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꿈은 무엇인가
[간서치의 둔한 서평(153)] 로창현의 『평양 여자 서울 남자 길을 묻다』
이렇게 조용하게 새해를 맞은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담담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2021년 신축년이 찾아왔다. 지난 한 해 우리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얼마나 큰 충격과 고통을 겪었는지를 생각하면, 담담함은 참담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새해를 맞았고,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
올해 전망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온다. 미국은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대통령이 마지못해 물러나고, 새로운 리더십이 출범한다. 우리의 경우는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를 맞았다. 이웃 일본은 지난해 리더십 교체가 있었지만, 전혀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인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새해 인사를 주고받으며 다가올 새로운 미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펼칠 기세다.
그리고, 이제 많은 이들이 북을 주시하고 있다. 과연 올해 북은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가. 김정은 위원장이 생각하는 북의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지긋지긋한 국제제재 속에서도 일정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인해 적잖은 타격을 받은 지금, 북은 어떠한 돌파구를 생각하고 있을까. 많은 이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제8차 당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아마도 새로운 국가발전계획이나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반세기 넘도록 이어진 수많은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비록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따라 기복은 있었지만 단순한 생존 차원이 아닌 끊임없는 발전과 성장을 추구해 온 북이 당과 인민이 일심단결하여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선택이고 결심이다. 우리가 지금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에 따라,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옳은 선택과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두말할 필요 없다. 먼저 북의 오늘을 분명하고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날마다 바뀌고 있다는 북을, 정작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만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는 북을 모른다. 아니, 과거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믿고 싶고 듣고 싶은 북만 알고자 한다. 그럼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다. 영영.
혹자는 우리 마음속 냉전 의식, 분단 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기에 북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아직도 지독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이념적인 적대의식이 아닌 차별과 무시, 혐오의 정서다.
마치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무시하듯, 탈북인들을 천대하듯,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비웃고 조롱하듯, 북 역시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그 근원을 올라가다 보면 무지의 벽이 나오게 된다.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아니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기에 우리는 무지의 벽 뒤에서 쉽게 증오하고 혐오하게 된다.
남북이 비록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서로 오가며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절에는 이러한 무지의 벽이 한없이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서 거짓된 정보와 근거 없는 혐오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단단한 마음의 장벽이 세워진 지금 가짜뉴스와 온갖 혐오의 배설물들이 가득하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저주가 가득하다.
그러한 절박함 속에서 이 책을 읽었다. 코로나로 인해 국경을 폐쇄하기 바로 직전까지 북을 오가며 북의 ‘오늘’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던 재미 언론인의 이야기다. 그는 북을 방문하며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비로소 실감했다. ‘와르르 무너지는 편견도 있었고, 전혀 생각지 못한 신선한 충격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거의 절반이 살고 있는 북에 대해 알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뼈저린 자성을 하게’ 되었다.
이런 자성은 우리에게도 뼈저리게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웃동네’ 가족들을 제대로 알려고조차 하지 않고, 어떻게 평화와 공존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도 ‘아랫동네’ 가족들의 실상을 온전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알려는 노력을 하고, 만나고자 애써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엔 정부의 책임 역시 적지 않다. 2018년의 기적과 같은 평화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다 일을 그르쳤다. 또한 정부 당국 간 협상과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헛된 꿈을 가졌다. 그리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자신감을 여전히 갖지 못하고 늘상 겁을 냈다. 북과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은 여전히 금기의 대상이다. 국가보안법이란 반통일적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구든 언제든 ‘북’을 이유로 범법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을 깨버리지 못했다. 2018년의 기적을 만들었지만, 이내 서로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제자리로 돌아왔다.
책을 통해 보이는 북은 평범한 남쪽의 시민이라면 믿기 어려울 만큼 역동적이고 낙관적이다. 치열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어렵지만 모든 인민들이 똘똘 뭉쳐 헤쳐나간다.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현재를 제 눈으로 바라본다. 그 오랜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북이 건재하고 있는 이유다.
스스로 ‘통일 기러기’라 부르는 저자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의 감상과 평가에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중요치 않다. 지금 북이 무슨 꿈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고 있는지 각자 짐작해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들의 꿈과 함께 우리의 꿈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성실한 기자의 눈과 귀로 살펴본 오늘의 북. 그리고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진 2021년. 그 어떤 것에 핑계를 대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힘껏 해보는 것은 어떨까. 평화를 만드는 일에 그 어떤 조건과 변명이 필요한가. 저자의 작은 노력이 분명 더 큰 결실로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굳게 믿는다.
아, 두 가지 뱀의 다리를 덧붙이면,
우선 제목의 ‘평양 여자’는 어느 분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두음법칙 수용 여부에 따라 달라진 남북의 발음 차이에 대한 저자의 문제 제기는 분명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끝으로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 새해를 축하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