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익 챙긴 150년,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수정’부터

[화제의 책] 고승우 『150여 년의 한미관계사와 주권국가로 가는 길』

2024-10-19     김치관 기자

올초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한 여파는 남측에도 미쳐 통일운동 단체들이 명칭을 변경했고, 주요 단체들의 명칭 앞자리는 ‘자주’가 차지했다. ‘민족 통일’의 화두가 ‘반미 자주’라는 당면 과제로 옮겨진 모양새다.

고승우, 『150여 년의 한미관계사와 주권국가로 가는 길』, 우리겨레, 2024. 10. [자료 제공 - 우리겨레]

해직언론인 출신으로 ‘제2회 민족일보 조용수언론상’을 수상한 고승우 한미일연구소 상임대표가 『150여 년의 한미관계사와 주권국가로 가는 길』(우리겨레)를 출간한 것은 이같은 흐름과 잘 들어맞는다.

저자 고승우는 이 책을 통해 종으로는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년)부터 현 윤석열 정부까지의 한미관계를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축으로 개괄하고 있으며, 횡으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핵으로 한미 간 모든 현안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미국의 외교 문서나 비밀이 해제된 자료, 미국 공식 문건 등을 토대로 정리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며 “미국 쪽의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제주 4.3, 여순 사건과 같은 경우 국내의 공신력 있는 기관 등의 연구 결과를 일부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고, 실제로 참고자료 목록의 절반 이상이 미국 공식 문건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민감한 시기나 주제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미국 공식 문건들을 인용, 미국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점이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제주 4.3과 여순 사건에서 미국의 역할이나 한국전쟁시기 미국의 핵무기 사용 검토, 광주항쟁 시기 카터 대통령의 무력진압 결정 등도 포함된다.

저자는 두 차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에 대해 질의했다. [자료 제공 - 우리겨레]

저자는 카터 전 대통령에게 “고령이라서 광주 진실을 당사자 입장에서 밝힐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해” 「카터 전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361~371쪽)를 두 차례 보내 사실관계를 추궁하기도 했지만 역시 답신을 받을 수 없었다. 저자의 이번 책이 기존 학자들의 연구물과 다른 점이랄 수 있다.

“...1980년 5월 카터 미 대통령이 광주항쟁을 한국군이 무력 진압하도록 결정한 것은 광주 현지 상황이 SIOP가 공격받거나 적대세력의 수중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초비상 상황으로 판단된 결과로 추정된다... 카터 전 대통령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광주항쟁의 비극에 대해 개인적인 소회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364~365쪽)

SIOP는 단일통합작전계획(the Single Intergrated Operating Plan)으로 1961년부터 2003년까지 냉전 시대에 미국이 개발한 전략적 핵전쟁 계획으로 미국의 모든 전략 핵무기(육해공군)의 사용을 하나의 포괄적인 계획 아래 통합시킨 것으로, 광주항쟁 당시 군산 미 공군기지에서 핵무기 장착 팬텀 전투기가 대기중이었다는 설을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이 책은 539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한미관계의 모든 사안을 종으로 횡으로 살피고 있지만 새로운 사료나 역사적 사실을 제시한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숱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논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중요한 가치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의 부제를 “한미동맹 정상화와 군사주권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로 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랜 기간 진보적 언론인으로서 현실에 대한 발언을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들이 켜켜이 쌓여 분명한 논점으로 정리된 것.

저자는 “150년의 한미관계는 미 국가 이기주의가 일방적으로 실천된 과정”으로 파악하고 “한국이 주권국가로 가려면 한미동맹의 정상화가 급선무”라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전략, 전시작전권, 유엔사와 유엔사 후방기지, 국가보안법 등을 주요하게 살피고 있다.

주한미군과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을 도표화 해 '한미동맹의 구조'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자료 제공 - 우리겨레]

특히 저자의 강조점은 한미동맹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법적 토대가 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영구폐기나 수정”으로 분명하게 모아지고 있다. 그래야 이 조약을 근거로 미국이 ‘슈퍼 갑’ 위치에서 맺은 SOFA(주둔군지위협정) SMA(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 등도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켜 정치머슴인 대통령, 국회의원이 한미동맹의 문제점을 법치에 의거해 해결토록 해야 한다”는 것. 물론, 윤석열 정부 시기에 무망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책은 저자가 통일뉴스와 미디어오늘 등에 연재하거나 한겨레신문, 폴리뉴스 등에 기고한 글들을 토대로, 북한이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를 선언한 이후에 엮었다. 따라서 “이념은 시대에 따라 명멸하지만 민족은 항구적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민족의 숙원을 달성하고 동북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는 저자의 뚜렷한 주견이 한미동맹 정상화의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고 합리적인 통일이 어떻게 이뤄질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수십 년간 한반도 분단을 지속케 하고 평화통일을 저지하면서 한국을 지배해 온 두 개의 쇠말뚝인 한미동맹과 국보법을 정상화하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고뇌에 찬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