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우리 민족의 '지식박물관'을 설립하자

[연재] 이양재의 ‘문화 제주, 문화 Korea’를 위하여(1)

2022-05-06     이양재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글을 시작하며

필자는 처음 이 연재를 구상할 때, 제목을 “문화 제주, 문화 한반도”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반도’란 단어는 영어로는 “Korean Peninsula”이지만, 북이나 중국에서는 ‘조선반도’라 번역하고 있고‥‥‥, 또한 제목을 ‘문화 한반도’로 한다면 이 작은 반도를 중심으로 문화를 사고(思考)하고 논하는 것으로 비쳐져 우리 민족의 실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져, 제목을 정하는데 여러 궁리를 거듭하였다.

그 결과 남과 북의 영문 국호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KOREA’에 착상하여, 남북통일 후의 국호는 ‘통일고려(統一高麗)’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미래지향적인 통일민족국가의 문화를 꿈꾼다는 의미에서 ‘문화 Korea’로 한 것이다. 이제 필자는 민족지향적인 미래를 위한 문화를 논하고자 한다.

‘한국 문화’ 또는 ‘조선 문화’는 과거와 현재의 문화를 말한다. 그러나 ‘문화 한국’ 또는 ‘문화 조선’은 현재 발전해 나가고 있고 미래에 창조해 낼 문화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필자는 ‘문화 제주’를 표방하며 2017년 하반년에 인터넷뉴스 ‘제주투데이’의 「제주미래논단」에 15회 기고한 바 있다. 당시 필자가 말하고자 한 ‘문화 제주’는 과거나 현상의 ‘제주 문화’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만들어나갈 ‘문화 제주’를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인터넷신문 ‘통일뉴스’의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여 ‘문화 제주, 문화 Korea’를 연재하고자 한다. 매주 금요일, 먼저 ‘문화 제주’를 1회 연재하고 다음에 ‘문화 Korea’를 1회 연재하는 식으로 교차 연재해 나갈 예정이다.

[문화 제주①] 제주에 우리 민족의 ‘지식박물관’을 설립하자

우리 애서가들 사이에서는 2007년경부터 우리나라에 ‘지식박물관(知識博物館)’을 설립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우리 민족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다라니경』과 『고려재조대장경』을 가지고 있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으며,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등의 국가기록과 세기적 저술 『동의보감』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 『천상분야열차지도』, 조선의 지도 제작술을 집대성하여 제작한 『대동여지도』 등등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현대에 이르러 반도체와 인터넷의 발달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애서가들이 지식박물관 설립을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는 여러 동료 애서가들이 타계한 이후에는 그들이 소장한 중요한 전적(典籍)이 행방불명되는 경우가 흔했고, 현재 활동하는 많은 수집가가 소장품의 보관 장소가 협소하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큰 소장가가 타계한 후에 그의 소장품들은 연구나 열람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에 우리 애서가들은 국가가 주도하여 ‘지식박물관’을 설립하여 매입하거나 위탁 보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2007년 대선에서 그 필요성을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후보의 선거본부에 제기한 적이 있으나, 일반인들의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여 공약으로 확정되지 못하였고, 이후 안타깝게도 이명박 정부는 민족 유산을 지키고,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강물에 흘려보냈다. 이명박 정부가 강물에 흘려보낸 국고의 규모가 코끼리 크기라면 ‘지식박물관’을 설립하는데 필요한 경비는 코끼리 코에 비스킷 하나 정도의 규모에 불과하다.

필자는 여러 애서가의 수집품 성향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전적에 치중한 수집가가 있고, 종교개혁가 존 칼빈 자료의 세계적인 수집가도 있으며, 문학작품이나 만화책 전문 수집가도 있다. 그런 수집품을 모으고 디지털로 만들어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며, 박물관을 만들어 영구 보존과 교육을 주도할 수 있다.

아울러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퇴직하는 교수들이 장서 처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근래의 대학도서관에서는 귀중본 고서가 아닌 한 기증을 받지도 않으며, 기증해도 버려지는 예도 있고, 헐값에 팔려나가 흩어지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이 소멸하는가 걱정을 하는 전문 학자분들이 여럿 있다. 필자는 이러한 자료들도 《지식박물관》에서 흡수하여야 한다고 본다. 각 분야의 충분한 장서가 있으면 연구자들이 그 소장처로 모이게 되어 있다.

필자는 국립문학박물관 준비팀이 문학책을 수집하기 전인 2017년에 경북 울진의 자치단체장에게 “연간 1,000억 정도의 돈을 한수원으로부터 받는데 그 돈의 일부로 향후 3년간 전국에 있는 문학책 수집가 5명의 문학책을 전부 일괄 매입하라. 그렇게 자료를 먼저 확보하면 문학박물관 설치할 장소는 당신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조언하였고, 간단한 사업계획서를 초안 잡아 주었지만, 2018년에 그는 자치단체장으로 공천받지 못하여 그 제안은 공약으로 발표되지도 못하고 수포가 되었다.

