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3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그림 이야기(7)

2024-11-24     심규섭

고양이 그림의 상징

고양이는 약 5,000년 전 아프리카 리비아 지방의 야생고양이가 고대 이집트인에 의하여 순화, 사육되어 점차 세계 각지로 퍼졌다고 한다.

유목문화에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다. 이보다는 개를 키우고 선호한다.
고양이는 곡물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농경문화와 밀접하다.

고양이는 가축이 아니다.
사람이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도록 해치지 않고 적절한 호감을 보인 정도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목적이 명쾌하기에 잡아먹거나 다른 용도로 쓰지 않는다.
고양이도 인간 사회 안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가야 상형 토기 유물은 고양이와 관련한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지붕 위 고양이가 아래 쥐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 있다. 집은 생활공간이자 곡식을 저장하는 곳으로 쥐 떼가 들끓었다. 애초 고양이는 쥐를 잡는 역할로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전에는 살쾡이나 족제비 따위가 쥐를 잡았지만, 인간과의 교감 능력이 떨어져 밀려났다. 그렇다고 고양이가 가축이 된 것은 아니다. 여담이지만, 어떤 학자는 사람이 고양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사람을 선택하여 길들였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우리나라에는 7세기 전후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한다.
어떤 사람은 불교 경전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종이를 뜯어 먹는 쥐를 쫓기 위해 고양이를 데려왔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야 시대에 만든 상형 토기가 경북 현풍에서 발견되었는데, 지붕 위에 고양이가 아래에 있는 쥐를 노리고 있는 장면이 있다.
집은 거주의 핵심 공간이자 곡식을 보관하는 곳이다.
쌀(옥수수, 감자)과 같은 곡식은 돈과 같아서 광범위하게 유통된다. 따라서 곡식의 이동 경로를 따라 고양이도 같이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려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고양이를 나무라다(責猫)’라는 제목의 시다.
고양이의 역할이 정확히 표현되어 있다.

감추어둔 나의 고기를 훔쳐 배를 채우고
천연스레 이불 속에 들어와 잠을 자누나.
쥐들이 날뛰는 게 누구의 책임이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구 다니네.

“조선시대에도 고양이를 좋아했는가?”

“엄청나게 좋아했네. 왕족이 그림으로 그려 남길 정도였지.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사회, 정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말과 같네.”

“고양이는 정말 귀엽지. 스스로 집사라고 칭하며 기꺼이 고양이 수발을 드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네.”

“당시에 고양이를 좋아했던 것은, 생존의 문제였네.
대략적인 통계로, 사람이 먹는 곡식의 10/1을 쥐가 훔쳐 먹는다는군.
1960~70년대 우리나라에서 대대적인 쥐잡기 운동을 펼친 이유일세.
옆으로 새는 말이지만, 쥐잡기 운동에서 가장 피해를 받은 동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쥐를 잡는 고양이였지.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었기 때문이지.
이에 반해 요즘 애완문화는 먹을 것이 넘쳐서 생긴 것이네. 쥐는 세스코 같은 회사가 잡고 고양이는 사람에게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네.”

조선 중기, 이암의 고양이와 개 그림이다. 여기서 고양이와 개는 민본정치의 주역인 왕, 관료, 선비, 성리학을 의미한다. 고양이가 쥐를 잡고, 개가 도둑을 잡듯이 왕과 관료, 선비는 백성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그림이다. 참새는 내면의 즐거움이니, 왕과 선비는 민본정치를 하는 것을 통해 얻는 명예를 최고의 즐거움, 쾌락,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효종의 딸인 숙명공주나 숙종 임금의 고양이 사랑은 왕족의 사치였는가?”

“조선왕조실록에는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는 쥐가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다.’라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네. 심지어는 쥐를 잡지 않는 고양이, 짖지 못하는 개로 비유하여 정적(政敵)을 비난하기도 했네.
왕족이나 고위 관직자가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키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쥐를 잡아 백성의 곡식을 보존한다는 정치적 명분이 있었기 때문일세.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보아야 하네.”

“알겠네. 쥐를 잡는 고양이, 쥐를 잡아 곡물을 보존하여 백성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고양이의 핵심 역할이군. 그렇다면, 조선에서 그린 고양이는 쥐를 잡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겠군.”

“그런 내용의 그림이 그려졌을 개연성은 충분하네. 하지만 남아있는 그림은 없네. 남아있는 고양이 그림은 쥐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경우가 더 많네.
생활을 넘어 철학적 상징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지.”

“이암(1507~1566)은 세종의 넷째 아들 이구의 증손자이니 왕족일세.
이암은 고양이, 개, 새와 같은 영모화를 많이 남겼지. 이암이 그린 고양이 그림도 여럿 남아있네. 이암은 그냥 귀여운 고양이를 그린 것은 아니네. 민본정치라고 하는 조선 정치철학을 정확히 담고 있지. 그야말로 정치적 고양이일세.
정치적 고양이는 왕과 관료, 선비, 성리학을 의미하네.
고양이가 쥐를 잡아 백성의 삶을 풍요하게 하듯이 왕과 관료, 선비는 쥐 같은 탐관오리나 부정부패를 잡고 민본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뜻일세.”

숙종 임금 때 화원이었던 변상벽의 묘작도(猫雀圖)이다. 고양이 묘와 장수를 뜻하는 중국어 모가 발음이 같다는데 착안하여 효행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 그림은 고양이가 참새를 잡기 위해 나무를 오르는 장면이 아니다. 따라서 참새는 평안하다. 참새는 내면의 즐거움을 뜻하는데, 고양이와 연결하면 ‘부모님의 건강 장수는 자식의 진정한 즐거움입니다.’라는 뜻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하긴,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신격화시켰지. 그것도 일종의 정치 행위이긴 하네.”

“숙종 임금 때 도화서 화원이었던 변상벽은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했다네. 별명을 변고양이라고 부를 정도였지.
변상벽은 성리학의 핵심 내용인 효(孝)와 고양이를 결합하여 그야말로 대박(?)을 쳤네.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 묘(猫)와 장수를 뜻하는 중국어가 발음이 같다는 것에 착안해, 부모님의 장수를 기원하는 효행의 상징으로 만들었지.
단원 김홍도가 그린 고양이와 나비 그림도 변상벽이 구축해 놓은 상징을 따라 한 것일세.”

“쥐를 잡는 고양이에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고양이, 효도하는 고양이로 변해 온 것이군.”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의 묘작도이다. 변상벽이 창안한 상징인 효행의 의미를 그대로 따랐다. 고양이는 장수, 나비도 장수, 패랭이꽃은 원하는 대로 이루다는 뜻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그런데 김득신의 야묘도추에는 쥐도 없고, 좋은 세상을 만들거나 효도하는 고양이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린 건가? 뜻이 있긴 한 건가?”

“분명한 뜻이 있네. 이 그림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영화 <왕의 남자>를 보아야 하네.
주인공인 공길이 한 말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