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강창덕 선생 별세

2021-09-03     이계환 기자
올해 4월 9일 대구칠곡현대공원 민족민주열사희생자묘역에서 열린 ‘4.9통일열사 46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추도사를 하고 있는 생전의 강창덕 선생.  [통일뉴스 자료사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평생을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헌신해온 강창덕 (사)4.9인혁재단 이사장이 3일 오후 2시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192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후 미군정기와 자유당, 박정희 유신정권을 거치면서 무려 7차례나 투옥되고 13년을 복역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4년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년 8개월 복역 후 1982년에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한편, 1975년 4월 8일 당시 대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도예종 등 8명에 대한 사형 선고를 확정했고 국방부는 24시간도 되지 않은 다음 날 새벽 서대문형무소에서 8명에 대한 사형을 전격적으로 집행했다. 국제법학자협회는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 고인은 2006년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훼복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인과 함께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던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은 “왜정시대 중학생 때부터 지역정서에 따라 민족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후에는 민족진영에서 지방정치활동에 참여했다”면서 “특히 4.19 이후 통일운동과 민주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해 민족통일을 염원했는데 그만 세상을 떠나셨다”며 고인을 기렸다.

고인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명이 사형선고를 당한 후 해마다 열리는 추모제에 꼭 참여하면서 먼저 간 영령들을 기렸다. 대구, 경북지역에서 통일 관련 활동을 해온 고인은 마지막까지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을 맡는 등 통일에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빈소는 대구전문장례식장 201호이다. 발인은 6일(월) 오전 8시이며, 장지는 칠곡현대공원 제1묘원이다.

 

통일민주 투사 야성 강창덕 선생님 주요 약력

□ 1927년 11월 30일 경북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 출생
□ 1941년 하양초등학교 졸업
□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차 투옥 (17세)
   경산경찰서 하양경찰관 주재소 지하땅굴 구류장에 수감 약 15일 후 석방
□ 1945년 치안유지법 위반 구류 처분 2차 투옥 (18세)
   경산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약 20일 후 석방
□ 1947년 미군정 포고령위반 구속 벌금형 3차 투옥 (20세)
   대구경찰서 유치장 대구형무소(교도소) 수감, 약 50일 후 석방
□ 1948년 대구상업중학교(6년제) 중퇴 (야간부)
□ 1948년 건국대학교 정치대학 전문부 입학
□ 1949년 국회의원 서상일 비서
□ 1952년 건국대학교 정치대학 정치학과 졸업
□ 1952년 국가보안법 위반(무력통일반대, 평화통일 주장) 4차 투옥 (25세)
   대구형무소 수감 약 30일 후 기소유예로 석방
□ 1956년 영남일보사 정치부 기자(공채 1기)
□ 1958년 대구매일신문사 정치부 기자
□ 1956년 진보당 창당준비위원(진량중학교 교사 사퇴)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 경산군 선거사무장(본부장)
□ 1960년 경산군피학살자유족회 결성 고문
□ 1960년 사회대중당(대표 서상일) 경산군당위원장, 제5 대 민의원 의원 후보
□ 1961년 불법집회 시위 및 공무집행방해죄 5차 투옥 (34세)
   대구형무소 수감. 약 30일후 기소유예 처분 석방
□ 1961년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 6조 위반 6차 투옥 (34세)
   서대문 형무소 수감. 징역 12년 구형 혁명재판부 징역 7년 선고 2년 8개월 복역 
□ 1967년 “반독재 재야민주세력단일후보 추진위원회” 활동
□ 1974년 긴급조치1호, 4호 내란예비음모,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7차 투옥(47세)
   무기징역 선고 후 8년 8개월 복역 (인혁당 재건위 사건) 
□ 1988년 민족자주평화통일회의 대의원 대구경북 고문
□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대구경북 상임공동의장
□ 1990년평민당(김대중총재)신민주연합당(준)통합출범 전당대회 임시의장
□ 1993년 경산민우회 창립 및 초대회장
□ 2006년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국무총리소속)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음

□ 통일연대 고문
□ (사) 4․9인혁재단(4․9인혁열사 계승사업회) 이사장(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현)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구북구회장
□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현)
□ 남북평화나눔운동본부 고문(현)
□ 한국진보연대 중앙본부 고문(전)
□ 노무현재단 대구경북지역위원회 고문 
□ 전태일의 친구들 준비위원장 및 고문
□ 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 고문
□ 민주화운동원로회 회장
□ 반일, 통일 민주화운동으로 7차 투옥 13년 복역

(자료 제공-강창덕선생장례위원회)

 

(추가-2021. 9. 5. 오후 1시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