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학자요, 사상가 하나를 잃었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 고 정수일 선생 추도식 개최
“우리가 정수일 선생을 잃은 것은 문명교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 위대한 개척자요, 세계적인 학자요, 세계적인 사상가 하나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픔이 상당히 큽니다.”
세계적인 문명교류학자이자 민족주의자 정수일 선생의 추도식에서 김정남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초대 이사장은 “정수일 선생의 그 엄청난 학구열”에 놀랐다며 이같이 추도했다.
고인이 생애 마지막까지 소장으로 재직했던 (사)한국문명교류연구소는 26일 오후 4시 가톨릭대학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도식을 갖고 고인의 뜻을 기렸다. 계획에 없던, 제대로 공지되지 않은 추도식이었지만 50여 명의 가까운 지인들이 자리한 것.
1934년 중국 연변에서 조선족으로 태어난 정수일 선생은 베이징대학 동방학부를 졸업한 뒤 중국 외교부 소속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1963년 4월 북한으로 환국했고, 1984년 남한으로 들어와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됐지만 1996년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을 복역하고 특별사면돼 실크로드학과 문명교류학을 개척했고, 민족론과 통일담론 창출에 매진하다 지난 24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거시기 산악회’ 같은 회원으로 고인을 위해 한국문명교류연구소라는 둥지를 마련해 준 김정남 초대 이사장은 “이제까지 실크로드를 지리학적 개념으로만 설정했지만 그걸 ‘문명교류의 통로’라고 새롭게 설정하고 새롭게 설명하기 시작한 게 정수일 선생”이라면서, 기존 일각의 ‘문명 충돌론’과 달리 “정수일 선생이 ‘문명교류를 통해서 인류는 발전하고 평화를 찾아간다’ 이게 훨씬 더 학문적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이고 진짜 인류가 지향해야 될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남 초대 이사장의 바톤을 이어받은 장석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은 “유일한 책무인 선생님을 힘껏 잘 모시는 그 일을 소홀히 하여 선생님과 헤어지는 지금 이 자리가 있다”며 “헤어지는 그 시간을 늦추지 못했다는 회한과 자책이 가득한 채 여러분 앞에 서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장석 이사장은 고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제 우리 연구소의 연구소장직을 내려놔야 되겠다”면서 “여러 제자들과 후학들이 있으니 이 연구소를 앞으로 오래오래 잘 지속되도록 노력해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제 유언이 돼버렸다고 전하고 “사람이 떠나더라도 잊히지 않는 것이 생을 누리는 일이다”는 경구로 위로를 삼았다.
고인으로부터 문명교류학을 배워 온 엄광용 소설가는 『실크로드학 사전』(2013) 집필 당시를 회고하며 “엄청나게 선생님께서 기억력도 좋으시고 정신력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 실크로드 답사 현장에서 부지런히 사진찍고 기록하던 것들이 여행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회고했다.
엄광용 작가는 지난해 겨울 초입에 연구소 계단을 힘겹게 오르시던 고인의 ‘열정’을 회고하며 “선생님으로서 아버님처럼 대해 주셨다”고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4월에 유작으로 『문명교류학 개론』이 나오는데 그것이 아마 저희 연구원한테는 마지막 선물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며 “앞으로 저희가 문명교류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의 대를 잇는 후학들에게도 그걸 전달해서 정말 아름다운 꽃을 대한민국에서 피웠으면 한다”고 다짐했다.
‘21세기 민족주의포럼’ 활동 등으로 고인과 함께 20년을 ‘민족통일’ 화두를 가다듬어온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는 고인이 미수(88세)에 내놓은 회고록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를 인용, “한반도 분단지역에 태어난 시대적 소명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두 가지이지 않나, 하나는 문명이고 하나는 민족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 “문명이 서로 교류 소통하는 것은 민족주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계환 대표는 고인의 민족론과 통일담론 중 △민족의 징표 중 ‘경제의 공통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민족 발생론에서 ‘연속론’ 제기 △민족주의 속성에 ‘민족의 발전 지향성’ 추가 △통일담론에서 ‘진화 통일론’ 주창을 중요하게 꼽고 “선생님의 뜻을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고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진한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연구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에서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과 유정아 전 KBS 아나운서, 양재혁 전 성균관대 교수 등이 추도사를 했고, 고인의 연변 거주 동생 정승현 씨가 가족을 대표해 인사했다.
정승현 씨는 “오늘 형님이 마지막에 가시는 데까지 여러분들께서 동참해 주셔서 정말 동생으로서는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형님의 그 험악한 세월 속에서 동고동락을 같이 해 주시고 형님의 등대가 되어 주신 우리 형수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고 각별히 사의를 표했다.
추도식에는 고인의 배우자 윤순희씨도 참석했으며, 북녘의 딸 세 자매는 자리하지 못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2호실에 마련됐고, 27일 발인한다. 조화와 조의금은 받지 않는다.
• 중국 옌볜 출생(1932)
• 예볜고급중학교 졸업(1952)
• 베이징대학 동방학부 졸업(1955)
• 카이로대학 인문학부 중국 국비유학생 제1호 선발, 3년간 유학(1956~1958)
• 중국 외교부 및 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 근무(1959~1963)
• 평양국제관계대학 및 평양외국어대학 동방학부 교수(1963~1974)
• 튀니지대학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1980~1981)
• 말레이대학 이슬람아카데미 교수(1982~1983)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1984~1989)
•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1988~1996)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간 복역(1996~2000)
• 사단법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 결성(2008)
• 21세기민족주의포럼 결성(2008)
• 종횡 세계 일주 수행
제1기(1955~1958), 제2기(1959~1963)
제3기(1974~1983), 제4기(2006~2018)
• 제3대 세계실크로드학회 회장 역임(2017~2018)
• 전공: 문명교류사
• 현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수상
• 제42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출판상
『이븐 바투타 여행기(전 2권)』, 번역 부문(2002)
•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
『실크로드 사전』, 저술 부문(2013)
• 제1회 문무대왕 해양대상 해양문화 부문 대상(2019)
• 제5회 국제실크로드 학술대회 최우수논문상
「실크로드와 경주」(2019)
(출처 -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