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 1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34)

2025-06-06     심규섭
신윤복/단오풍정(端午風情)/종이에 채색/28.2×35.2cm/18세기 말~19세기 초/간송미술관 소장. 다양한 여성을 모습을 한 그림에 담았다. 낮과 밤이 공존하고 다른 공간과 시간을 한 그림에 표현한 것은 신윤복 그림의 전형이다. 단오풍정이라는 제목은 후대에 정한 것으로, 작품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이 때문에 작품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그네 뛰는 여성의 치마를 자극적인 다홍색으로 칠해 내용을 강조하고 집중력을 높였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신윤복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네. 여성들이 멱을 감고, 그네를 타거나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했네. 무엇보다 벗은 여성을 훔쳐보는 동자승은 해학의 백미라고 하지.”

“제목이 단오풍정인데,
단오는 절기를 뜻하는 말인데, 풍정(風情)은 무슨 뜻인가?”

“국어사전을 참고하면,
풍정(風情)-정서와 회포를 자아내는 풍치나 경치. 세상의 이러저러한 실정이나 형편이라고 하네.
더 중요한 건,
단오라는 절기를 그림 제목으로 붙인 것이 문제가 있네.
제목에 현혹되거나 한정되어 작품의 본질을 놓쳐버리는 오류를 범했네.
여성이 야외에서 옷을 벗고 멱을 감을 수 있는 시기는 초여름부터 초가을 정도이지.
단오가 음력 5월 5일이면 대략 6월 초반인데, 어쨌든 여름인 건 맞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오라는 절기를 특정하기도 어렵네.
단오 때, 여성들의 대표적인 놀이는 창포로 머리를 감고, 그네타기, 널뛰기한다고 알고 있네.
그런데 그림에는 창포에 머리를 감는 여성은 없네. 세수를 하거나 물로 머리를 매만지는 정도일세.
그냥 멱(간단한 목욕)을 감고 있는 모습일세.
여성이 그네를 타고 있는데, 뭔가 어설프네.
일단 그네가 너무 작아. 그네를 묶은 커다란 나무도 보이지 않고 그네 받침은 여자 발보다도 작네. 이건 아이들 놀이용이거나 임시로 만들었다는 거지.
보통 널뛰기와 달리, 그네뛰기는 남녀의 공동놀이일세.
『동국세시기』에는 ‘항간에서는 남녀들이 그네뛰기를 많이 한다.’하여 그네가 여성들만의 놀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지.
그런데 그네뛰기를 함께 하는 남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네.
단오 명절에 여성 혼자서 그네뛰기를 하고 있으면 오히려 궁상맞지 않겠는가.
나는 그저 한여름 피서를 즐기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이네.”

“정확한 지적일세. 그동안 이 그림을 분석하는 내용은 모두 천편일률이네. 단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지.
그림 속 이야기는 매끄럽지 않네.
각자 따로 노는 느낌인데 이유가 있네.
이건 조금 후에 이야기하겠네.”

“그림 속 여성의 정체가 궁금하군. 모두가 기생이라고 하는데...”

“기생이라고 특정할 수 없네.
신윤복 그림에 나오는 여성은 모두 기생이라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오판이자 왜곡일세.
졸지에 기생이 조선을 대표하는 여성이 되어 버렸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이 걸그룹이라고 하는 것처럼 황당하지.
그림 속의 여성은 평범하네.
조선시대 여성의 대부분은 가체를 했네. 고급 저급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림 속 술과 음식 보따리를 이고 다니는 주모도 가체를 했네.
우리의 시선이 아닐세.
외부의 시선, 특히 일본의 시선으로 조선 여성을 본 것이지.”

“다홍치마와 노랑 저고리를 입고 그네를 타는 여성은 매우 자극적이네. 평소에 저런 옷을 입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기생밖에 없다고 들었네.”

