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신윤복의 [소년전홍] 2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 (10)

2024-12-13     심규섭

태호석과 배롱나무(백일홍)는 비싸다.
이런 물건은 사람 눈에 잘 보이는 정원이나 앞마당에 둔다.
인적이 드문 뒤뜰에 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이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지만 아늑하고 멋진 곳을 연출한 것이다.

커다란 태호석과 배롱나무의 상징은 뭘까?
어떤 사람은 젊은 여성이 엉덩이를 뒤로 뺀 모습과 태호석과 무척 닮았다며 괴석이 여성의 상징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태호석의 뚫린 구멍이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거대한 태호석과 배롱나무꽃이 활짝 핀 공간은 특정 장소가 아니라 화가의 상상력으로 연출한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오른편 낮은 담장 위의 흙무더기의 모습과 듬성듬성 난 풀은 어린 남자의 성기와 닮았다고 보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은 거대하게 치솟은 태호석을 남성의 성기와 닮았다고 한다.
남자는 이미 흥분했는지 다리를 벌리고 있는 것과 연관시킨다.

모두 그럴싸하다.
애당초 신윤복이 그림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남녀의 사랑이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저마다의 해석은 그림을 감상하는 좋은 태도이다.

배롱나무는 젊은 여성의 상징이다.
태호석만큼이나 귀한 나무이다.
꽃이 100일 동안 피어있어서 백일홍이라고 부른다.
풀꽃인 백일홍과 구분하기 위해 목백일홍이라고 부르고, 이 말이 변해서 배롱나무가 되었다. 목백일홍은 자미화(紫薇花)라고 한다.

아무튼 그림 아래의 백일홍을 여자의 자태처럼 배배 꼬이게 그린 것도 신윤복의 해학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어색한 장면이 있다.
바로 남자가 들고 있는 곰방대이다.
보이는 대로 해석하자면, 남자는 담배 피면서 여자의 팔을 당기고 있다.
그러나 담배 피는 것과 여자의 팔을 당겨 안으려고 하는 행위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곰방대를 잡은 오른손을 못 쓰게 되어 어색한 자세가 만들어졌다.
미술 조형법으로는 군더더기이다.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윤복은 치밀한 화원이었다.
그림을 망칠 수 있는 요소를 넣을 까닭이 없다.
어색한 자세와 조형적 불안함에도 반드시 곰방대를 넣어야 했다.
그렇다면 남녀 사이에 곰방대는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정조 임금은 골초였다고 한다.
담배 소비량이 늘면서 밭을 갈아엎고 담배 농사를 짓는 농민이 늘었다. 이 때문에 감자나 고구마와 같은 식량 생산이 줄어드는 국가적 문제가 발생했다.
골초였던 정약용은 수익이 많은 담배 농사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으니 밭에는 식량을 심고 담배는 자투리땅에 심도록 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당시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유행이었다.
그렇다고 젊은 처자가 길거리에 앉아서 담배 피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이 그림이 그려진 18세기 말, 19세기 초반에는 이미 담배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시와 때를 가리고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담은 흡연 규칙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곰방대로 담배 피려면 과정이 복잡하다.
담배 주머니와 부싯돌을 항시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림에 나오는 긴 곰방대(장죽)는 누군가 불을 붙여 주어야 한다.
그런데 여자의 옷차림을 보면 긴 곰방대와 담배를 담은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곰방대는 남자의 것이다.

젊은 남자가 자신의 긴 곰방대를 보여 주며 슬쩍 떠본다.

“소청아, 우리 조용한 곳에 가서 담배나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눌까?”

“그러시지요. 저도 마침 담배가 땡겼어요.”

남자는 으슥하지만 아늑하고 멋진 장소로 여자를 이끌었다.
남자가 담배를 담배통에 꾹꾹 눌러 넣은 후 여자에게 건넨다. 그리고 부싯돌로 담뱃불을 붙여 주니, 여자는 뻐끔거리면서 장죽을 문다.

“담배 피는 모습이 보기 좋네. 나도 한 모금 주게.”

여자가 곰방대를 건네자, 깊게 빨고는 다시 여자에게 돌려준다.
곰방대를 주고받거니 하면서 감미로운 희롱이 오고 간다.

담뱃불이 꺼졌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다 피운 곰방대를 내려놓지 않고 멀뚱거린다.
남자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자, 이제 담배는 다 피웠으니 곰방대는 다시 가져가겠네.”

남자는 여성이 물고 있는 곰방대를 한 손으로 치우면서 곧바로 다른 손으로 여자의 팔목을 잡아당긴다.

신윤복이 짧은 곰방대가 아닌 긴 곰방대를 억지로 그려 넣은 것은,
당시 긴 곰방대가 남녀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탁월한 작업 도구(?)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긴 곰방대는 남녀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이다.

어쩌면, ‘우리 조용한 데 가서 담배를 같이 피울까?’라는 멘트가
‘너에게 관심이 있으니 친하게 지낼까?’라는 의미로 통용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장죽은 젊은 남자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젊은 여성의 곰방대 소지 여부는 남성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젊은 여자가 곰방대를 가지고 외출하면 남친이나 남편이 있는 것이고, 가지고 있지 않으면 홀로라는 암묵적 표식이기 때문이다.

김득신의 [노상소원도]에 나오는 젊은 여자의 가방에는 짧은 곰방대가 담겨있다. 같이 있는 남자는 아버지나 남편으로 추정한다. 외부 남자에게 관심이 없기에 곰방대를 가지고 다닌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이 그림을 본 사내들이 말한다.

“역시 여자 꼬실 때 장죽만 한 것이 없지. 아무렴, 호호홍...”

“그나저나 요즘 젊은것들은 너무 밝힌단 말이야. 벌건 대낮에 뭔 짓이람.”

“자네가 젊었을 때는 방안에서 글만 읽었나?”

“무슨 소리야. 나도 한때는 잘나갔지. 내가 장죽을 들고 종로에 나가면 여자들이 줄줄 따랐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