.
김홍도는 이런 한계에 봉착했지만, 천재다운 기발한 생각을 해 내었네.
이 그림에는 연주자의 노래를 가장 잘 수용하는 사람이 있네. 누군지 보이는가?”
“서, 설마... 무동이?”
“그렇네. 악사의 음악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무동일세. 소리는 보이지 않아서 그림을 표현할 수 없지만, 춤은 눈에 보이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네.”
“그래서 억지로 무동을 그려 넣었군.”
“그렇다네.
거문고나 생황을 연주하는 그림은 많네. 거기에는 춤추는 무동 따위는 필요 없지. 악기만 그려도 무슨 노래를 연주하는지 유추할 수 있었거든.
하지만 백성의 음악은 선비문화와 달리 설명할 필요가 있었네.
구체적인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직관적인 정보가 있지.
무동의 춤사위를 잘 보시게. 무동은 웃고 있으며 춤사위는 크고 활달하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밝고 경쾌한 음악이라는 것이지.”
“김홍도는 음악을 그리고자 했고, 보이지 않는 음악을 악사의 표정과 무동의 춤사위를 통해 표현하고 있으며, 그 음악은 밝고 경쾌하다. 이리 정리해도 되는가?”
“정확하네.”
“신윤복의 삼현육각이 있는 그림의 음악도 쌍검무를 추는 무희를 통해 들 수 있고, 기산 김준근의 삼현육각 그림도 줄타기 모습을 통해 음악을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이군.”
“신윤복이나 김준근은 모두 김홍도가 완성한 음악 표현방식을 따르고 있네.”
“김홍도는 왜 이렇게까지 음악을 그리고자 한 것인가?”
“좋은 질문이네.
앞서, 풍속화는 백성의 진솔한 삶을 그리되 이상까지 표현해야 한다고 했지? 풍속화는 기록화가 아닐세. 기록 중심의 의궤나 도감의 그림과는 확연히 다르지.
민본정치라는 조선의 국가철학을 사회에 적용한 것이 예악(禮樂)일세.
예(禮)는 사회 질서를, 악(樂)은 정서의 질서를 뜻하네. 이 둘은 분리되지 않네. 백성의 마음이 곧 사회 질서이기 때문이지.
음악이 흐트러지면 백성의 마음도 흐트러지고, 이는 곧 사회 질서가 망가지고 있다고 여겼네.
백성의 문화가 퇴폐하면 사회도 부패하고, 사회가 부패한 것을 알려면, 백성의 음악(문화)을 보면 된다는 말이지.
삼현육각 연주단은 왕실 음악단과 달리 간편하게 조직된 백성의 악단일세.
무동의 밝고 경쾌하나 춤사위를 통해 백성의 음악과 문화가 밝고 경쾌하다는 것을 풍속화로 표현했네. 이는 김홍도의 생각이자 왕과 규장각 정치인의 바라는 세상이었을 것이네.”
“이 그림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네. 음악, 그저 편하게 듣고 소비하는 문화인 줄 알았네. 심지어는 음악 자체보다는 음향기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지.
현재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주류 음악이 우리의 본 모습이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곧 나의 인격과 철학이겠군.
이 그림의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진짜 화제(畫題)를 뭐로 정하는 것이 좋은가?”
“일본은 예악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네. 다만 우리 민족의 예악을 일본의 것으로 대체하고자 했네. 일본식 노래와 춤, 일본식 예의를 강요했지.
음악이 무너지자 숱한 종일 매국노들이 생겨났네.
우리가 일본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독립투쟁을 한 이유는,
우리의 삶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일세. 다시 말해, 우리의 예악이 일본의 예악보다 수준이 높았다는 말일세.
[무동]이라는 제목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지었네. 무동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예악이 뭔지도 모르게 했지.
아무튼, 소재는 악기를 연주하는 삼현육각이고, 주제는 음악일세.
백성의 노래]가 가장 적합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