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부적(符籍) 1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38)

2025-07-03     심규섭

부적(符籍)은 종이에 글씨, 그림, 기호 등을 그린 것으로 액막이나 악귀, 잡신(雜神)을 쫓거나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물이다.

부적은 사용목적과 기능에 따라서 소원성취(所願成就) 부적과 액막이 부적으로 나뉜다.
물론, 이 두 가지 기능을 합친 것도 있다.

부적(符籍)은 미술작품과 밀접하다.
세종대왕이 기우제를 지낼 때, 용그림을 걸었다는 기록이 있다.
용은 치수, 정치의 상징이면서 비를 부르는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이었다.

민가의 문지방에 붙이는 액막이 부적에는 개, 닭, 매, 호랑이, 해태, 용 따위를 그렸다.
요즘 유행한다는 부엉이, 해바라기, 사과 그림 따위도 부적의 역할을 한다.
모두 부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성취의 욕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의 형식을 빌러 영험함을 높이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원시 벽화에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 그림은 욕망의 시각화를 통해 현실로 만드는 매개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알타미라 동굴벽화, 울산 반구대 벽화도 부적그림이다.
많은 동물을 잡아 풍족함을 누리고, 많은 자식을 낳아 힘을 키우며, 무기를 통해 적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생각, 욕망의 현실화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직관에 따른 것이다.

“들고 보니, 부적과 미술작품의 경계가 아리송하네. 결정적 차이는 뭔가?”

“가성비일세. 비싸면 효험이 높고, 싸면 효험이 떨어지지. 가장 저렴하게 효험을 얻는 형식이 부적일세.”

부적은 두려움을 이기고 욕망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미술작품과 부적의 미술적 경계는 희미하다. 다만 개인적 욕망이냐 사회적 욕망의 구현이냐는 가치의 차이가 있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주사(朱砂)로 만든 부적이 효험이 있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네.”

“주사는 붉은색 물감이지. 알다시피, 붉은색은 사람의 피를 상징하는데 강력한 희생과 의지를 담았으니 효험이 높다는 말이네.”

“닭 피로 부적을 만들면 더욱 효험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는데?”

“닭과 피의 결합일세. 닭은 새벽을 알리는 소리를 내지. 밤새 활동하던 악귀들이 닭 울음소리에 놀라 도망간다고 하지. 이런 능력을 가진 닭과 생명수인 붉은 피가 결합하면 효험이 극대화 하지 않겠나?”

“결국 부적은 세상의 가장 힘 있는 상징을 모아놓은 것이군.
귀신이나 영물에게 힘을 부여한 것은 사람이 아닌가? 사람이 부여한 힘을 이용해 사람이 사용하는 것인데, 이래서 효험을 볼 수 있겠나?”

“어설픈 질문인데, 핵심을 찌르고 있군.
개인의 힘으로 소원성취, 액막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스스로 하면 되지, 뭐 하러 부적이라는 외부 힘이 필요하겠나.
그래서 능력 있고 힘 센 사람은 부적이 필요하지 않다네.

현대에도 부적 같은 그림이 유행한다. 돈 버는 그림이라고 알려진 해바라기 그림이다. 액자도 금색, 배경도 금화로 만들었다. 이런 그림을 걸어놓는다고 부자가 되겠나. 현실적인 실천이 없으면 아무 효험이 없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아무튼,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사람이 결합한 사회는 힘이 강하지. 어떤 개인도 사회를 이기지 못하네. 상징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져야 힘을 가지네.
개인적인 소원성취, 액막이도 모두 사회의 힘에 의해 가능하다는 말이지.”

“부적이 약하고 불안한 사람의 전유물이란 말인가?”

“좁게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내면이 약한 사람일수록 무당이나 미신 따위에 빠져들지.
뭔가 강한 외부의 힘에 의존하려고도 하지.
하지만 부적의 진짜 효험은 외부에 있지 않네.”

“앞서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부적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다빈치의 모나리자,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비롯한 세상 모든 그림이 부적이 아니겠는가?”

“맞네. 다만 복잡함과 단순함, 고급과 저급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좋은 미술작품이 일반 부적보다 훨씬 효험이 크다는 말인가?”

“힘 있고 똑똑한 사람이 미술작품을 사겠는가, 아니면 부적을 사겠는가? 당연히 비싼 미술작품을 사겠지. 효험도 없는 비싼 그림을 살 까닭은 없네. 효험이 크면 비용도 크네.”

“가격은 비싼데 효험이 없는 그림을 구매했다면 사기당한 기분이 들겠군.”

“효험의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네. 자기 능력보다는 제작하는 사람의 힘에 기대면 약발 없는 싸구려 부적을 가질 수밖에 없네.
소지하거나 붙이기만 하는 부적은 약발이 급격히 떨어지네. 부적의 효험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부적을 가진 사람의 의지와 실천이 결합해야 하네.

부적은 행운을 바라는 로또와는 다르네.
재물 부적은 부자가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과 같네. 이런 의지가 현실적 실천을 이루어내는 힘이 된다네.
부적을 가지고도 아무런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아무 효험이 나타나지 않네.

이것이 부적의 진짜 목적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