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 작 「추림촌거도」와 「강향장색」
[연재] 애서운동가 백민의 ‘신 잡동산이’(95)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994년 4월호 월간 『미술세계』 기고로부터 시작한 ‘안견 논쟁’은 당시 우리나라 회화사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당시 논쟁의 한 축이었던 안 모 교수는 “내가 무엇이 틀렸는가?”하고 천명한다.
2023년 12월 듣보잡이 야기한 「몽유도원도」 소동은 필자의 안견론을 재확인하도록 추동하였고,[주1] 금년 한 해에 필자가 발표한 려말선초와 연견시대의 회화사론은 이번 연재를 포함하여 모두 18편으로 이를 정리하면 주[주2]와 같다. 이번에는 안견의 「추림촌거도(秋林村居圖)」와 「강향장색(江鄕㢓色)」를 소개하고자 한다.
1. 간송미술관 소장의 안견 작 「추림촌거도」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박물관 간송미술관에는 안견의 그림 「추림촌거도(秋林村居圖)」가 소장되어 있다. 견본담채의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22.0cm에 세로 31.5cm이다.
이 「추림촌거도」는 낙관이 없지만,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화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화평과 수집가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 1727~1797)의 화제가 붙어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공재 윤두서와 석농 김광국의 구장품(舊藏品)으로, 김광국이 제첩한 명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실려 있었던 작품이다. 그러던 작품이 간송 전형필에게 들어간 것이다.
공재와 석농은 각기 당대 최고의 고서화 감식안(鑑識眼)이었다. 작품에 낙관이 없지만 안견의 작품으로 단정해서 화평과 화제를 썼다면, 이 작품은 필히 안견의 작품이 여러 점 들어있던 화첩에서 떼어내 『석농화원』에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공재 윤수서의 화평(畵評)에 “安堅博而不廣 剛而不健 山無起伏 樹少面背, 然其高古處 如寒墟小市 古屋危橋 樹枝攢鍼 石皺雲蒸 森然黯然 自不可及. 殆東方之巨擘 醉眠之亞匹.” 즉 “안견은 많이 알지만 넓지 않고 굳세지만 강건하지 못하여 산에 기복이 없고 나무에 앞과 뒤가 적다. 그러나 그의 고상하고 예스러운 곳과 추은듯한 언덕과 작은 저자, 오래된 집과 위태로운 다리, 나뭇가지가 바늘이 모인 듯하고 바위가 주름지고 구름이 피어나면서 뻑뻑하면서도 어두운 것은 진실로 따라갈 수 없다. 마땅히 동방의 거장으로 취면(醉眠, 金禔의 호)에 버금가는 짝이다.”라고 하였다. (유홍준 교수의 『김광국의 석농화원』 인용)
또한 석농 김광국의 화제(畫題)에는 “安堅字可度 莊憲大王命寫 康獻大王御乘八駿馬 仍命集賢殿學士成三問等製贊 其畵之擅名當世可知也. 今見此幅 筆法精工排鋪潚濾 無愧乎爲我東北宗之祖也. 食祿之護軍. 金光國.”이라 하였다. 즉 “안견은 자가 가도인데, 장헌대왕(세종)이 강헌대왕(태조)의 팔준마를 그리라고 명하였고 집현전학사 성삼문에게 찬시를 지으라고 명하였으니 그의 그림은 그 시대에 이름을 드날렸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그림을 보니 필법이 정교하고 마음에 품은 생각이 맑고 깨끗하여 우리 동북종(조선화)의 조라 불러도 부끄럽지 않다. 식록은 호군이다. 김광국,”이라 한 것이다. (유홍준 교수의 『김광국의 석농화원』을 수정하여 인용)
또한 그림 오른쪽에 있는 배관(拜觀)에는 “安堅可度秋林村居圖 恭齋評 金光國題背書”라고 썼다.
이렇게 당대의 공재 윤두서와 당대의 석농 김광국이 높이 평가한 안견의 작품을, 안 모 교수는 낙관이 없으므로 안견의 전칭(傳稱) 작품으로 단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단정은 있을 수 없는 문화맹(文化盲)이다. 윤두서와 김광국의 구장품으로 그들의 화평과 화제가 들어가 있다면 당연히 그들의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윤두서나 김광국이 자신의 구안(具眼)을 현대의 회화사학자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판단한 것을 보았다면 더럽게 기분이 나빴을 수 있을 것이다. 안 모 교수는 오직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 만이 안견의 진품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다른 모든 안견의 그림을 부정하는데, 그는 이 그림도 100년 뒤의 그려진 작가 미상의 그림으로 평가한다.
2.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강향장색」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에는 『근역서화징』의 편저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수집하였던 『근역화휘(槿域畵彙)』가 소장되어 있다.
『근역화휘』는 같은 이름의 두 화책이 현전한다. 하나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이다. 두 화책 모두 위창 오세창이 편집한 화첩으로 보이는데 서울대 소장본은 천(天)·지(地)·인(人) 3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첩은 세로 43.5㎝, 가로 32.5㎝로 천첩에 25점, 지첩과 인첩에 각 21점씩, 조선시대 대표 작가들의 그림이 모두 67점 실려 있다.
즉, 이 화책은 박영철(朴榮喆, 1879~1939)의 유족이 1940년 10월에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한 것이다. 박영철은 친일파이기는 하지만 오세창과 교유가 있어 위창으로부터 이 화책을 인수하였다. 그는 전주(全州) 사람으로 고종(高宗)의 근위장교, 상업은행장 등을 역임한 수장가였는데, 그의 기증품은 경성제국대학 박물관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이 말은 이 「근역화휘」가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제1호라는 말이다.
