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브리핑] 한민족과 한반도를 잘 알았던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리 민족에 대한 진정성은 ‘민족’과 관련한 그의 몇...

2025-04-23     데스크

한민족과 한반도를 잘 알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1일(현지시간) 88세로 선종했습니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12년 동안 청빈하고 소탈한 행보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빈자들의 친구’, ‘개혁의 아이콘’, ‘첫 남미 출신 교황’과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현실 참여에 적극적이었으며,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를 묘사하는 키워드 두 가지를 고르라면 ‘약자들의 수호자’와 ‘평화의 사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면은 그의 개혁성과 맞물려 매우 강한 울림과 놀라운 메시지를 주곤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 낙태, 불법 이민 문제 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해 깊은 관심과 개혁적 태도를 보여 가톨릭 내 보수진영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 곳곳에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고 발걸음을 떼기도 했습니다. 2015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2017년에는 로힝야족 추방으로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찾아갔으며, 2천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2021년 이라크 땅을 밟아 무장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두고도 끊임없이 평화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같은 사회적 약자와 세계 평화에 대한 정체성은 한국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정통한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2014년 아시아 대륙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할 정도였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시 한국사회에서 갈등이 집약된 사회적 약자들인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송전탑 반대 밀양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했습니다. 후에 교황은 이때 유족들로부터 추모의 의미를 담은 노란 리본을 받아 달았던 때를 회상하면서 “한 사람이 ‘중립을 지켜야 하니 (노란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냐’고 물었다”며 “나는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고 밝혀,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일관되게 지지했습니다. 방한 당시 교황은 첫날 공항에서부터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일성을 울렸으며, 마지막 날까지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를 위해 여러 형태로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그는 한반도 격동의 시기였던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6.12 북미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주요 고비마다 ‘한반도 평화’를 언급했습니다.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방북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궁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달하자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문 대통령이 2021년 10월 교황궁을 방문해서도 “교황님께서 기회가 되어 북한을 방문해 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교황은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고 화답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리 민족에 대한 진정성은 ‘민족’과 관련한 그의 몇 가지 발언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2014년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교황은 “남북한은 자매처럼 같은 언어를 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머니가 같다는 말”이라고 믿기지 않는 표현을 구사했습니다. 또한 교황은 2021년 10월 교황궁을 방문한 문 대통령이 방북을 주선하자 “(남북) 여러분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느냐”면서 “기꺼이 가겠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교황은 ‘자매’, ‘어머니’, ‘형제’ 그리고 ‘같은 언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핏줄’과 ‘언어’라는 민족의 중요한 징표를 공유하고 있기에 ‘하나의 민족’임을 환기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토록 한민족과 한반도를 잘 알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습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갈등과 전쟁이 끊기질 않고, 또한 남과 북이 오랜 기간 교착상태에 있는 지금 그의 부재가 안타깝고 가슴 시립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애도문의 한 구절로 우리의 마음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혼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빛 속에 안식하시길 기도드리며, 그분의 뜻과 실천이 이 땅의 희망으로 길이 남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