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3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28)

2025-04-24     심규섭

“왼쪽 그림은 너무 어렵네. 얼핏 문인화를 보는 느낌일세.
감상자는 월식이 뭔지도 모를 것이네. 거기에다 허름한 집안에서 남녀가 정을 나눈다고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네.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고 했으나, 그 두 사람이 반드시 연인인지 어찌 알겠나? 반역을 모의하는 역적이나 도둑놈일 수도 있고.”

“정확한 지적이네. 대중이 감상하기에는 너무 어렵지. 남녀의 사랑은 세속적이자 개인적이네. 이런 그림은 불특정 다수를 이해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른쪽 그림이 추가되었네.”

“신윤복 자신의 의지인가, 아니면 화상이나 주변 사람의 요청을 수락한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네. 설명이 필요한 것은 신윤복이 아니라 대중이기 때문이지. 신윤복의 낙관이 있는 왼쪽 그림을 팔기 위해 화상이 의도적으로 추가했을 가능성도 있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왼쪽 공간에 비해 오른쪽 사람을 너무 크게 그린 것이 거슬리는데, 아예 대놓고 왼쪽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 굳이 하나의 그림이라고 숨기지 않는다는 말일세.”

“그렇다면 오른쪽 남녀의 모습은 왼쪽 그림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가?”

좌측과 우측의 시공간이 맞지 않는다. 우측 그림은 뭔가 이상하다. ​​​​​​​자세나 발모양을 보면 우측 4~5시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이렇게 그려야 사람 얼굴이나 옷 모양을 자세히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림 속의 남녀는 마치 1~2시 방향으로 걷는 것처럼 보인다. 이유는 담 벽의 방향 때문이다. 좌측의 벽과 억지로 연결하면서 발생한 오류이다.​​​​​​​​​​​​​​ 또한, 좌측 집에 비해 우측 남녀는 너무 크게 그렸다. 애초 좌측 그림만 있었을 것이다. 이후 좌측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우측 그림을 그려 붙인 합성그림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내용은 잘 설명하고 있지만 상황은 다르네.”

“자정에서 새벽 3시 사이에 남녀가 헤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네.
하나하나 단서를 찾아 설명해 보겠네.
신윤복이 살았던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조선시대 통행금지 시간은 대략 밤 10시에서 새벽 4시 경일세. 이 시간에는 고위 관직자로 할지라도 어김없이 순라군에게 끌려갔지. 하물며 남녀가 연애 목적으로 통금을 어겨 함께 끌려간다면 개인뿐만 아니라 가문까지 쪽팔림을 당하겠지.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가능하지 않네.”

“통금이 끝난 새벽에 돌아가는 상황일 수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삼경이라는 시간 알리바이는 깨졌네.
문제는 만남인가, 헤어짐인가 하는 상황만 남았지.
상식으로 보면, 만날 때는 둘이, 헤어질 때는 각자이네. 헤어지는 모습을 표현할 때 남녀를 함께 그리면 오해가 생기네. 혼자 있거나 떨어져 있는 모습을 그려야 이별로 보이지. 이것은 예술 표현의 기본일세.
그런데 그림 속 남녀는 너무 붙어있네. 누가 보아도 만남일세.”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 하는군. 그림 속 글귀에는 분명 헤어짐을 아쉬워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이별이라 여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추가로 덧붙인 그림 속 남녀는 분명 만남이라는 말이군.
알겠네. 그렇다면 그림 속의 남녀는 처음 만난 사이인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요즘 같은 원나잇(?)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네. 여러 번의 대면을 통해 상대에 대한 호감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늦은 밤에 만날 수 있는 것이지.
그림 속의 남녀는 만나서 치열한 밀당 전투를 하는 중이네. 서로의 마음을 알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

“그걸 어떻게 아는가?”

“남자가 먼저 도발했네.
늦은 밤에 만나자고 연락한 것도 남자이네.
그런데 남자는 뜬금없이 초롱을 들고 나왔네. 여자는 초롱의 의미를 직감적으로 알았지. 이때부터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상대의 마음을 떠보는 전투가 시작되었네.”

“밤늦은 만남에 여자가 응했다는 것 자체가 남자에 대한 호감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이네. 남자가 도발한 것은 둘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함이지.”

“하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알고 있었을 것이네. 이 전환점을 넘지 못한다면 그저 그런 관계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지. 어쩌면 인생이 통째로 달라질 수 있는 운명의 순간이군.
이 둘의 밀당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흥미진지하군.”