이 화첩에는 안견의 낙관이 되어 있는 「강향장색(江鄕㢓色)」을 비롯하여 신사임당(申師任堂) 이요(李㴭), 이우(李瑀), 진재해(秦再奚), 김덕성(金德成), 마군후(馬君厚), 우상하(禹相夏) 등 현전 작품이 드문 작가들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이 화첩 첫 장에는 안견의 「강향장색(江鄕㢓色)」이 채집되어 있다. 「강향장색」의 크기는 세로 37.9cm, 가로 28.5cm이고, 오른쪽 상단에 ‘강향장색(江鄕㢓色)’의 화제가 쓰여져 있으며, ‘지곡안씨(池谷安氏)’라는 주문방인(朱文方印)이 찍혀있다.
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산의 표현에는 주로 원경에 쓰이는 바늘 모양의 필선(이른바 침형세수 針形細樹)이 있다. 그리고 현전하는 그림에는 강 풍경은 없는데, 강 풍경은 아래쪽 화면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원래는 좀 더 큰 그림이었을 것이다.
안 모 교수는 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이른바 침형세수는 안견 이후의 화가들이 사용하였다고 단정하여 이 작품 역시 안견의 낙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교(自校)의 박물관장을 하면서도 안견의 작품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으로서는 아주 참담한 노릇일 것이다.
3. 맺음말
결론적으로 볼 때 문제는, 이른바 침형세수가 보인다고 안견의 작품이 아니라는 안 모 교수의 주장은 「몽유도원도」만이 안견의 진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그가 만든 허구적 가설일 뿐인데, 한국의 회화사학계에서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안 모 교수는 1970년대 중반에 안견의 유일한 진적은 「몽유도원도」라는 가설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으로 인하여 한국의 조선전기회화사를 왜곡하였다. 그것은 당시 30대 중반의 해외파 연구자로 국내파 다른 미술사학자들의 관점을 일시에 타파한 것이다.
1979년에는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하여 관제(官制) 한국정신문화연구원(초대 원장 이선근, 현재의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발족하였고, 안 모 교수는 거기에서 활동하였다. 그것이 하버드 출신이라는 그의 허상에 의하여, 그리고 관제 연구원의 위세에 의하여 비판없이 수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박정희 유신시절에는 놀랍게도 정문연에 친일친미의 신 사대성이 만연하여 있었다. 이제 한중연에서는 유신시대의 학문 잔재를 걷어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회화사학계에서는 빈약한 조선초기(1392~1592) 200년간의 회화사와 회화를 거덜내는 비주체적 가설을 철저히 배격해야 할 것이다.
주(註)
[주1] ‘『몽유도원도』 언론 플레이 유감’, 통일뉴스 오피니언 기고, 2023년 12월 29일 자 기고.
‘『몽유도원도』의 숨겨진 이야기’, 통일뉴스 오피니언 기고, 2024년 02월 7일 자 기고.
[주2] 가. 고려회화연구 방법론으로서의 고려불화연구
①제59회, 고려회화의 다양성 연구의 단초(端初)를 우선 고려불화에서 찾아야 / 2024.04.15.
②제71회, 우리나라의 고려불화연구사 / 2024.07.08.
나. 고려말 조선초 회화의 이해
③제62회, 『행화구욕도』와 이인로를 통해 본 고려와 금나라의 서화 교류 / 2024..05.06.
④제65회, 고려말 화단(畫壇)에 관한 탐색(1) - 1. 익재 이제현과 이재 공민왕의 작품은 한국회화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 2024.05.27.
⑤제68회, 고려말 화단(畫壇)에 관한 탐색(2) - 2. 작가미상의 고려후기 회화 / 2024.06.17.
⑥제75회, 려말선초의 서화가 순은 신덕린과 그의 작품에 관한 고찰 / 2024.08.05.
⑦제77회, 이수문(李秀文)의 인생과 예술 / 2024.08.19.
⑧제79회. 문청(文淸)과 그의 회화를 다시 논한다. / 2024.09.02.
다. 나의 안견 신론
⑨제83회. 안견신론(安堅新論)의 핵심은 무엇인가? / 2024.09.30.
⑩제73회, 나의 안견 신론 (1) - 안견의 관향(貫鄕) ‘지곡(池谷)’ - 안견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 아니라 지금의 서울시 강남구이다. / 2024.07.22.
⑪제85회. 나의 안견 신론 (2) - 『몽유도원도』의 신해석(新解釋) / 2024.10.14.
⑫제81회. 나의 안견 신론 (3) - 어진화사(御眞畫師) 안견(安堅)과 적벽도 / 2024.09.16.
⑬제91회. 나의 안견 신론 (4) - 안견의 『설천도』와 작자미상의 『파초야우도(芭蕉夜雨圖)』를 대비한다. / 2024.11.25.
⑭제95회. 나의 안견 신론 (5) - 안견의 『소상팔경도』와 안평대군의 『소상팔경시첩』 / 2024.12.16.
⑮제97회. 나의 안견 신론 (6) - 안견 작 『추림촌거도』와 『강향장색』 / 2024.12.30. --> 이번 연재본.
라. 안견과 동시대 화가와 안견 화풍을 따른 화가들
⑯제49회. 초상화가 최경(崔涇)과 신숙주(申叔舟) 초상화 / 2024.02.05.
⑰제88회. 석경(石敬) 정론(正論) / 2024.11.04.
⑱제93회. 이상좌와 이자실 - 이상좌의 화원가계오대고정(畵員家系五代考整) / 2024.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