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에 젖줄 댄 배달민족론과 대륙사관

[화제의 책] 김동환의 『총을 든 역사학자 김승학』

2021-02-15     김치관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이광수의 변절과 일제의 영향력으로 프랑스 조계 당국의 탄압을 받아 발행이 중단된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이 복간됐다.

<독립신문>을 되살린 이는 희산(希山) 김승학(金承學, 1881-1964)이었고, 주필은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이 맡았다. 광복후 <(환국속간) 독립신문> 발간도 일제시기 독립운동의 연장이었다.

“내가 일찍 조국 광복을 위한 운동 대열에 참여하여 상해에서 『독립신문』을 발행할 때, 백암 박은식 동지가 편저한 『한국통사』라는 나라를 잃은 눈물의 기록과 『독립운동지혈사』라는 나라를 찾으려는 피의 기록을 간행할 때, 그 사료 수집에 미력이나마 협조하면서, 다음번에는 『한국독립사』라는 나라를 찾은 웃음의 역사를 편찬하고자 굳은 맹약을 하였었다.”(김승학, 한국독립사1, 독립문화사, 1965)

희산 김승학의 필생의 업적인 『한국독립사』는 결국 그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지만 독립운동의 한복판을 거쳐 온 당사자가 생생한 자료들을 모아 독립운동사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사 연구의 한 획을 긋는 역작으로 남았다.

김동환, 『총을 든 역사학자 김승학 - 그의 삶과 사상』, 한가람역사연구소, 202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승학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한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원이 책 제목을 『총을 든 역사학자 김승학-그의 삶과 사상』(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이라고 붙인 것은 희산이 <독립신문> 사장이나 『한국독립사』 저자만이 아니라 실제로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선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신문>을 복간하기 전,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만주로 망명해 동북강무당 속성과를 마치고 1919년 항일무장단체인 대한독립단 결성에 참여해 재무부장을 맡아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가 대한독립단을 광복군사령부로 인정받고, 천신만고 끝에 무기를 구입해 오는데 성공해 일본군과 78회나 교전한 무장(武壯)이다.

또한 1926년 육군주만참의부 제4대 참의장에 임명돼 3부 통합운동에 앞장서고 이듬해 군민의회, 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을 조직하다 체포돼 5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도 한국혁명군을 조직, 임정으로부터 ‘광복군 국내 제2지대’로 인정받는 등 ‘총을 든 역사학자’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희산이 중국 봉천의 왜총영사관(倭總領事館)에서 신의주 왜경찰서로 압송되는 도중 압록강을 건너면서 읊은 시에 “販鎗激動義軍勢 무기를 사 들여 독립군의 기세를 고무시켰고 /史筆驚醒事大眠 사필(史筆)을 들어 사대주의의 잠꼬대를 일깨웠도다”라는 대목이 바로 스스로를 ‘총을 든 역사학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30년을 넘게 국학연구소에서 정진해온 저자 김동환은 희산의 생애를 단지 평전류 정리에 그치지 않고 ‘사상’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기존 연구나 저서들과 차별성을 획득했다. 제2장 김승학의 생애에 이어 제3장 김승학의 역사·사상관을 △역사인식의 형성과 배경 △김승학의 배달사상 △『배달족이상국건설방략』의 역사인식으로 나누어 조명한 것.

특히 희산의 생애와 역사·사상관을 대종교와의 연관 속에서 밀도높게 조명한 점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랄 수 있다.

1921년 희산이 상하이에서 <독립신문>을 복간하던 시기 대종교 2대 교주는 국사(國史)의 종장(宗匠)으로 평가받는 무원 김교헌이었고, 대종교 상하이 지역 책임자는 백암 박은식, 간부로는 우천 조완구와 백연 김두봉 등이 있었다. 독립신문사의 부설 교과서편찬위원회의 박은식, 조완구, 김두봉, 정신, 김승학, 백기준 등도 역시 대종교인이었다.

김승학이 사장을 겸임한 삼일인서관(三一印書館, 일명 삼일인쇄소)에서 1923년 대종교의 교리책 『종경(倧經)』이 대종교 중광절(1.15)에 출판됐고, 같은 해, 김교헌이 교열한 임시정부의 역사교과서『배달족역사』와 박은식의『신단민사(神檀民史)』, 정윤의 『사지통속고(史誌通俗攷)』 등 대종교 혹은 대종교인과 관련된 출판물이 잇달아 출간됐다.

저자는 “김승학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대종교인들이 한국독립운동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민족사회 전반에 커다란 반향을 몰고 왔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대종교라는 에너지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바닥에 연면히 흘러온 단군신앙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켰다는 점과, 당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대종교를 국교적 정서로 인식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저자가 집중 조명한 김승학의 ‘배달사상’과 ‘『배달족이상국건설방략』의 역사인식’은 한마디로 ‘신교(神敎), 즉 대종교적 역사인식’이며, “반도중심적, 즉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인식을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요·금·청 등의 대륙중심의 인식으로 확산시켜 가는” 대륙사관으로 펼쳐지고 있다.

희산의 『배달족이상국건설방략』에 나타나는 배달 종족관과 대륙사관이랄 수 있는 강역의식 등을 대종교 경전이나 대종교 관련 문헌 등과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한 대목들은 저자의 심도 깊은 연구성과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배달’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서 사서의 기록들을 추적해가며 엄밀한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점은 높이 살만 하다. 희산은 「애국가」 후렴으로 “무궁화 화려한 금수강산, 배달 민족 배달 나라 기리 사랑하세”라고 외쳤다. 물론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전문 영역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저자는 특히 “김승학은 해방 공간에서도 독립을 외쳤다”며 “그는 우리가 이념과 분단을 넘어 하나가 되어야 할 당위와 방법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왜 다시 김승학을 응시해야 하는가를 고민케 하는 이유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승학의 『한국독립사』에 이어 손자 김계업의 『한국민족총사고』, 증손자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대한민국임시정부사』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4대에 걸친 민족사학의 결과물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일이어서 덧붙여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