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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의 둔한 서평(158)] 위성락의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

2021-02-10     간서치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미·중, 미·러 대결에 따라 거대한 세력 재편을 향해 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더욱 고도화되었다.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는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 외교의 고질인 이 문제를 더는 방치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난해한 지정학 속에 있는 나라의 경우, 외교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지 않은가? 이미 그런 일을 겪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 주술을 깨야 한다. 한국 외교가 5대 수렁에서 벗어나 초당적, 국익 위주, 전략적, 정책적 외교의 길로 나가는 일은 4강에 둘러싸이고 분단된 한반도에 살면서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뒤늦은 시대적 과제다.” (본문 34쪽 중)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때 나는 정치외교학을 상당히 ‘폼이 나는’ 학문으로 보았다. 좁은 한반도에서 벗어나 이른바 세계를 꿰뚫어 보고, 오로지 국익을 위해 멸사봉공하는 근사한 학문! 정치외교학 교수라 하면 얼마나 근사해 보였던가. 뭐, 그럴 때가 있었다.

지금은? 조금 복잡한 마음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책을 읽었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때로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와 국익을 위해 고뇌하고 행동하는 이들도 있었고, 혹자는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상황에 울분하며 우리의 힘을 키워 ‘큰 뜻’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음에 새길만 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그런 이들이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다수 그룹은? 그들은 어리석은 내가 보기엔 ‘한국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분명히 우리말로 이야기를 하는 데 내용은 우리의 입장이 아닌 다른 나라의 그것이었다. 신기하고 놀라울 수밖에. 이른바 ‘검은 머리 미국인’들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역시 우둔한 나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전까지, 혹은 더 엄밀히 따져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외교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나 궁금해 한 사람 중 하나였다. 대미, 대일 정책만 있지 않았나? 그것을 엄밀한 의미의 외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건방진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보였다. 철저한 대미 추종 외교에다가, 일본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가면서도, 국민들의 분노(!)가 필요할 때 적절히 대립각을 세우는 척하는, 뭐 그 정도로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두뇌들이 모인 곳이 외교부이고, 가장 뛰어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들이 정치외교학 전문가들 아닌가. 그런 우수한 이들이 이끌어가는 우리 외교가 그 정도로 허접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나 같은 범인이 알지 못하는 심오한 무언가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가요?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못하겠지만, 예전 우리는 선별된 국제 뉴스만을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 미국을 비롯한 ‘자유 세계’의 소식이었고, 공산권 국가나 우리가 감히 건방지게 ‘제3 세계’라 불렀던 지역의 소식들은 부정적인 것들만이 간혹 나오는 정도였다. 우리의 시각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세계의 이야기들은 그저 먼 나라 토픽으로만 보였다. 참고로 우리가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게 1989년이다.

자고로 무엇을 솔직히 털어놓고 공개하는 것이 비공개로 무언가를 숨기는 것보다 탈이 적다. 하지만 우리는 공개보다 비공개가 참 많았다. 때문에 이른바 ‘야사’ 역시 겁나게 많았다. 어떠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뒤, 수십 년 후 ‘비망록’이란 이름으로 책들이 나오기 일쑤다. 특히 외교 분야가 그랬다. 물론 극비로 다루어야 할 부분이 외교 관계에서는 많을 수밖에 없고, 일정 시간이 흐르면 극비문서들이 공개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특정 개인이 지극히 자신의 주관적 견해가 뚜렷하게 개입되어 쓴 책을 ‘역사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아도 그것을 검증할만한 공식적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예를 들면, 1976년 10월 발생했던 ‘청와대 UFO’ 사건이 있다. 당시 정체불명의 비행체 10여 개가 청와대 방향을 향해 다가왔고, 서울의 수십 곳에서 일제히 대공포를 발사했다. 수천 발이다. 사망자까지 발생한 대형 사건이었는데, 웬걸. 당시의 소식을 전한 신문기사를 제외하고 현재 정부에 남아있는 공식적인 기록은 전무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정부가 언론 보도를 통제하던 시대였으니. 그렇다면 외교 관계에 있어서는 얼마나 많은 ‘사라진 이야기’들이 있을까. 그야말로 ‘그것이 알고 싶을’따름이다.

