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교류학 창달, 민족통일 유지 받들어 나가겠다”

문명교류학자이자 민족주의자 정수일 선생 49재 엄수

2025-04-14     김치관 기자
정수일 선생 49재 추모식이 13일 낮 고양시 일산자연애숲수목장 묘역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두 분 이사장님, 이사님들도 멀리서 오시고 또 연구위원들 다 참석하셨고, 다른 데서는 가족만 하는데 이렇게 오셔서 고맙고 본인도 많이 행복해 할 것 같습니다.”

위공(爲公) 정수일(鄭守一, 1932~2025) 49재 추모식이 50여명의 유족과 지인들이 모인 가운데 13일 낮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자연애숲수목장 묘역에서 열렸다.

세계적인 문명교류학자이자 민족주의자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정수일 선생은 지난 2월 24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정수일 선생의 부인 윤순희 여사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새로 발견한 북녘 부인에게 보낸 시를 낭송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부인 윤순희 여사는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오늘 떠나보내려고 하니까 마음 편하게 잘 지내시기 바란다”고 이승에서의 작별을 고하면서도 “북녘의 딸들을 못 만나고, 겨레가 하나되는 걸 못 보고 가 가지고 제일 마음이 아프다”고 아쉬움을 남겼다.

윤 여사는 “제가 선생님의 시를 하나 발견했다”며 “숫기가 좀 없어 가지고 거기 올라가신다면 말을 잘 못할 것 같다. 아내한테 쓴 것 제목은 ‘들에 핀 봄꽃’이다”고 고인이 북녘 부인에게 쓴 미공개 친필 시를 낭독했다.

“...나는 들에서 자라났고 / 들과 함께 영원히 가리라... 나는 봄에서 삶을 누리고 / 봄과 더불어 영원히 살리라... 나는 꽃들에서 사랑 찾고 / 꽃으로 그대를 그리리라... 들과 봄, 꽃 / 이것이 당신 / 그리고 나의 / 숙명이 아니던가...”

당대의 석학이자 시대의 소명을 따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고인의 개인적 감성이 담긴 드문 글의 대목들이다. 이 외에도 또 다른 한 편의 시도 인근 식당 뒷풀이 장소에서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과 김정남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초대이사장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장석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49재 추모식에는 한국문명교류연구소 김정남 초대이사장과 장석 이사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정진한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연구위원 등 후학들,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과 통일뉴스 이계환 대표, 고인의 실크로드 답사길에 동행하고 했던 홍영표 전 의원 등이 참석했고, 고인의 동생 정승현 씨와 조카 등도 함께 했다.

장석 이사장은 “문명교류학의 창달, 민족의 통일과 평화라는 선생님 유지를 우리가 받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는 고인의 유작이 된 『문명교류학 개론』을 올해 하반기에 출간하는 등 고인의 유지를 펴기 위한 활동을 계획 중이다.

정수일 선생의 결혼사진과 고인이 감옥에서 사용한 영한사전과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민족론과 통일담론』(통일뉴스, 2020)이 놓여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때 우박과 돌풍이 거세게 몰아치기도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박과 돌풍이 몰아치는 변덕스런 날씨에도 이날 추모식에는 평소 고인이 즐기던 음식과 결혼사진 등이 올려졌고, 특히 고인이 감옥에서 사용한 영한사전과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민족론과 통일담론』(통일뉴스, 2020)이 놓여졌다.

추모객들은 고인의 애창곡 <홀로 아리랑>을 정마리 가수의 선창으로 합창하고 차례로 참배한 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추모를 이어갔다.

인근 식당에서 뒤풀이가 이어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수일 선생의 새로 발견된 다른 글도 공개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1934년 중국 연변에서 조선족으로 태어난 정수일 선생은 베이징대학 동방학부를 졸업한 뒤 중국 외교부 소속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1963년 4월 북한으로 환국했고, 1984년 남한으로 들어와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됐지만 1996년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을 복역하고 특별사면돼 실크로드학과 문명교류학을 개척,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민족론과 통일담론 창출에 매진하다 지난 2월 24일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순희 여사와 북녘의 세 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