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침구서(針灸書)』 필사본

[연재] 애서운동가 백민의 ‘신 잡동산이’(95)

2024-12-23     이양재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나는 한글에 관한 자긍심이 있다. 나는 한글은 세계적인 최고의 문자이고, 우주 제일의 문자라 믿는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한글의 가치를 폄훼하는 허구의 가림토 문자 모방설, 그리고 헐버트가 띄어쓰기를 창안하였다는 거짓 주장을 여기 통일뉴스에서 여러 차례 비판한 바 있다. 이번에는 10여 년 전 서울의 한 경매에서 낙찰받은 조선 후기에 작성된 『한글 침구서(針灸書)』 1책을 여기에 최초로 공개하고자 한다.

1. 『한글 침구서』의 서지 사항

침술(鍼術) 의학의 원류는 고조선이다. 이에 관한 필자의 관점은 2022년 4월 19일자로 통일뉴스에 게재된 “[연재] 애서운동가 이양재의 ‘국혼의 재발견’ (11) - 국제적 베스트셀러 허준의 『동의보감』과 도가의학”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그 글을 일독하기를 바란다.

『한글 침구서』 앞-뒤 표지, 19C 초-중반, 필사본. [사진 제공 – 이양재]
『한글 침구서』 맨 앞면(오른쪽)과 맨 뒷면(왼쪽), 19C 초-중반, 필사본. [사진 제공 – 이양재]

필자가 10여 년 전에 경매에서 발견하여 매입한 필사본 『한글 침구서』는 이러한 우리 민족의 침술을 다룬 한글본 고서이다. 책의 크기는 휴대하기 좋은 수진본(袖珍本)으로서 세로 18.3cm, 가로 12cm이고, 모두 43장이다.

조선후기의 닥종이에 먹으로 필사하였으며, 12경락의 초보적인 그림이 들어 있다. 사주(四周)와 행간(行間)에 계선은 없다. 한 면에 8행 14~17자이다. 수록하고 있는 내용은 실용적으로 필요한 침구 치료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2. 『한글 침구서』의 제작 주체

한글 궁체는 흘림체와 반흘림체, 정서체 등이 있다. 흘림체는 한문의 초서에 해당하고 반흘림체는 행서에, 또박또박 쓴 정서체는 한문의 해서체에 해당한다. 이 책의 필서체(筆書体)는 한글 궁체(宮體) 가운데 반흘림체이다.

그리고 이 책은 천주교서(天主敎書) 특징인 사침(四針) 장정본(裝幀本)이다. 초기의 천주교인 가운데는 궁녀라든가 양반가 여성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초기의 천주교 한글 교리서(敎理書)를 궁서 흘림체나 반흘림체로 많은 양을 필사하여 유포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이 『한글 침구서』는 19세기 초기와 중반에 박해받아 피해 다니던 천주교인들 사이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판단된다. 휴대하기 편한 크기이고, 박해를 받아 피해 다니며 위급할 때 사용하기에는 탕약(湯藥)보다는 침구(針灸, 침과 뜸) 의학이 매우 유용했기 때문이다.

이 필사본의 침구술을 편술한 편자는 아직은 확인할 수 없다. 아마도 초기의 천주교인들 가운데 어느 실학자가 편술한 요약본으로 보인다.

3. 한글 띄어쓰기의 초보적 시도

나는 본 연재의 제22회 ‘광주이씨(廣州李氏) 가문 등의 한글 가승’에서는 1778년경에 홍국영(洪國榮, 1748~1781) 부친이자, 정조의 첫 번째 후궁으로 간택(1778년)된 원빈홍씨(元嬪洪氏, 1766~1779)의 부친 홍낙춘(洪樂春)이 만든 궁체 필사본 『풍산홍시셰계』를 소개한 바 있다.

당시 필자는 이 셰계를 2021년에 국립한글박물관으로 넘겨주었는데, 이 가승은 17세기 말 필사본 『廣광州쥬李니氏시世셰系계』 보다 진일보한 초보적 띄어쓰기를 보여주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러한 예의 초보적 한글 띄어쓰기는, 후일 조선어학회가 확정한 한글 띄어쓰기의 원류로 보아야 한다.

『한글 침구서』 본문, 19C 초-중반, 필사본. [사진 제공 – 이양재]

이번에 공개하는 19세기 중반에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한글 침구서』에도 그러한 초보적인 한글 띄어쓰기가 부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한글 침구서』나 『풍산홍시셰계』에서 보이는 초보적인 한글 띄어쓰기는 주로 명사(名詞)를 띄어 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명사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어떻든 조선후기의 초보적인 한글 띄어쓰기는 궁중(宮中)의 여인들과 일부 양반가에서 창안한 것이다.

4. 맺음말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인간 아담에게 말을 가르친 것으로 이해되는 구절이 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아담)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하였는데, 이 말은 하나님과 인간이 말로 의사소통하였음을 말한다. 성경적 의미에서 하나님이 첫 인간에게 말을 하였다는 것은 말을 가르쳤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인류 최고의 문자는 슈메르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쐐기형 설형문자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쓰는 문자가 있다면 쐐기형 설형문자나 알파벳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한글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최선(最先)의 최선(最善) 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종대왕이 만든 위대한 한글을 우리가 잘 보존하고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