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문명교류학자이자 민족주의자 정수일 선생 소천
세계적인 문명교류학자이자 민족주의자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정수일 선생이 24일 소천했다. 향년 91세.
(사)한국문명교류연구소는 부고를 통해 “故 정수일 (사)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님께서 2025년 02월 24일 소천하셨음을 삼가 알려 드립니다“고 25일 알렸다.
연구소 측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심장이 뛰고 폐에 물이 차고 무릎뼈도 상해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1934년 중국 옌볜 출생으로 베이징대학 동방학부를 졸업(1955)한 뒤 중국 외교부 소속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1963년 4월 환국하여 평양국제관계대학 및 평양외국어대학 동방학부 교수(~1974)를 지냈고, 1980년대 들어 튀니지대학, 말레이대학을 거쳐 1984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1988~1996)로 자리를 잡았으나 1996년 레바논계 필리핀인 ‘무하마드 깐수’로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2년을 선고받고 특별사면으로 나온 2000년까지 5년을 복역했다.
이후 2008년 사단법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와 21세기민족주의포럼을 결성한 이후 종횡 세계일주를 수행하며 제3대 세계실크로드학회 회장(2017~2018)을 역임하기도 했다.
고인은 실크로드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문명교류학을 입론했으며, 아울러 민족통일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민족론과 통일담론 창출에도 매진해 왔다.
고인은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문명교류학) 연구를 하는 동력이라면 겨레에 대한 관심 같은 민족주의라고 자부한다”, “일생을 통틀어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문명교류학과 민족주의”라고 밝혀왔다.
특히, 고인은 필생의 업인 문명교류학과 민족주의와의 상호관계에 대해 “원래 문명교류란 것은 본질적으로 이질문명 간의 주고받음인데, 그 이질문명은 최대 인간집단인 각이한 민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갈라진다”면서 “민족이 없었던들 문명다운 문명은 애당초 창조 불가능했을 것이며, 민족주의가 없었던들 문명의 성장이나 전파, 교류는 역사가 기록한 그러한 양상으로 전개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명쾌히 밝힌 바 있다.
김정남 전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은 고인의 격정적 삶과 학문적 업적을 기리면서 “대한민국은 정수일 보유국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신라·서역교류사>, <기초 아랍어>, <실크로드학>, <고대문명교류사>,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 <문명교류사 연구>, <이슬람문명>,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실크로드 문명기행: 오아시스로 편>, <문명담론과 문명교류>, <실크로드 사전>, <민족론과 통일담론>, <우리 안의 실크로드> 등이 있다.
역주서로는 <이븐 바투타 여행기>, <중국으로 가는 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 등이 있다.
특히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정리한 회고록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를 2022년에 출간했다.
유족으로는 남측에 배우자 윤순희씨와 동생 정승현씨, 그리고 북측에 딸 세 자매가 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장례식장 22호실이며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으로 치른다. 발인은 27일이다. 조문은 26일 오전 9시부터 발인인 27일 아침까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