“청색 주름치마도 고급일세. 하지만 천민 여자도 입고 다닐 정도로 유행이었네.
다홍치마와 노랑 저고리는 평소 복장이 아닐세.
특별한 날이나 입는 비단옷일세.
명절에는 아이들도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비단 색동옷을 입었네. 하물며 젊은 여성이 놀러 나오는데 다홍치마를 입는 게 뭔 대수인가.
따라서 이런 옷을 입었다고 모두 기생이라고 여기는 것은 명백한 오류일세.”

“실제, 신윤복의 그림에는 기생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가. 그러니 다홍치마와 같은 자극적인 옷을 입은 여성을 기생이라고 여기는 것은 설득력이 있네.
다시 묻겠네. 그림 속 여성의 정체는?”

김홍도의 풍속화 중에 댕기머리의 어린 여성이 등장하는데 뒷모습이다. 머리에 솥단지를 이고 부채와 장죽을 들었다. 심부름하는 여종인데도 얼굴을 보이지 않게 그렸다. 어린 여성을 그리지 않는 사회적 규율이 엄하게 작동했다는 말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여기에는 조금 복잡한 이야기가 있네. 말이 길어지고 지루할 수 있으니 심신미약자는 귀를 닫으시게.
일단 미술조형 차원에서 말하겠네.
이 그림은 원래 좌우가 각각 독립된 그림일세. 그런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하나의 그림으로 합친 것이지.
그러다 보니 매우 산만해졌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면의 중심에 있는 그네 타는 여자의 옷에 자극적인 색을 칠한 것이지.
애초 그네 타는 여성은 은은한 청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을 것이네. 그런데 합친 그림이 산만하자 다홍색으로 덧칠을 한 것이지.
이 그림은 수묵담채화일세. 수묵으로 형태를 만들고 엷은 색을 칠했다는 말이지. 그런데 유독 그네 타는 여성의 치마만 진한 다홍색을 칠했네.
진한 채색과 담채는 물감의 밀도와 선명도에서 차이가 나기에 혼용하지 않는 것이 기본일세.
신윤복이 이런 정도의 기본 채색법을 몰랐겠는가?
신윤복이 아니라 후대에 덧칠했을 가능성이 크네.
또 하나, 이건 순전히 경험에 따른 추정일세.
우리 그림에는 젊은 여성, 특히 20세 미만의 어린 여성은 거의 그리지 않는다네. 남자아이와 댕기 머리 한 젊은 남자는 그리지만, 비슷한 또래의 여성은 찾기 어렵네. 굳이 찾자면 집 안에 있는 경우가 있지만, 실외에 있는 여성은 본 적이 없네.”

“갑자기 소름이 돋는군.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어린 여성을 딱 1명 본 적이 있네. 그런데 뒷모습이더군.
그 많은 어린 여성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네.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어린 여성을 그리면 곧바로 성적 대상화가 된다네. 이를 경계한 것이지.”

신윤복/장옷 입은 여인-여속도첩/23.3*19.1cm/국립중앙박물관. 신윤복은 기생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을 훔쳐보듯이 그렸다. 위 그림에서 아이를 등에 업은 여성은 누이이다. 인물의 비례가 장옷 입은 여성과 맞지 않고 표현이 거친 것으로 보아, 후대에 추가하여 그려 넣은 것이다. 불특정 젊은 여성을 그리는 것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결국 어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는 말이군.
그런데 같은 젊은 여성인데도 기생을 그린 이유는 뭔가? 천민이라고 차별하는 건가?”

“차별했네.
기생은 정부에 소속된 공인이기 때문이지.
또한 공연, 예술 활동을 하는 사회인이기도 하네.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은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공적인 존재이니 그림의 소재가 될 만하지.”

“가만, 그러니까 젊은 여성을 그릴 수 없다 보니, 우회하여 기생에 투영하여 표현했다는 말인가?”

“그렇네.
하지만 이 전통을 깬 화가가 신윤복일세.
신윤복은 기생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을 주저하지 않고 그렸지. 신윤복은 공인 신분이던 김홍도와 달랐네.
그림 속에 다양한 모습의 젊은 여성을 그린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었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