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으로 재탄생한 ‘총을 든 역사학자’
[서평] 손자 김광업이 펴낸 『희산 김승학 한국독립사 일대기』
“이리하여 신문사와 인쇄소가 마침내 부활하였으니 때는 1921년(4254년) 신유(41세) 사월 중순이었다... 이후 1927년까지 6년 동안 계속 운영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인쇄소 이전이 29회였다. 한 번 이전할 적마다 마차 두 량과 인력거 20여 채(활자 운반)가 필요하였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21년,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을 복간시키고 변절한 이광수를 대신해 사장에 취임한 희산(希山) 김승학(金承學, 1881-1964)의 『망명객행적록』에 따른 흔적 일부이다.
저 넓고 높은 푸른 하늘이 감동하고//살아 있는 생명체를 보호해주는 태양도 감격하고//지구의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하여 주기 위하여/밤마다 조명등을 켜주고 있는 달님도 감격하고//친근함을 유지하며 살아가자고/서로의 손을 조물조물 잡아주며/반짝반짝 거리는 저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크게 감격하였다//(724쪽)
희산의 <독립신문> 복간을 이처럼 감격적으로 예찬한 이는 다름 아닌 그의 후손(손자) 송뢰 김광업이다. 시와 소설, 번역 등 문학 전반을 섭렵한 그가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게 읽어 볼 수 있는 하나의 교양서적이자 문학 작품으로서 가치 있게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할아버지 일대기를 1,000쪽이 넘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희산 김승학의 『한국독립사』와 『망명객행적록』을 그의 손자인 송뢰 김광업과 도담 김창업이 공동편저한 『희산 김승학 한국독립사 일대기』(도서출판 말굽소리)는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76배율 확대경으로 바라본’이라는 부제만큼이나 별난 책이다.
100년 전 독립운동에 몸바친 희산의 일대기를 오늘을 살아가는 편저자인 손자가 희산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내밀한 심경들을 문학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기존의 역사소설류와는 완연히 다른 새로운 유형의 글쓰기라고 볼 수 있다.
희산의 일대기는 독립운동가로서는 드물게 본인의 저술에 의해 공적, 사적 행적이 거의 온전하게 전해졌고, 최근에도 이를 토대로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총을 든 역사학자 - 그의 삶과 사상』(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2021)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같은 특별한 사정도 편저자의 독특한 글쓰기의 밑받침이 됐을 것이다.
특히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빛에 가려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같은 해(1920년) 희산이 천신만고 끝에 상해에서 대량의 무기를 구입해 와서, 광복군사령부는 압록강 국경선을 넘어 국내 진공작전을 펼칠 수 있었던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세밀하게 펼쳐지고 있다. 교전 78회, 주재소 피습 56처, 면사무소 및 영림창 소훼 20처, 적정 사살 95명, 아군 전사 13명, 부상 9명의 전과가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어쨌든 편저자가 희산의 일대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통상적인 독특함을 넘어서는 것이고,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려 천 쪽이 넘는 일대기의 절반 이상이 편저자의 내면적 이야기이자 시, 중얼거림이기 때문이다.
“음..., 친일 행위자들의 교육시간...!!!/음..., 졸지 말고 아래 본문 계속하여.../음..., 정신 바짝 차리고/음..., 숙독(熟讀)하시기 바랍니다...!!!/음..., 이번 수능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긴 책을 읽노라면 중간 중간 편저자의 ‘음...’이 삽입되는 대목들이 되풀이고 어느결에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음...’을 따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제라면 치를 떠는 반일의식이 자연스럽게 차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예의(禮誼: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예의(禮儀: 존경의 쓸을 표하며 지켜야할 도리), 예의(銳意: 어떤 일을 잘하려고 단단히 차리는 마음), 예의(禮意: 애로써 올바르게 나타내는 존경의 뜻)의 뜻을 구분하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451쪽) 단어마다 병기된 한자나 친절한 뜻풀이는 편저자의 성실함을 넘어 교육자로서의 소명의식이 배어나온 결과물일 터다.
무엇보다도 희산의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고 편저자의 정서가 그러한 탓인지 자연과의 무수한 내면적 교감은 책을 덮을 때쯤이면 어느덧 자신의 감성으로 착각될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혼자 다시 산으로 갔다. 순수한 초목들을 내 옆에 앉힌 상태에서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마음을 갖고 편안하게 앉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태양이 지구를 밝히며 지나가는 저 그 길목은 우주를 살펴주는 신께서 닦아 놓으신 오솔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신께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오솔길에 앉아 있는 태양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때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 즉 그것이 생명체이든 무생명체이든 할 것없이 모두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다. 그때 즈음 황조롱이 한 마리가 하늘 높은 곳에서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505-507쪽)
물론 자연의 품에 안겨 몰아지경에 드는 것도 결국은 “나는 그때 저 황조롱이가 나에게 저 하늘만큼이나 넓고 너그럽게 생각을 하며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일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잘 대처하라는 뜻을 받아들였다”는 식의 현실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지만. 독립운동은 늘 일제와의 목숨을 건 투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의 분열과 정파투쟁을 헤쳐나가야 하는 고달픈 길이었고 자연만이 유일하고 항상적인 안식처였던 셈이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국내 잠입 활동이나 무기 구입 과정은 독자가 주인공이 된 양 빠져들게 되고 일본군에 대한 증오와 일본군의 간사함을 표현하는 제한 없는 단어와 이야기 전개는 생경함을 느끼기 십상이지만 일종의 통쾌함을 느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100년 전인 1921년 소련 크레물린 궁전에서 열린 ‘전세계혁명단체대표자대회에 관한 문헌자료’를 조사해 소개한다든지(736쪽), ‘김승학 선생 연보’를 비롯해 편저자가 부록에 수록한 영자지에 기고한 칼럼(영문 및 국문)과 자직시 등에서도 편저자의 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책이 결실을 맺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희산이 독립된 조국에서도 김구의 암살을 지켜봐야 했듯이 희산의 후손인 편저자도 “기성회비를 못 낸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많은 학생들 앞에서 두들겨 맞았다. 나는 이때부터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갔다”는 것이 우리네의 현주소였다.
독학으로 번역가가 되고 문학도가 된 편저자는 조부의 독립운동 업적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고,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는 친일잔재 만큼은 꼭 청산해야만 할 것으로 본다”는 일념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과거의 여러 가지 생각들로 죄의식에 사로잡혀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는 편저자가 광복 76주년을 겨냥해 “죽을 각오를 하면서 책상 앞에만 붙어 앉아”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이 책은 ‘총을 든 역사학자’를 문학작품으로 재탄생시켰지만 편저자의 독특한 글쓰기와 심경의 발로들로 일관돼 있음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일찍 건네받은 이 책을 광복절은 커녕 한가위를 앞두고서야 소개하는 게으름은 변명이 버겁지만 편저자의 내면세계를 끝까지 좇아간 한 명의 독자로서 이 책의 존재를 늦게나마 알릴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음..., 너무 두껍고 중얼거림이 많으시군요...
음..., 너무 오래 걸려 서평을 쓰게 됐군요...
음..., 그래도 우리의 독립운동사는 항상 새롭고, 뜨겁고 너무나 자랑스럽군요!!!
음...,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지만 노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