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8일전, 통일부가 '북의 총선 개입시도'를 언급한 까닭은?

[기자수첩] 말과 행동엔 책임따라..'통일문제 다루는 중앙행정기관'임을 새기길

2024-04-02     이승현 기자
통일부. [통일뉴스 자료사진]

총선을 8일 앞두고 통일부가 그야말로 '열일'(열심히 일하다)하고 있다.

2일 오전, 전날까지 예정에 없던 '북한의 우리 총선 개입시도 관련 통일부 입장'이 발표됐다.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발송된 통일부 입장문은 "북한은 우리 선거일정을 앞두고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의 관영 매체를 통해 대통령을 모략·폄훼하며, 국내 일각의 반정부 시위를 과장하여 보도하고, 우리 사회 내 분열을 조장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를 총선 개입시도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같은 북한의 시도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훼손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현명한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이에 현혹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기자들에게 지난 1월 7건, 2월 12월 3월 22건 등 [노동신문] 관련 기사가 증가하고 있다고 하면서, △대통령 모략·폄훼 △반정부시위 과장 보도 △전쟁위기 조장 △우리사회 내 분열 조장 △우리 정부에 대한 독재이미지 조작 등 유형별로 기사 주요내용과 게재일 및 지면을 특정한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몇가지 문제가 제기됐다.

먼저,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은 한국의 유권자가 볼 수 없도록 차단 조치가 되어 있는데 그 기사가 어떻게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것.

또 지난 1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 이후 대남기구가 해체되고 [우리민족끼리]를 비롯한 선전매체도 활동을 중단하면서 한국 관련 기사는 오히려 대폭 축소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매일 발행하는 [노동신문]은 이미 오래 전에 편집국 산하 부서에서 '남조선부'와 '조국통일부'를 빼버렸고 과거 남한 소식을 전하던 6면 대부분을 지금은 외신으로 대신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매주 화요일 6면에 제한적으로 한국의 반정부 시위를 보도하고 있는데,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에 와서 총선개입을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이 이어졌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일부 국민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노동신문] 보도를 접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지만 옹색하다고 느꼈는지, "외견상 대남기구가 해체됐지만 대남 선전, 선동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관영매체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총선을 몇일 앞둔 시점에 통일부 입장이 나온 배경에 대해서는 "(관영매체 보도의)비난의 빈도가 점점 1월보다 2월, 2월보다 3월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했다"고 답했다.

여러 설명에도 불구하고 왜 통일부가 총선 8일 전에 이렇게 석연치 않은 입장을 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누가 총선에 개입하려 하는가? 주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개입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구 대변인은 질의응답 말미에 시의적적한 말을 했다.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중단하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 것은 '70년대부터 남북 간에 합의해 왔던 가장 기본적인 합의 정신"이며, "(북이)그런 합의 정신이나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분명히 지적한 것"이라고 강조한 것.

남북이 상호 비방 중상을 중단하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한 합의는 어쨌든 나무랄데 없는 이야기이다. 언제나 남과 북이 서로 반드시 지켜야 할 '합의정신'이고 '기본적인 예의'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북관계를 다루는 핵심부서인 통일부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이다.

상대를 향한 말과 행동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걸 이번 총선에서도 여러 번 목격하고 있다. 

'정권심판'론에 맞서 띄운 '이·조심판'이 '심판' 여론을 확산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든지, '마피아도 부인과 아이는 안건드린다'는 발언으로 감싸려 했으나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는 역풍을 맞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말과 행동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노력은 언제나 필요하다.

최근 통일부장관은 '자유주의 철학을 반영한 새로운 통일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공론화 주체인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공식석상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공공연히 발설하는가 하면, 통일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위원이 '체제경쟁에서 실패를 자인한 북의 반통일, 반민족 인식을 공략하는 공세적 평화통일 추진'을 학술회의에서 역설하는 등 체제통일을 행해 일방적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 모든 발언은 우리사회 내부의 오랜 토론과 합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룬 남북사이의 합의를 송두리째 부정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합의에 도달하는 민주적 과정을 도외시한 주장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 민족의 총의를 담아내야 하는 통일의 길에 역행하는 흐름이라고 판단한다.

다시 한번 통일부가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통일문제를 다루기 위해 설립된 중앙행정기관'이라는 점을 새기며 정쟁에 휩쓸리지 말고 '열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