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 2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35)
작품 제목에 ‘단오’라는 특정 시기를 넣었다.
이 때문에 그림을 해석하는데 한계가 생겼다.
단오는 여성만의 날이 아니다.
남성도 씨름, 택견, 활쏘기, 투석전 따위의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 훨씬 규모가 크고 활동적이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지만, 대략적인 시기를 유추할 수는 있다.
바로 복날, 혹은 삼복(三伏)이다.
삼복은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로 절기상으로 보면 복날은 앞으로 일어나고자 하는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려 있는 날을 뜻한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임금이 삼복 날 관리들에게 얼음을 하사하기도 하고, 백성들은 계곡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
“신윤복은 백성의 풍속을 따르고 좋아했는가?”
“신윤복은 양반이나 선비계층을 위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네. 그렇다고 백성을 위한 그림도 아닐세. 매관매직을 통해 양반이 된 중인, 경제력과 전문성을 갖춘 중인계층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지. 요즘으로 치면 중산층을 겨냥한 것이지.
중인계층은 세시풍습을 아주 민감하게 수용하고 확대 발전시켰네. 심지어 사주팔자, 명리학, 점쾌 따위도 아주 좋아했네.”
“어쨌든, 삼복더위와 여성들이 노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게... 음기, 양기 따위의 민간 풍속과 연관이 있네. 복날은 양기에 의해 음기가 눌려 있는 시기이지. 하지만 말복 이전에 처서(處暑), 즉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네.
무더위가 절정에 이를 때, 결실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그림 속의 여성은 억눌린 음기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임금의 기우제에도 해결되지 않는 극한 가뭄이 들면, 최종적으로 보름달 밤에 홀딱 벗은 여성들이 들판을 뛰어다니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네. 여성의 육체가 강한 음기를 발산하기 때문이라지.”
“여성의 어떤 부분이 음기를 발산한단 말인가?”
“여성성이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르지만, 남성에게 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요소와 같을 것일세.
남자를 자극하는 여성의 요소가 뭔지 알겠는가?”
“그야... 입술, 가슴, 엉덩이 따위가 아니겠는가.”
“그림 속에서 찾아보세.
가슴을 노출한 여성들이 있네. 멱 감는 여성들과 짐을 나르는 여성이네. 짐을 진 여성의 노출은 자녀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전혀 문제가 없네.
하지만 멱 감는 여성의 가슴 노출은 단군 이래 처음이라네. 조선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런데도 당시 사람들은 큰 문제없이 수용했네. 노출의 목적을 음기의 발산이라는 사회 풍습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지.
멱 감는 여성은 엉덩이와 아랫배도 노출했네. 서 있는 여성의 엉덩이는 선이 뚜렷하고 아랫배도 나오게 그렸네. 비록 옷을 입긴 했지만 뒤에서 본 엉덩이도 있네.
이건 작심하고 계획적으로 그린 것이네.”
“아,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네 뛰는 여성은 음부를 드러내는 모습이라고 하더군. 직접 표현할 수 없어서 왼쪽 나무에 비슷하게 그렸다는데...”
“개연성이 있는 말이네. 신윤복다운 발상이지.
아무튼, 여성이 그네를 뛰면 치마가 날리고 속바지가 드러나네. 다리를 하늘 높이 들어 음기를 널리 퍼지게 하는 효과가 있네.”
“또 뭐가 있는가?”
“여성의 매력 중에 40% 이상을 머리카락이 차지한다는 말이 있네. 그래서 여성은 머리단장에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하지. 가체도 머리단장의 한 부분일세.
이 그림에는 긴 머리를 풀어 다듬는 장면이 있네.
야외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손질하는 경우는 없네. 그럼에도 그림 속에 넣은 것은 음기를 발산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이지.”
“여성의 음기를 발산하는 장면인데, 뜬금없이 젊은 남자를 둘씩이나 그렸네. 머리를 깎는 것으로 보아 중으로 추정하는데 이유가 뭔가?”
“중은 사회적으로 거세된 존재일세. 남자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중성이거나 여성에 가깝네. 실제 조선후기 중들은 남성보다는 여성의 생활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중이 여성의 벗은 몸을 훔쳐보았다간 멍석말이를 당했을 것이네.
일반 총각이나 갓을 쓴 남성이 아니라 굳이 젊은 중을 그린 것이 의아했네.
여성이 음기를 발산하는 것과 젊은 중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이군.”
“당시 여성을 훔쳐보는 그림은 유행이었네.
여성을 훔쳐보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감추어 놓은 욕망을 밖으로 드러내는 사회적 변화를 적극 반영한 것이네. 엄격한 도덕과 양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억눌렸던 욕망이 분출하던 시기였네.
그럼에도, 욕망을 드러내는 일은 신중했지. 부채로 얼굴을 가리거나 소극적으로 표현했지.
신윤복도 이러한 흐름을 그림 속에 표현했지.
웃고 있는 남자들의 표정을 그렸네. 부채로 얼굴을 가려 표정을 숨기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네.
선비나 일반 남자가 아니라 까까머리 젊은 중을 그린 것은 이중적 의미가 있네.
여성의 음기에 반응하는 젊은 남자일세.
중은 사회적 약자이자 중성적 존재이니 욕망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지.
이 그림은 꽤나 복잡하네.
겉으로는 복날과 처서라는 절기를 이용해 풍년과 결실을 맺는 음기의 발산을 표현했네.
안으로는 여성성의 강화, 욕망의 발현이라는 사회적 내용도 담겨있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