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월하정인] 1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26)
“이 그림 속의 남녀는 만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별하는 장면인가? 이게 가장 궁금하네.”
“그림에는 이런 화제가 쓰여 있네.”
달빛 침침한 삼경인데 (月下沈 夜三更)
두 사람의 마음이야 그들만이 알겠지. (兩人心事 兩人知)
“첫 문장에서 시간을 말하는 삼경은 밤 11시에서 1시까지 일세. 그냥 깊은 밤을 뜻하는 표현인지, 실제 시간인지는 알지 못하지.
둘째 문장은 선조 임금 때 좌의정을 지낸 김명원의 시에서 따온 구절일세.
이 시는 당대 최고의 유행가였고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우고 다녔다고 하네. 100년 이상 인기를 얻은 시로 상황에 따라 핵심 구절을 넣어 응용, 변주하는 일이 빈번했네.
당시 이 문장을 본 사람들은 김명원의 시에서 따와 변주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네.
김명원 시의 전문(全文)일세.”
깊은 밤중 창밖에서 이슬비가 내릴 때 (窓外三更細雨時)
두 사람의 마음은 둘만이 안다 (兩人心事兩人知)
깊은 정 아직 모자란데 하늘이 밝아오려 하매 (歡情未洽天將曉)
다시 적삼을 부여잡고 훗날의 기약을 묻노라 (更把羅衫問後期)
“이 시는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했네. 새벽까지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려니 아쉬워 서로 끌어안고 다음을 약속하는 애절함이 담겨있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별인가? 만남인가?”
“여러 징표가 이별을 가리키는군.”
“여러 전문가는 남녀가 이별하는 장면이라고 주장하고 별 의심을 하지 않는다네.
그림 속의 글이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고, 엎어져 기운 달은 누가 보아도 새벽이라는 느낌을 주지.
왼쪽에 생뚱맞게 생긴 집은 이들이 밤새 사랑을 나누던 곳이라고 추정하더군.”
“조선시대에는 야간통금이 있었다고 알고 있네. 통금이 시작되는 저녁 8시 전에 만나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다가 통금이 풀리는 새벽 4시 30분 이후에 헤어지는 연인을 그렸다는 말이군. 남자가 초롱불로 길을 밝히고 있는데, 연인은 헤어지기 아쉬운 절절한 마음을 담은 그림일까?”
“그림 속의 달과 시간에 대한 이태형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의 분석과 견해가 있네.
외국에서도 고흐 그림에 표현된 별을 천문학적으로 분석하여 제작 시기를 알아낸 사례가 있지.
달이 위쪽으로 볼록한 모습은 월식일 때 보인다는군.
달의 위치로 봤을 때 계절은 여름이고, 개기월식이 아닌 부분월식이었고, 신윤복이 활동하던 시기의 부분월식은 1784년 8월 30일과 1793년 8월 21일 두 번 있었다고 하지.
그런데 1784년 개기월식은 비가 와서 관측하지 못했으니, 1793년 8월 21일의 개기월식이라고 추측한다네.
결국 1793년 8월 21일 자정(삼경) 경의 남녀를 그렸다는 말일세.” [참고 기사 보기]
“달의 모양을 가지고 월식과 승정원일기에 나온 기록을 바탕으로 정확한 날짜를 추론하다니... 대단하군.
하지만 그림은 허상의 세계가 아닌가? 굳이 천문과학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는가?”
“동감하네. 하지만 우리 그림에 깊은 관심으로 가진 것은 참 좋은 일일세. 이런 분석이 없었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지.
이런 천문 과학적 분석은 번외일세. 그림으로 이끄는 역할로 충분하네.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종이나 물감의 재질을 분석하여 창작연대나 위작 여부를 맞출 수는 있지만 작품의 내용과 감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과 같지.”
“모든 그림을 천문과학으로 분석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유독 이 그림만 분석한 이유는 뭔가?”
“정말 정곡을 찌르는 과학적인 질문일세.
이 작품은 두 개의 장면을 하나로 합친 것이네.
왼쪽 집과 달, 글이 있는 장면과 오른쪽 남녀의 모습은 각각 독립된 그림일세.
왼쪽 그림을 먼저 그렸고, 오른쪽 그림은 화제를 설명하기 위해 추가로 그려 연결했을 것으로 추정하네.”
“뭐라고? 이게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굳이 두 개의 작품을 하나로 연결한 이유가 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