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의 [야묘도추 野猫盜雛]-2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16)
풍속화가 아니라 정치화이다
그림 속에 화제가 없으니 제목은 후대에 지은 것이다.
김득신의 그림을 모아놓은 『긍재풍속도첩』(兢齋風俗圖帖/보물 제1987호)은 오세창이 발문을 썼다.
알다시피, 오세창은 종일 매국노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작품의 제목도 그가 지었을 것이다.
“처음 지은 제목은 야묘도추였을 것이네.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고 이를 남자가 쫓는 모습은 있을 수 있는 일이네.
그런데 김득신이 굳이 이런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이유를 몰랐네. 명색이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화원일세. 정조 임금은 김득신의 작품에 대해 ‘속된 화가가 아니다.’라고 평가했네. 대중의 욕망에 야합하여 그림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는 의미일세.”
“속된 그림의 반대는 문인화가 아닌가? 그렇다고 이 작품을 문인화로 분류할 수는 없지.”
“철학적 내용을 제대로 담아낸다는 뜻일세.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와 이를 쫓는 암탉과 사내의 모습에서 철학적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도무지, 알 수 없고 모르겠네.”
“당시 김득신의 그림을 본 오세창은 알았을 것이네. 종일 매국노라고 하더라도 조선의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입을 다물었네. 그 내용이 조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지.
[파적도 破寂圖]는 적막한 시공간을 깬다는 의미일세. 모호한 제목인데, 적막한 시공간은 범위가 넓어 해석의 여지가 있네. 누군가 문제 삼으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
“오세창이 쓴 발문일세.”
‘긍재(김득신)가 그린 풍속도는 세상에 많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단원 풍속도를 첫손가락으로 꼽지만, 복헌 선생(김응환) 연원으로부터 같이 나왔으니 함께 마땅히 보배로 삼아야 할 것일 뿐이다. 위창 노부가 쓴다.’
“이 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단어는 바로 풍속도(풍속화)일세.
오세창이 김득신의 작품을 풍속화로 규정하면서 지금까지 굳어져 버렸고, 여기서 한 발 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네.”
“풍속화를 풍속화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네. 흠흠”
“??? 풍속화가 아닌 그림을 풍속화라고 하는 것 문제란 말일세.”
“백성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냥 그림일세. 기존의 문인화, 산수화, 영모화, 초상화. 고사인물도 따위의 범위로 규정하지 못하는, 그냥 제목이 그 자체인 그림일세.”
“아휴, 머리 아파. 그런 그림이 어디 있는가?”
“마르크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지. 이 그림은 풍속화인가, 상상화인가, 인물화인가? 그냥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그림일 뿐일세.”
“그렇다면 김득신의 그림을 김홍도의 풍속화와 비교하는 이유는 뭔가?”
“지루하니 간략하게 설명하겠네.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 그림을 보는 관점의 폭이 달라질 것이네.
무엇보다 김득신의 ‘[파적도/야묘도추]’를 새롭게 해석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네.
이 그림을 풍속화로 규정하면서 감상의 폭은 극단적으로 좁아져 버렸지. 제법 공력이 있는 미술평론가조차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모른다네.”
“뜸 들이지 말고 시원하게 말해보게.”
“풍속화는 조선시대 통치철학과 관련이 있네. 조선은 민본정치를 추구했는데 왕과 관료, 선비들은 백성, 민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네. 모든 정치의 중심에 백성이 있었지. 심지어는 반역, 역모, 매국에도 백성을 빌미로 삼았을 정도였지.
조선 정부에서는 예조 산하 국가미술기관인 도화서에 백성의 진솔한 삶을 그리라는 명령을 자주 내렸다네.
왕이나 관료들이 백성의 삶을 훔쳐보거나 실상을 알기 위해 그림을 그리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결단코 아닐세.
백성의 실상은 각 지방에 파견된 관리나 선비에 의해 수시로 보고되었네. 심지어는 왕이 직접 백성의 삶을 살피기 위해 궁궐 밖을 나다녔지. 민원의 나라답게 백성들도 현실이나 어려움을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정부에 알리고 있었다네.
그런데도 엄청난 예산을 들여 풍속화를 제작한 것은, 왕과 정부가 백성의 삶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정치적 표상이 필요했기 때문일세.
애초 풍속화는 선비들에 의해서 그려지다가 점차 국가 공식 그림으로 발전했네.
풍속화를 좋은 비단에 그리고 고급 병풍으로 만들어 궁궐이나 관청에 두었네.
항시 민본정치를 잊지 말라는 뜻이지.
김홍도가 그린 작은 풍속화는 초본이거나 간략본, 혹은 휴대용 화첩 형태로 만든 것일세. 초본그림을 바탕으로 비단에 채색, 병풍으로 만든 ‘행려풍속도’가 진짜이네. 안타깝게 이 작품의 원본은 프랑스에 있네. 강탈당한 거지.”
“김홍도가 정부의 정치적 행위로써 백성을 등장시킨 풍속화와 김득신이 소재로 삼아 그린 백성은 전혀 다른 성격이란 말인가?”
“하늘과 땅 차이일세.
목적이 다르니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국가가 백성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길이 있네. 그래서 비판, 풍자 같은 부정적 요소는 없지. 대신 해학이 있을 뿐이네.
김득신의 [야묘도추]는 정치와 시대 정신 따위가 담긴 정치화일세. 정치를 그림 속에 녹여낸 것이지. 따라서 비판과 풍자, 교훈 따위의 내용이 들어있지.
김득신은 당대 풍속화의 형식을 바탕으로 정치화의 영역까지 확장한 탁월한 화가였네.”
“이 그림에 정치비판, 풍자, 교훈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나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
“이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고양이 그림에 대한 역사를 알아야 하네.
한 번 들어볼 텐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