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부적(符籍) 2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39)

2025-07-12     심규섭

문배도(門排圖)가 있다.
새해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하여 문에 붙이는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문배도의 주요 소재는 개, 닭, 용, 해태, 호랑이 따위이다.
새벽을 알려 귀신을 쫓는 닭,
붉은 고추나 방울을 달아 집뿐만 아니라 귀신까지 막는 개,
화재를 막고 나쁜 놈을 응징하는 해태는 가장 인기 많은 소재였다.

문배도는 그림과 부적의 중간형이다. 개인의 아니라 가족 단위의 욕망을 담았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문배도는 책만 한 싸구려 종이에 목판으로 찍고 간단한 채색을 했다.
대량으로 제작해 요즘 시세로 1만 원 정도로 저렴했다.
주로 대문과 그 주변에 붙였다. 수명이 다하면 불쏘시개로 사용하거나 버린 소모용 그림이다.

문배도는 대중용 부적이다.
만드는 사람의 능력이나 내공은 전혀 알 수 없다. 사설 화방에서 인쇄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어린아이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며, 부착 위치, 빈부의 차이, 인격의 차이에 따른 차별도 없다.
누구나, 아무 때나, 어디든 붙일 수 있었다.

문배도는 중간 크기의 부적이다.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소형부적이 있고, 광화문이나 관청 대문에 붙이는 대형부적이 있다.
문배도는 A3 크기로 민가나 가정에서 사용하기 좋다.

따라서 문배도는 개인이나 공공용이 아니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부적인 것이다.

문배도-호랑매부적/종이에 목판/국립중앙박물관/조선 후기. [사진 제공 – 심규섭]

문배도의 정수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부적 그림이다.
이 부적은 조선 부적의 완결판이다.
이보다 효험 있는 부적은 없다.
이 부적 앞에는 모든 귀신이 벌벌 떨며 도망가며 나쁜 놈들은 얼씬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불가항력 자연재해까지 거뜬히 막아낸다.
부적은 역할을 다하면서 명작의 반열까지 올랐다.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넣었다.

호랑이는 맹수의 왕이자 조선 땅에서 호랑이보다 강한 동물은 없다.
매는 하늘의 최강 맹수이다.
땅과 하늘의 최강자를 이길 귀신은 없다.
닭과 개를 그린 문배도는 아예 상대가 안 된다.
행여 용이나 해태가 더 강하지 않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용과 해태는 상상의 동물로 현실에 존재하는 호랑이와 매와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삼재부적이다. 호랑이와 매 부적의 응용판이다. 삼재를 강조하기 위해 매 머리를 3개로 만들었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호랑이와 매가 강하다는 것은 현실적 직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난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후기, 호랑이는 단원 김홍도에 의해 군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군자는 인격의 결정체이자 양심의 화신이다.
왕을 비롯한 선비들이 포악한 호랑이를 군자의 상징으로 수용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호랑이처럼 강인한 양심과 날렵하고 무자비한 실천 능력이었다.

군자는 정치인이다.
왕을 비롯한 관료, 선비들은 모두 정치인이다.
흔히 문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정치인을 책상머리에 앉은 나약한 존재로 보이게 하는 종일 매국노들의 용어 혼란 전술일 뿐이다.

백성을 잘살게 하는 것은 귀신이나 요행이 아니라 정치이다. 정치는 권력과 행정력, 군사력 따위를 가지고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현실적 힘이다.

하지만 백성이 잘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치인이 필요하다.
권력을 자신의 탐욕에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세상과 백성의 삶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며, 사람을 모아 세력과 조직을 거침없이 실천하는 능력 있는 정치인을 말한다.
이런 정치인을 군자라고 했다.

백성은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고 불렸다.
군자의 상징을 현실 속의 호랑이와 연결한 것이다.
신선이 호랑이를 데리고 다닌다고 하여, 산군은 산신령의 화신이 되었다.
호랑이는 눈에 보이는 산신령이다.

산군, 산신령은 신선과 동격이면서 용이나 해태 따위를 부리는 존재이다.
또한, 신선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로지 도움만 준다.

매는 숙종 임금 시기에 활동했던 정홍래의 그림을 통해 강인한 양심의 상징이 되었다.
호랑이가 소나무와 까치 따위와 결합했다면, 매는 아침 해와 결합하여 양심을 추구하는 군자를 표현했다.
매가 양심을 추구하는 강인한 수양이라면 호랑이는 무자비한 실천이다.

호랑이와 매는 올바른 정치와 교감하는 상징이다.
백성이 정치와 결합할 때 사악한 귀신, 마마호환, 화재, 홍수, 가뭄까지도 방지하고 이겨내는 효험이 발생한다.

둘째, 최종 결과를 명시하여 수혜 차별에 대한 논란을 없앴다.

이 부적에는 복숭아꽃이 그려져 있다.
보통 복숭아꽃은 홀 꽃인데, 생김새가 겹꽃이어서 국화로 혼동한다.
하지만 겹꽃 품종의 복숭아도 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중국에서 겹꽃 품종을 들여 관상용으로 키웠다.

아무튼, 복숭아꽃은 태평성대의 상징이다.
민본정치를 통해 이루어내는 태평성대이며 사회적 가치이다.
따라서 부적의 효험은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사회공동체 전체에게 돌아가는 공공적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셋째, 호랑이와 매를 결합했다.

육지의 최강자 호랑이와 하늘의 최강자 매를 결합했으니 지구상에 이보다 더 강력할 수는 없다.

육지의 호랑이는 전쟁, 전염병, 화재, 도둑, 살인, 약탈을 막고, 하늘의 매는 가뭄과 홍수, 우박과 같은 기상재해를 막는다.

매가 호랑이 등에 타고 있다. 호랑이는 매를 쳐다본다.
이것은 둘이 힘을 합치고 있다는 의미이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정홍래의 호취도이다. 호랑이와 매는 독립된 소재로 그린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보통 호랑이와 매는 단독으로 그린다.
우리 전통에서 호랑이와 매를 동시에 그린 작품은 이 그림이 유일하다.
현실에서 호랑이와 매가 만날 일은 없기도 하거니와 매가 호랑이 등에 타고 있을 확률은 아예 없다.
상상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상상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마치 둘이 한 몸인 것처럼 만들었다.

호랑이와 매는 과장, 왜곡했다. 닮게 만들되 신성함을 부여하려는 의도이다. 목판에 칼로 새긴 흔적이나 행위도 효험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림 자체의 조형원리로 보더라도 뛰어나다.

넷째, 탁월한 대중성이다.

목판에 새기고 종이에 먹으로 찍은 목판화이다.
찍은 종이나 물감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주사 물감을 이용하면 강렬한 붉은 색의 부적을 만들 수 있다.
목판을 이용해 대량으로 제작했고 가격은 저렴했다.

여러 좋은 것을 하나로 합치고 가격을 낮추는 것은 대중성의 기본이다.
육지의 호랑이, 하늘의 매, 태평성대의 복숭아꽃을 멋있게 결합하여 한 화면에 넣었다.

줄무늬 호랑이와 표범을 결합하여 조선 팔도의 모든 호랑이를 대표하게 만들었고,
매의 몸통과 독수리의 얼굴을 결합해 더욱 용맹하게 만들었다.
또한, 영원성을 뜻하는 괴석, 불로장생과 부귀영화를 통합한 태평성대의 상징인 복숭아꽃을 함께 넣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