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헤어지지 않고 마침내 만날 결심해야"

전국 지방정부가 함께 만든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 1, 2』(수정)

2025-04-07     이승현 기자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가 기획하고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이 집필한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1, 2』가 나왔다.

'북한의 어느 지역과 교류할 것인지, 상대를 정하고 어떤 내용으로 교류할 지, 남북의 겨레가 서로 만나기 위한 준비의 첫 걸음'이라는 발간사가 눈길을 끈다.

1년 전 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를 '교전 상태의 두 국가관계'라고 발표한 북의 입장에 변화가 없고,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외치던 대통령 윤석열이 급기야 자멸적인 내란을 획책하다 파면에 이른 상황에서 '남북 교류'라니?

국제분쟁과 남북사이 대화단절을 비롯해 우리를 가로막는 문제가 많지만 '남북이 서로 만나는 역사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출간 취지가 얼떨떨할 지경이다.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 기획,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김기헌·남우희·박소연·선우정·유경호·정숙경·황주은) 지음,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 1, 2』, 각 382쪽, 내숲]

먼저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평안북도 신의주시 △자강도 중강군 △양강도 삼지연시 △함경북도 청진시 △함경북도 김책시 △함경남도 신포시 △함경남도 함흥시(이상 1권)

△황해남도 해주시 △황해남도 옹진군 △황해남도 과일군 △평안남도 순천시 △황해북도 사리원시 △강원도 원산시 △강원도 세포군 △강원도 고성군(이상 2권)

1, 2권 각 382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치와 지형 △기후△행정구역과 인구 △교통 △역사와 문화 △여행 △산업 △교육△인물 △교류협력 등 항목으로 세분화하여 지도와 사진, 도표 등을 풍부하게 실었다.

총 58쪽을 할애한 신의주시의 경우, 한반도내 위치, 시 경계내 행정구역, 중심지역 2곳의 세부지도 등 4장의 지도와 국제 철도·도로망을 포함한 총 6장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22장의 사진과 6장의 도표로 기후와 인구, 주요시설에 관한 정보를 담고, 12개의 각주에는 낯선 용어나 정확한 이해를 위한 추가 설명을 달았다.

예를들어 "초물(草物)은 짚이나 부들, 칡넝쿨 등을 재로로 해서 생산하는 물건을 말한다. 바구니, 광주리, 방석, 자리 등 다양하다. 우리의 짚풀 공예품이나 같다."거나 "사범대학 이름에 헌정된 '차광수'는 항일혁명투사로 이 이름에 한정된 기관이 이 대학 말고도 더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차광수 기림비가 있는데, 1905년생으로  1927년부터 혁명에 참가하였으며 1932년에 전사하였다고 적혀 있다."는 식이다.

지도 제작을 위해서는 한국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작한 5만분의 1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북에서 출간한 『조선지리전서』, 『조선향토대백과』 등 지리서와 위성사진 등을 참고했으며,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 등 고지도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남북 공동의 역사와 지리가 보존되어 있는 사전류와 지리서를 주된 자료로 검토하고, 현재 해당 지역의 모습은 북 신문과 잡지 등의 보도를 참고했으며, 그래도 부족한 생동함은  분단 전 북방에서 출생하고 활동한 문인들의 시와 소설, 산문에서 찾았다.

북한 국보 제58호인 백마산성의 설명에 추가한 '백마산성과 압록강에 얽힌 전설'은 [신동아] 1936년 2월호에 실린 이일(李一)의 「백마산성의 용마」에서 가져왔고, 신의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독문학자 전혜린이 쓴 「홀로 걸어온 길」에서 1930~40년대 신의주의 특징을 길어올렸다.

신의주 편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백석 시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읽다보면, 1940년대 눈내리는 저녁 무렵 남신의주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혼자 외로운 상념에 빠져든 한 사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교류협력' 항목에서 목포~신의주간 1,068km 길이의 국도 1호선을 연계한 스포츠교류가 제안된 바 있다는 설명이 반갑다.

신의주시 민포동에서 태어나 압록강변을 달리던 소년 손기정과 전라남도 순천 출생의 남승룡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한 사람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 또 한 사람은 동메달을 따면서 한평생 우정을 나누었듯이 두 도시가 달리기 행사를 공동개최하자는 제안이었다고 한다.

집필에 참여한 북한지리지 편찬실의 김기헌·남우희·박소연·선우정·유경호·정숙경·황주은은 '북한 지역의 발견이 우리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라는 제목의 편찬사에서 "이 책은 시군 단위 지역을 다루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라며, "이러한 차별화된 장점이 북한을 풍부한 맥락안에서 보게 해주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측과 북측의 도시들이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를 하노라면 서로 배우는 것도 많고 세계가 확장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도 표시했다.

그런 점에선 일정한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부분적으로나 종합적으로 서술하는 지리지(地理誌)가 제격일 듯 싶다.

자연 지리 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사회, 경제, 정치, 행정, 군사 등 인문지리적 내용을 포함해 그 지역의 전반적인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북한지리지를 기획한 지방정부협의회는 지난 2021년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남북 도시 간 평화 교류의 주역이 되기 위해 전국 31개 시,군,구의 단체장들이 창립한 행정협의회.

협의회 출범 전인 2020년 12월 지방자치단체를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주체로 명시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고, 2021년 9월에는 통일부 고시가 바뀌어 전국 243개 지자체(광역 17개, 기초 226개)가 대북지원사업자로 일괄 지정되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과 계속된 남북관계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중앙정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 특성에 맞는 남북 도시간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지켜오고 있다.

발간사를 쓴 김병내 협의회 상임공동대표(광주시 남구청장)과 박승원 사무총장(경기도 광명시장)은 "국도 1호선,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달리는 버스를 타고 파주를 지나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신의주로 갈 수 있다. 압록강을 건너 유라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자유롭게 여행하는 날이 꿈이 아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키웠다.

북한 지리지 역시 이번엔 지난 2년의 연구와 조사 성과를 모아 1, 2권에 15개 지역을 수록했지만, 앞으로 평양을 비롯한 202곳의 시,군,지구를 정리해 나갈 예정이다.

그런데 정말 남북 교류협력은 기대해도 괜찮을까?

이들은 지난 넉달 동안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남북 분단에 기대어, 군사적 긴장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들에 의해 시민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음을 목격했다"며 "남북 만남이 이어져야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이 가능하다는 것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서로 만나는 역사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교전상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논하지 않겠다'는 북의 대남문제 방향전환에는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북의 체제를 붕괴시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흡수하려는 기조에서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는 깊은 불신이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

또 경제발전은 시급한데, 군사적 위기는 전쟁을 실체적 문제로 인식할 수 밖에 없을 만큼 고조되고, 서로 합의한 대화와 협력 대신 대결과 적대가 두드러지는 이중적 태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결정도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을까?

격변하는 신냉전 세계 질서의 변화속에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면 적대적 진영의 한편에서 원치 않는 전쟁에 휩쓸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니 말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신뢰가 무너지고, 그렇게 폐허는 커지고 깊어진다.

분단은 아무리 길어도 일시적인 것이고 언젠가 다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은 남과 북, 민족의 숙명이자 염원이다. 또 전쟁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건 주권국가의 엄중한 현실적 과제이다.

설사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더라도, 앞으로도 쉽지 않은 과제라고 하더라도 남북이 만나 교류하고 협력하는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변화와 발전이 가능할까?

묻건대, 북이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은 과연 옳은가? 

'화해·협력'의 정신으로 실천 가능한 방안을 찾아 꾸준히 실천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