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미술계 변화를 위한 제1악장

[연재] 이양재의 ‘문화 제주, 문화 Korea’를 위하여(43)

2023-02-06     이양재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6. 비평에 대한 반응

제42회 연재에서 제3회 제주비엔날레에 대한 비평은 제주미술계가 부글부글 끓던 중에 나온 비평이라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화가는 “제주비엔날레가 사실상 두 번째 개최에서 이렇게 전도(顚倒)된 원인은 제주비엔날레가 이해관계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엔날레에 얼마의 예산을 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번에 사용한 예산에 관람객 수를 나누면 1인 관람객을 위하여 대체로 15만 원 이상을 썼을 것이라고 계상한 미술가도 있다. 보통의 비엔날레라면 최소 15만 명부터 최대 30만 명 이상이 관람하여야 정상이다. 관람객 동원이 그 최소 인원의 1/10도 안 되고, 도민의 1/100도 안 되니 헛돈을 쓴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 지적에 나는 “그래도 제주 미술과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비엔날레는 필요하다”라는 비평적 비호를 해 주어야 했다.

7. 전시장 배치의 문제점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삼성혈, 제주국제평화센터, 미술관옆 제주, 가파도 등 도내 여섯 개 장소에서 제3회 제주비엔날레가 개최되었다. 제1회에서는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제주시 원도심, 서귀포시 원도심, 알뜨르비행장 일원에서 개최하였지만, 전시 외에도 예술가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아트 올레 투어, 토크 쇼, 강연, 콘퍼런스 등을 진행하여, 비엔날레의 개최 지역 확산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번 제3회 비엔날레는 확산성은커녕 폐쇄된 진행을 보여 주고 있다. 전시 장소에 전시품을 배치하는데 작품의 조화나 흐름보다는 작가와의 친분에 따라 위치를 배분하기에 급급했다. 그 한 예를 제시하고자 한다.

강요배 화백의 폭포, 유화, 4점 연결, 강한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용은 제주인들의 수신(水神)이자 자연과 역경을 이겨내는 생명력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유창훈 화백의 한라산과 제주 오름, 파노라마, 1점, 수묵. 작품이 압권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백광익 화백의 연작, 유화, 3점. 제주 삼다(三多) 가운데 하나인 바람을 화폭에 가두어 놓았다. 붉은 싹은 생명력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도립미술관 1층 도입부에는 4점을 붙인 강요배 화백의 작품은 폭포에 떨어지는 물길에 거슬러 오르는 용을 형상화하였다. 2층 서쪽 중앙부 벽면에는 백광익 화백의 오름에 부는 바람을 주제로 한 마름모꼴의 연작 3점이 전시되었고, 2층 출구 쪽에 인접한 중앙부 벽면에는 유창훈 화백의 제주 동부지역을 묘사한 파노라마 묵화가 ㄱ자 모양으로 꺾여져 전시되어 있디.

능숙한 전시 전문가라면 이 세 점의 작품은 떨어뜨려 전시하지 않는다. 이 세 작품의 작가는 다르지만 묘하게도 제주의 자연환경을 묘사한 일관성이 보이는 것을 간파하여야 했다.

강요배 화백의 작품은 물길의 자연 섭리에 역행하는 수신(水神) 용이 거슬러 올라가는 형상을 보여 주고 있고, 백광익 화백의 작품은 제주에 많은 바람, 즉 풍신(風神)의 영향력을 묘시하고 있으며, 유창훈 화백의 파노라마 묵화는 지(地), 즉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여‥‥‥, 오름으로 형상되어 제주인들과 함께 하는 지신(地神)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세 작품이 한 공간에 삼각형 또는 육각형으로 한자리에서 대비해 볼 수 있도록 배치해야 했다. 이렇게 세 작품이 한 번에 출품되었는데, 그 천우신조의 우연을 제대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아무렇게 배치한다고 작품 배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작품 배치에는 그 기준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번 제3회 제주비엔날레에서 보이는 작품의 배치는 치졸하다. 더군다나 제주현대미술관의 입구에 있는 김흥수 화백 작품 전시실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어느 설치 미술 작가의 작품으로 바뀌었다. 차라리 김 화백의 작품을 그대로 걸어 두고, 그 설치미술가의 작품을 가설 전시관에 설치하는 것이 좀 더 큰 감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전시장 전체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난다.

8. 누구를 위한 제주비엔날레인가?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여러 화가는 “제주비엔날레가 사실상 두 번째 개최에서 이렇게 전도(顚倒)된 원인은 제주비엔날레가 이해관계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한 부글부글 끓는 여론을 듣기나 하는 것일까? 애써 외면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무슨 목적의 비엔날레이며 도립미술관인가를 출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금년에 제14회로 접어드는 광주비엔날레는 주제 의식과 목적이 분명하다. 비엔날레를 제대로 진행하는 행정력과 전문가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그렇지 못했다. 몇 사람의 약력에 한 줄로 언급되는 경력 용도의 비엔날레로 혹평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 제주도립미술관 운영에 전임 도지사의 인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미 제주의 괄목할 만한 몇몇 화가들은 제주 미술계에 미련을 접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제주의 미술 단체나 화가들은 자신들의 미술 활동에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고양이 목(미술 권력)에 방울을 달지 못한다. 그래서 내게 비평을 주문한 것으로 이해한다. 제주 문화계의 예술 행정이 바꾸지 않으면 나도 제주에 대한 미련을 접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