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동지들이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
[하태한의 촛불 일지] 135차 촛불대행진 (2025.4.12)
4월 2주차 12일 135차 촛불대행진 후기 들어갑니다.
이번주는 비상행동에서 집회를 잡지 않고 숨고르기에 들었다. 그러나 촛불행동은 멈춤이 없이 계속 촛불을 들었다. 지난주에 이어 비가 오는 와중에도 12일 오후 4시 집회의 시작을 알렸다.
고향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랄까 시청역 7번 출구는 매우 친숙한 느낌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였지만, 내란 수괴와 잔당들의 행동은 다시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란사건과 탄핵으로 끌려 내려온 범죄자가 아니었다. 버젓이 손을 흔들고 포옹하고 의전을 받으면서 걸어나오는 모습은 저 자가 사람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인 것 같다. 거기에 내란에 복무한 주요종사지들의 뻔뻔함과 귄한을 행사하는 당당함은 아직도 내란이 진행 중이라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에 촛불행동은 내란잔당 척결과 민주정부 수립의 날까지 진행한다고 했다.
지진판의 충돌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해소하고 평온이 살아나고, 정당들은 대선으로 집중하고, 시민사회, 언론은 개혁과제로 돌아가서 집회참석 인원은 급격히 감소했다. 탄핵집회를 처음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용과 열기는 거대한 수괴를 제거하고 잔불을 정리하는 느낌이다. 구호의 내용도 윤건희의 재구속, 한덕수의 탄핵이 주를 이루었다.
구로지인 현혜정 선생과 둘이서 참석했다. 비로 깃발을 펴지 않고, 오랜만에 집회장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은 취재와 촬영으로 집회에 집중한 경우가 적었다. 오늘은 앞자리에서 구호도 외치고, 피켓도 높이들고 노래도 따라 불렀다. 참석 숫자가 줄어드니 집중도는 올라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계속되었으나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이러다보니 집회장의 대형스크린에 얼굴이 자주 잡혔다. 나는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는 편이었으나, 옆의 현 선생은 더욱 신나게 외치거나, 피켓을 흔들었다. 오히려 더 재미있어하고 신나하고 행복해 했다.
현 선생은 박근혜 탄핵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회라는 것을 경험했다. 나와는 10년 동안 동네 밴드 생활로 맺어진 인연인데 지금은 촛불동지로 발전했다. 오히려 더 신나하고 있다. 길눈이 조금 부족해서 나올 때는 항상 대림역에서 함께 나와야 했다. 숭례문 앞에서 남대문이 어디에 있냐거나 여기가 어디냐고 묻기도 하지만, 집회와 행진에는 원칙주의에 입각해서 진심으로 대했다. 흥도 매우 높아 노래에 맞추어 춤도 잘 춘다. 두 대통령이 만들어낸 투쟁커플이 되었다.
또 하나는 고려대 친구들이다. 오늘도 참석을 하였다. 부부에 지인 2명까지 참 모범이다. 사실은 카톡으로 오늘 집회에 나올 것인지를 물었고, 전화해서 확인도 했다. 나올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나오라고 말에, 나도 그냥 나오기로 정했다. 거기다 현 선생도 나가자고 독려하니 안나올 수가 없었다.
탄핵까지 참석하기로 했던 약속과 촛불일기는 형식적으로 뜻을 이루었으나, 실제적인 탄핵과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완성체까지는 아직인 듯 하다. 흔들리던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계기를 동지들의 결정에 따라 함께 하게 되었다. 항상 동지들이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오늘 행진 코스는 시청, 을지로입구역, 종각, 안국역, 동십자각, 총리공관 입구까지였다. 행진하는 중간중간에 버스 안에서, 길거리에서 손을 흔드는 시민들이 많았다. 확실히 분위기가 전과는 달랐다. 웃는 얼굴로 기쁘게 흔드는 모습은 파면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행진을 마치고 다음주 집중집회를 예고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 윤석열 탄핵과 사회대개혁 비상행동도 다음주에 다시 집회를 공지했다.
날씨도 쌀쌀했고, 비를 맞아서 출출했다. 동지들과 인사동에서 막걸리와 두부, 파전으로 애프터를 하였다. 못나온 청주의 정규원은 10만 원을 보내주며 막걸리값을 보내주었다. 자신도 서울에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은 높으나, 못올라간 대신이라고 맛있게 먹으라고 통화했다.
또 월요일엔 청주의 동지들과 파면 축하파티를 청주에서 했다. 역사적인 분기점인 파면의 여운이 깊고 행복하게,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