위성락,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 21세기 북스, 2020. 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야기가 더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책 이야기를 하자. 저자는 36년 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미국과 북핵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젊은 시절엔 한소 수교 업무를 맡았고,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본부장으로 재직할 시 북미 간 2012년 2·29합의에 기여했다. 그러니까 북방외교, 대미외교, 북핵문제 등에 종사한 외교관인 것이다.

이러한 저자가 한국 외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한다. 앞서 인용한 부분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그가 말하는 한국 외교의 5대 수렁은 다음과 같다. △자기중심적, 감정적 관점, △국내 정치 종속 외교, △이념성과 당파성,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외교, △아마추어리즘이다.

이어 저자는 한국 외교를 풀어나가야 할 주요 플레이어를 집권 엘리트, 관료,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 단체 등으로 나누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한계를 조목조목 소개한다. 특히 본인이 몸담았던 관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이른바 자아비판과도 같기에 신선하게 다가온다.

“관료는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오랜 기간 수동적인 자세로 순응해온 바 있어서, 정책적 전략적 접근보다, 행정적 대증적 대처를 위주로 하는 외교에 익숙해져 있다. 민주화 시대에도 관료는 집권 엘리트의 국내 정치 위주, 이념과 당파 위주 접근을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다. 한국의 5년 단임 대통령제는 관료가 적자생존의 경주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결과적으로 관료는 집권 엘리트의 주문에 영합하기 쉽다. 영합주의는 관료의 보신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관료의 관성은 전문성 축적을 저해한다.”(본문 27쪽 중)

뭐 잘 보면 은근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변명(!)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본인이 몸담았던 조직의 문제점을 고백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해법은 무엇일까. 한국 외교의 5대 수렁을 극복하기 위해 6대 플레이어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하늘에서 번쩍 떨어지는 뾰족한 답은 물론 없다. 6대 플레이어가 각자 가지고 있는 역량과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여 조직의 논리와 이해관계가 아닌 국익 우선의 관점으로 외교 문제를 풀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론·학계·시민사회뿐 아니라 우리 모든 국민이 초당적이고 현실적인 국익 위주의 외교 정책을 주문하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뭐 다들 뛰어난 분들이지만, 철저한 감시가 없을 때 우리 사회의 똑똑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 사고를 쳐왔는지는, 치고 있는지는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거부감이 드는 단어들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든가, ‘국익 우선’이라는 것들이다. 당최 멍청한 나는 그 뜻이 모호하기도 하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불신이 솟구친다. 특히 국익이라는 말. 우리는 그동안 ‘국가를 위하여’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보고 겪어왔는가. 온갖 부조리가 죄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전형적인 후진국의 빌어먹을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과문한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저자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외교의 기본은, 우선 ‘우리’로부터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주제 파악하지 못하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우리 외교의 5대 수렁 중 하나라고 지적했지만, 난 오히려 너무 너무 상대만을 지극히 고려하는 태도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강대국이라 일컫는 이들에게 대하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주한미군사령관을 들쳐업고 춤을 추는 야당 대표나 미국에 가서 떼거지로 큰절하는 모습에서 미칠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낀 건 나만일까.

물론 치열한 외교 전쟁터에서 상대방의 내공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 실력을 냉정히 평가한 뒤, 숙여야 할 땐 숙이는 게 슬기로운 자세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은 우리의 그 빌어먹을 진정한 ‘국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당장 손해를 입더라도 장기적 측면에서 그게 더 바람직한 외교가 아닐까.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대미외교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우리 주변 국가와의 외교 문제 및 과제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는 점이다. 특히 러시아와 일본에 대한 지적은 공감한 부분이 많았다. 세상에 상대방이 어여뻐서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이어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심 싫더라도 영리하게 주고 받으며 상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외교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라도 우리는 일본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이들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4년 그야말로 깽판을 쳐버린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복구하기 위해 난리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책 중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유지해나가는 모습 또한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연속성이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는 5년마다 새로운 정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 때마다 전임 정부의 정책을 싹 다 버리고 다시 그 무슨 새로운 정책을 만든다고 난리를 친다면, 과연 우리의 외교 상대국들이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 특히 북은? 아마 북은 이미 문재인 이후의 남한 정부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 책이다. 또한 비록 나와 생각이 전부 같진 않더라도 한국 외교에 대한 저자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책이다.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책이라 기억하고 싶다. 일독을 조심스럽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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