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민중의 벗 정광훈 의장 10주기 추모제’
추모사업회, 온라인추모관 개설...13일 해남추모제도
“Down Down WTO! Down Down FTA! Down Down USA!"
“Our Word Is Our Weapon!”
구수한 농부의 입담으로 집회장을 휘어잡았던 고 정광훈(1939-2011)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말년에 자주 외치던 구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영어로 된 자주의 함성이었다.
고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민중의 곁을 떠난지 10주기인 13일 오후 2시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민중의 벗 정광훈 의장님 10주기 추모제‘가 ’민중의 벗 고 정광훈 의장 추모사업회‘ 주최로 개최된다.
앞서, 지난 8일 오후 1시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광주추모제가 열렸고 13일 오후 7시 해남군민광장에서도 해남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 2016년 5주기 때는 다큐 <혁명으로의 초대> 상영회가 열린 바 있다.
고인은 1939년 전남 해남 출생으로 1970년대 농민운동에 투신한 이후 1999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전국민중연대 상임의장, 2007년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2011년 빗길 교통사고로 5월 13일 향년 73세로 타계해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잠들어 있다.
문경식 추모사업회 회장은 광주추모제에서 “투쟁의 현장에서, 구수하면서도 날카로운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잡으시던 의장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 한데,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의장님의 삶과 유지는, 오늘의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도록 만드는 힘”이라고 기렸다.
추모사업회는 “혁명은 새벽처럼 온다”는 ‘정광훈 의장님 10주기 추모관’을 온라인에 개설, 추모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다. 온라인 추모관 자료실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들 생생한 사진으로 접할 수도 있다.
1939.09.13. 전남 해남군 옥천면 송운리에서 출생
1952.02. 해남 옥천초등학교 졸업
1955.02. 해남중학교 졸업
1958.02. 전남 목포공업고등학교 졸업
1966.12. 최해옥 여사와 결혼
1970. 해남 YMCA 신협 설립 발기인, 해남읍 교회 신협 설립 발기인 해남읍 교회 중고등부 교사
1972. 해남 YMCA 농어촌 위원장
1975. 크리스찬 아카데미 농촌 장기전문과정 1기 이수
1978.03. 전남기독교 농민회 창립. 총무
1980. 5.18 당시 전남기독교농민회 총무로 활동하며 5.18 민중항쟁에 참여
1981.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교육부장
1983. 일본 아세아교회협의회에서 주선한 아세아지역 농민운동가 훈련 수료(3주)
1984. 민중교육연구소 교육부장, 미국농산물 수입 저지 미국대사관 점거 투쟁
1986~7. 전남기독교농민회 회장
1989. 전국농민운동연합 부의장/전국 수세대책위 교육 선전활동
1990.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초대 의장
1991.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
1992. 9.7농민대회및 5.18진상규명투쟁 주도 수배 중 구속, 4년간 수감(만기 출소)
1999.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2001.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
2003.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WTO 칸쿤회의 반대 한국투쟁단 대표
2005. APEC반대 국민행동 대표/WTO 반대 홍콩민중투쟁단 대표
2006. 한미FTA저지 미국원정투쟁단 단장/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2007.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한미FTA저지 투쟁관련 투옥
2009. 한국진보연대 고문
2011. 민주노동당 고문,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전농 20년사 편찬위원회 위원장
2011.04.26. 화순군수 보궐선거 지원유세 후 해남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
2011.05.13. 오후 8시 51분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운명
2011.05.17. ‘민중의 벗 고 정광훈 의장 민주사회장’으로 장례 거행
2011.05.17.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자료제공 - 추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