쓰개치마, 여자의 발길, 초롱, 선물을 꺼내는 손 따위는 남녀 관계에 대한 정교한 장치이다. 걸으며 대화하는 장면이다. 함께 어두운 밤길을 걷는다는 설정은 둘의 관계가 이미 깊었음을 의미한다. 혹은 사랑은 함께 밤길을 걷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걷는 행위는 긴장감을 높이면서 동시에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긴장과 이완을 통해 감상자를 그림 속 남녀의 상황으로 이끄는 화면 연출력은 탁월하다.​​​​​​​ 초롱은 밤길을 밝히는 역할과 동시에 사랑의 전환점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일단 여자가 쓴 쓰개치마의 용도를 알아야 하네.
여자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인데, 장옷과 쓰개치마 두 종류가 있지. 장옷은 소매가 있는 평범한 윗옷일세.
이에 반해 쓰개치마는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특별 제작했고 가격도 비쌌네. 얼핏 비슷하여 혼용하지만 분명 쓰임새의 차이가 있네.
장옷은 유부녀가, 쓰개치마는 주로 젊은 여성이나 기생이 쓰고 다녔지.”

“젊은 여성이 좀 더 세련된 쓰개치마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쓰개치마는 젊은 여성의 연애 밀당용품 역할을 한다는 점일세.
젊은 남자에게 장죽(긴 곰방대)이라는 공격형 연애 무기가 있다면, 젊은 여자는 쓰개치마라는 방어형 무기를 사용했네.
쓰개치마를 연애 무기로 사용한 것은, 여성의 진짜 보물인 얼굴과 표정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일세.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상대방 남성에게 자신의 마음이나 정보를 숨겨 관계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행위와 같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성을 대하는 것처럼 남자는 답답할 수밖에 없지.
쓰개치마를 그림의 여성과 연결해보면,
늦은 밤, 사람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쓰개치마를 두른 것은 이해가 되네. 하지만 남자를 만나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쓰고 있네.
여성이 남자의 호감을 사거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을 보여야하지. 풍성한 머리카락과 모양은 여성의 매력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거든.
그럼에도 쓰개치마를 벗지 않은 것은 밀당에 필요했기 때문일세.”

“그림에는 얼굴 전체를 가릴만한 풍성한 쓰개치마를 쓰고 있지만, 정작 얼굴을 통째로 드러내고 있군. 긴 치마를 올려 묶고 다리를 노출한 것도 절묘하네.
공격과 방어를 하며 줄 듯 말 듯 남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행동을 동시에 해내다니. 아, 진정한 밀당의 고수이네.”

“남자도 만만치 않네.
밤임에도 큰 갓을 쓰고 치렁치렁한 소매의 고급 도포와 가죽신을 신었네.
남자는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않았네. 만나는데 거추장스러운 초롱을 굳이 들고 나왔지.
초롱은 밤길을 밝히는 배려임과 동시에 둘만의 좋은 밤을 보내자는 암시이네. 남녀 사이에 초롱을 밝히는 것은 마치 신혼 첫날밤을 보내는 것과 같은 무언의 신호였다네.”

“적극적이고 노골적이군.
여자의 발길은 남자에게 향하고 있는데, 정작 상반신은 아직 다른 쪽을 향해있고 실눈으로 남자의 동태를 살피고 있네.
아직 마음을 정한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네.”

“남자도 눈치를 챘지. 그래서 여자의 마음을 얻는 결정적 한방을 준비했다네.”

“그게 뭔가?”

“선물일세.
남자는 초롱을 오른손으로 옮겨 잡고, 왼손으로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네. 남자는 분명 여자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네. 화장품, 비녀, 옷 장신구, 향낭, 은장도 따위로 추정할 뿐 뭔지는 확실하지 않네.”

“물건의 종류보다 명품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당시 명품은 모두 청나라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들었네. 남녀불문 청나라 물건이라면 환장했다지.
여자의 마음을 잡는 결정적 한방은 틀림없이 청나라 직구 명품일 것이네.”

“여자가 좋아하는 물건은 그야말로 사람마다 다르네. 모든 여성이 비싼 명품을 좋아한다고 여기는 것은, 모든 남자가 예쁜 여자만 밝힌다는 말처럼 천박한 생각이네.
댕기 정도의 소박한 선물에도 깊게 감명하고, 명품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

“어쨌든 남자의 결정타는 성공했는가?”

“왼쪽 그림과 연관시켜서 보면 성공했네. 인적이 드문 건물 안으로 들어가 월식이 있는 칙칙한 밤을 함께 보냈지.”

"도대체 어떤 명품이기에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