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파들은 ‘제주4.3 왜곡 광풍’ 멈춰야
[기고] 애서운동가 백민 이양재
제주4.3의 본질은 집단학살, 집단살해다. 즉 제노사이드(Genocide)다. 제노사이드는 “고의로 혹은 제도적으로 다른 민족이나 종족, 다른 인종이나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제주4.3은 정치제도의 목적에서 동족이 동족을 집단학살한 것이므로 20세기 중반의 가장 비참한 제노사이드다.
제주4.3은 세계의 현대사와 우리나라 역사의 맥락을 무시한 채, 제주4.3 하나만으로 평가하려 한다면 제대로 된 결론을 도출할 수가 없다. 세계사적으로 제주4.3은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1941~1945)과 일제의 남경대학살(1937.12.~1938.02) 및 오키나와 인간방패학살(1945)에 이은 집단학살사건이다.
제주4.3은 우리의 근대사로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이재수(李在守, 1877~1901)의 난과 3.1만세운동(1919)의 무자비한 탄압, 꼭 100년 전(1923) 동경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의외로 많이 희생된 제주도 출신자들, 그리고 일제의 제주민들에 대한 수탈 역사를 연결선상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또한 제주4.3은 이후의 여순사건(1948.10)이라든가 한국동란 중의 노근리사건(1950.7) 및 신천사건(1950.10), 거창사건(1951.2.) 등등과의 연결선상에서 고찰하여야 한다. 물론 제주4.3에서의 집단학살은 한국동란과 같은 전쟁기간에 발생한 사건은 아니기에 우발적이라 할 수가 없다.
이러한 광폭(廣幅)의 안목을 통하여 제주4.3은 20세기 제노사이드의 대표적인 한 유형으로 논증되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지난 2월에 발족하여 추진 중인 ‘제주4.3 관련 문건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시도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 대한 반향 현상이 수구 정당과 수구파들 일각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한 반향의 선두점에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태영호가 있다. 태영호는 지난 2월 13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에서 최고위원후보로 연설에 나서면서 갑자기 무릎을 꿇으면서 “제주 4·3 사건의 장본인은 ‘김일성’이고, 북한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대신 용서를 구한다”라는 발언을 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주 4.3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고 나서도 비슷한 발언을 하면서 다시 논란을 증폭시켰다.
일부 국민들은 이를 국민의힘 일각과 수구파들이 사전에 교감하여 의도적으로 연출한 헤프닝이 아닌가 여긴다. 그것은 태용호의 망언에 연이어 나온 제주4.3 추모일을 앞둔 수구 정당들의 현수막 사태와 몇몇 수구 단체들이 올해 제주4.3 행사를 방해하려 제주로 집결하겠다고 밝힌 데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의혹이다.
현재 제주도의 국회의원 3석은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갖고 있는데, 지금 제주의 지역 정가에서는 이미 총선을 향한 프레임 덧씌우기 선동이 퍼지고 있다. 수구정당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우리 민족의 불행한 역사 사건을 이용한 프레임 덧씌우기와 편가르기 전술은 이제는 그만하기를 바란다.
“濟州道民罷業(제주도민 파업)
發砲警官處斷(발포경관 처단)하라고
官民一致持久戰繼續(관민일치 지구전 계속)
제주도(濟州島)에서는 지난 一일 三一절 기념행사 때 군중과 경찰관과의 충돌로 군중 측에 수명의 사상자를 낸 일이 있어 경민(警民) 사이에 이론이 분분하든 중 九일부터 도내의 도청 재판소 학교 등 각 관공서와 공동단체는 총파업을 단행하고 발포경관의 처단과 경찰 책임자의 인책 사직을 강경히 요구하여 사태는 저윽히 험악하게 되였다. 이리하야 十二일 까지도 총파업 사건은 해결의 서광을 보지 못한 채 지구전(持久戰)이 계속되어 경무부에서는 조(趙) 경무부장이 十二일 하오 급거 비행기로 현장으로 실정조사차 떠났고 이보다 앞서 전북에서 百명 전남에서 二백명 도합 三백명의 경관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저 출동하였다한다. 과연 제주도 내의 이번 총파업은 전에 보지 못한 대규모적인 것으로 그 귀추가 크게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