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풍속화첩-서당] 2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31)
“그렇다면 김홍도의 풍속화인 서당이 위작이란 말인가?”
“위작(僞作)이 아니라 모작(模作)일세.
실제 서당이라는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흐릿한 선묘 위에 진한 선묘로 덧칠을 한 흔적이 보이네.
어떤 사람은 오른쪽 학생들과 왼쪽 위 학생들 간의 원근을 표현했다고 분석하네.
하지만 울고 있는 아이의 무릎 부분이나 왼쪽 위 학생의 소매 끝, 훈장 옷 끝, 붓과 벼루를 보관하는 연상(硯床)의 덧칠을 설명하지 못하네.
김홍도의 필법은 변화가 커서 모사하기 쉽지 않네. 그림에서 비상식적인 모습이나 특이한 붓질 따위는 모사하는 과정의 오류나 화공의 능력에 따라 생긴 것이네.”
“오른쪽 앞에 댕기 머리 아이의 옷을 쪼글쪼글하게 그린 것은 매 맞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왼쪽 학생이 왼손으로 책장 넘기는 것, 노란색 갓을 쓴 학생을 기이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네.
이 모든 것이 모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란 말인가?”
“김홍도의 풍속화 곳곳에 오류가 발견되네.
어떤 사람은 이런 오류를 찾아내어 김홍도를 신비한 존재로 만들거나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하지. 상당히 자극을 주기에 관심을 끌기도 한다네.
하지만 서양미술의 관점으로 우리 그림을 해석하기에 생기는 오해일세.
도화서는 국가 미술 기관이고, 화원은 국가에서 녹을 받는 공무원일 뿐이네. 그래서 도화서에서 창작한 작품에는 개인의 낙관이 없네.
이 말은 개인의 흔들림이나 기이한 기법, 오류, 속임수 따위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말일세.
도화서에서 창작한 작품은 그야말로 국가가 공인하기 때문에 규장각 관리와 도화서 화원들이 꼼꼼한 교차 검증을 했네. 오류는 있을 수 없네.”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홍도 풍속화첩은 모사한 수십 점의 화첩 중에 하나란 말인가? 그렇다면 수준은 어떤가?”
“김홍도의 원본을 모사했네. 김홍도가 포착한 세상, 김홍도가 표현한 백성의 모습, 김홍도의 구도와 붓질이 녹아있지. 여기에 최고 국정 책임자인 임금의 철학과 규장각 실무책임자의 정무 감각과 정치력도 포함되어 있네.
김홍도의 그림이면서 당대 조선의 가치가 포함된 탁월한 미술작품임은 틀림없네.
하지만 풍속화첩은 그림마다 편차가 있고 창작시기가 다른 작품도 있네.
다시 말하면, 도화서에서 모작한 그림도 있고, 광통교 화공에 의해 모작한 그림이 뒤섞여 있네. 전체적으로 최고는 아니지만, 상급에 속하네.”
“국가에서 모작을 주도했다면 정식 미술 문화로 볼 수밖에 없겠군. 가장 큰 이유는 뭔가?”
“조선시대 선비나 정치인은 영민했네. 대중매체를 활용한 정치는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당시 그림은 요즘의 TV, 영화와 같은 시각 매체와 같았지.
왕과 관료는 같은 그림을 보면서 철학과 정치를 공유했고, 이는 백성까지 이어져 사회통합을 이루어냈지.
조선을 철학의 나라, 문자와 말의 나라, 사대부의 나라, 민원의 나라와 같은 여러 수식어를 붙이는데, 여기에 그림의 나라도 추가할 수 있네.
조선은 그림으로 정치를 했네.
매년 국가에서 공인한 1,000여 점의 그림을 제작하여 주요 관청에 걸고 팔도 관료에게 하사했네. 조선 500여 년 동안 최소 40여 만점을 제작한 것이지.
국가 주도의 미술문화가 성행하면서 민간 화랑에 영향을 주었지.
광통교 사설 화랑을 중심으로 팔도 화상과 화공에 의해 매년 수십만 점의 작품이 유통되었네.”
“모작(模作)과 위작(僞作)은 어떻게 다른가?”
“남의 그림을 베껴 그리는 점에서는 똑같네.
다만, 대놓고 베끼느냐, 몰래 베끼느냐의 차이만 있지.
그림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작했네. 모작은 훌륭한 그림 공부 방법이기 때문이지.
안견, 겸재 정선, 김홍도, 신윤복, 강세황, 윤두서, 장승업처럼 유명 화가는 모두 모작을 통해 그림을 배웠고, 이후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지.
조선 정부는 모작에 관대했네.
당시 회화 작품 인쇄는 불가능했네.
좋은 작품을 많은 사람이 누리기 위해서는 모작밖에 없었지. 이러한 모작 문화는 본그림을 바탕으로 한 속화(俗畫, 민화)의 발전으로 이어졌지.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1970년대부터 발전한 미국의 팝아트보다 200여 년이 앞섰네.”
“위작(僞作)은 범죄가 아닌가?”
“모작 문화가 발전하면 위작은 의미가 없네.
모작은 미술 문화를 발전시키기지만 위작은 그야말로 탐욕일세.
화가나 시대의 가치를 훔치는 것이지.
미술작품으로 허영과 권력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위작이 있네.
위작은 그저 돼지 목에 거는 진주 빛깔 유리 목걸이에 불과하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