이제 필자는 ‘지식박물관’의 설립을 다시 제안하며, ‘지식박물관’은 훼손이나 멸실로 가장 안전한 지역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기고 있다. 그것은 유사시에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 등이 초토화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련자들 일각에서는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에 필자는 제주가 한반도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지역이므로, 그곳 한라산의 해발 300m 정도 지점, 풍수해로부터도 위협이 제일 적은 장소에 ‘지식박물관’을 설치하였으면 한다. 과거 조선시대의 제주는 문화가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다. 사대부들의 가장 가혹한 유배지로서 유배 온 일부 학자들이나 문인들에 의하여 문화 및 예술이 전해지고 만들어진 변방이었지만, 교통이 발전한 현대의 제주는 접근이 용이하여 미래에는 변방으로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방문 비자(VISA)가 필요 없는 특별자치도이다.

그런데, 제주 이외에 ‘지식박물관’의 적지(適地)로 또 한 곳이 있다. 그곳은 분쟁 위험이 가장 큰 휴전선 지역이다. 21세기에 남북 간의 직접적인 분쟁이 생긴다고 해도 이제는 휴전선에서 시작되기가 어렵다. 오히려 ‘지식박물관’ 같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서실이 비무장지대의 한 지점에 설치할 때 역설적으로 휴전선의 그 지점은 분쟁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지점이 될 것이다. 남북 모두 우리 민족의 영광을 보존하려 하므로 그 지점에서의 분쟁은 상호 간에 피할 것이다.

‘지식박물관’은 어느 지역이든 관심을 두고 미래를 위하여 우리 시대의 애서가들이 추진하여야 할 미래의 유산이다. 이 사업은 지금 우리 시대에 맡겨진 의무로서, 제주도에서 추진한다면 문화 제주를 만들 수 있는 핵심 사업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제주와 한반도」, 인공위성 사진, [갈무리 사진 - 네이버 지도]  한반도의 위성 사진을 거꾸로 보면, 21세기의 제주는 변방이 아니라 태평양을 향한 오늘과 내일의 전진기지이다. 21세기에는 제주도민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국민은 제주의 입지를 우리 영토 남쪽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해양을 포함한 영토의 중심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위성 사진을 거꾸로 보면, 21세기의 제주는 변방이 아니라 태평양을 향한 오늘과 내일의 전진기지이다. 21세기에는 제주도민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국민은 제주의 입지를 우리 영토 남쪽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해양을 포함한 영토의 중심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애서운동가 이양재(李亮載)

호는 백민(白民), 본관은 광주(廣州),
경기도 가평군의 3.1운동을 주모자 천도교인 이병식(李秉植, 1861~1938)의 증손자로 경기도 포천시에서 1955년에 태어났다. 중동중?고등학교를 거쳐 신학을 공뷰하던 1974년(19세)에 철학사상가 복초(伏草) 최인(崔仁) 선생으로부터 민족사상을 깨우쳤으며, 1976년에는 ‘국사찿기협의회’가 시도한 ‘국정교과서사용금지가처분신청’(변호사 용태용)의 실무에 자원 봉사하였다. (당시의 법정 투쟁은 안호상(安浩相) 김득황(金得榥), 임승국(林承國) 등 3인이 주도하였다)

1975년부터 고서 및 고문헌 수집을 시작하며 1981년부터 애서운동을 하면서 서지학자 남애(南涯) 안춘근(安春根) 선생으로부터 다년간 실사구시의 서지학(書誌學) 가르침 받았고, 1983년부터는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과 동주(東洲) 이용희(李用熙)의 고서화(古書畵) 감식안(鑑識眼)을 사숙(私淑)하였다.

1994년에는 이태영(李兌榮) 여사와 함께 제4회 애서가상(愛書家償)을 공동수상하였고, 1991년에는 제1회 허준의학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부터는 다년간 한국고전문화진흥회 상임이사로, 2007년에는 ‘이준열사순국일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봉사하였으며, 2009년부터는 다년간 ‘포럼 그림과 책’ 공동대표를 맡았다. 현재는 ‘재단법인 리준만국평화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중이다.

지난 47년동안 애서가로서 고서와 고문헌을 수집하면서 [대동여지도] 초판본, [수능엄경언해] 등, 20여 건에 달하는 고서와 고문헌을 찾아내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게 하였고, 현재는 사서류(史書類)와 고문서,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 옛 선인(先人)들의 유묵 등등 최소 2,000여 점 이상을 소장(所藏)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의 마지막 천재화가 오원 정승업], [고려불화와 돈황사경을 찾아서]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안견연구]가 있고, 편저로는 [안견연구를 위하여] [제주미래담논(1)] 등이 있다. 또한 서지학과 회화사 통일미술에 등의 분야에서 150여 편의 논문과 잡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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