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제 통일론 시리즈> - 1. 연방제와 국가연합

2000-10-19     서보혁기자
서보혁기자(bhsuh@tongilnews.com)


<연방제 통일론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지난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북한 정상은 남북한의 통일방안에 있어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바 있다. 이후 학계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진전되면서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일로 가는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것은 남북간의 현 체제를 일정 기간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적, 문화적 교류 협력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이를 보장하는 남북간 정치적 관계로서 국가연합, 연방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최근의 관심을 반영하여 <통일뉴스>는 `연방제 통일론 시리즈`를 모두 6회에 걸쳐 기획연재하면서 통일방안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편집자주>

<연방제 통일론 시리즈> 차례
1. 연방제와 국가연합
2. 북한의 연방제 통일정책의 변천
1) 1960년 과도적 연방제안 -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
2)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국가연합적 연방제안
3. 김대중정부의 통일방안
4. 남북한 통일방안의 비교 검토
5. 통일방안 합의(대내적, 남북관계 차원)와 전제조건(통일환경 조성)


1. 연방제와 국가연합

<연방제와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


연방제는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주권을 가지고, 대내적으로는 통합된 운영을 하는 가운데 구성 단위의 자율성이 옹호, 보장되는 정치제도이다. 이것은 연방제를 채택하는 구성 정치체들이 공동의 적에 대항하여 국가를 방어하고 이러한 역할을 이끌어내는 연방국가를 다같이 존중한다는 것을 말한다.
연방제 형태의 국가는 역사적으로 롬바르드연맹,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위스 연합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를 기초로 상업적, 정치적 힘을 증대시키는데 연방제가 효율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상이 하나의 통합된 연방국가를 형성하는 요인이 된다면, 이 속에서 지방정부의 자치성이 보장되는 요인으로는 지리적 광활함과 역사적 차이, 그리고 지방정부의 오랜 전통 및 언어생활을 포함한 문화적 다양성을 들 수 있다.
그러면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차이를 두고 있는 각 정치체들이 하나의 연방국가로 통일하는 이유, 즉 연방국가에 대폭적인 권한을 양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연방 구성 정치체와 그 구성원들이 국방 등 대외문제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다양한 대내문제들을 연방정부가 효율적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연방국가 차원에서 실시해야 할 경제정책과 같이 지방정부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이를 위해 지방정부의 교역 장벽 제거, 지방의 결함 교정 및 국가발전을 위한 재정 사용권, 그리고 종족문제와 같이 사회적 다양성에 의해 나타나는 문제들의 해결을 포함한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이러한 권한이 무제한적으로 행사돼 지방정부의 자치성을 훼손할 수는 없다. 연방정부의 권한은 연방헌법과 법률로써 분명히 제한해 두고 있다.
한편, 연방제의 구성요소로는 첫째, 성문 연방헌법을 제정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권력분산이 이루어진다. 둘째, 지방정부에 권력의 상당 부분이 이양된다. 지방정부는 국가안보 및 국가내 공동이익 창출에 있어서 연방정부와 협력하지만, 그외 대부분의 행정, 복지, 경제, 문화 등에 있어서 폭넓은 자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셋째, 지방정부 사이의 법적인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이 1980년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채택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은 연방제 통일방안에 해당하며, 위에서 말한 연방제의 구성요소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김일성은 당 대회에서 행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이 방안을 제시하는 `10대 시정방침`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제안에서 "북과 남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을 창립"하자고 말하였다.
그리고 연방국가 기구로 남북 동수 대표들과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들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연방회의를 최고의결기구로 제시하고, 거기서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하여 남북한의 지역정부를 지도하며 연방국가의 전반적 사업을 관할한다고 말하고 있다.
위 두 기구는 정치, 국방, 외교 등 주요문제와 민족 이익에 관련된 문제를 토의, 결정하고, 남과 북의 사회제도와 주민 의사를 존중한다고 되어 있다. 또 남과 북한의 지역정부는 연방정부의 지도 밑에 독자적인 정책을 실시하며 남북간의 차이를 줄이고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되어 있다.
당시 김일성의 이같은 제안은 연방 중앙정부의 강력한 권한을 기초로 한 남북한 지역정부의 자율적 운영을 핵심으로 하는 것으로 연방제 중에서도 중앙정부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당시 북한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시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남한의 "군사파쑈통치"의 청산, 긴장상태의 해소, 미국의 "두개의 조선 조작 책동" 중단 등을 주장하여 그 실현성에 강한 의문을 던져 주었다.

<국가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국가연합제는 광의의 연방제 통일방안으로 이해되면서도 위에서 말한 협의의 연방제와 비교할 수 있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국가연합제는 연방정부 및 지방정부와 상호보완관계를 가지며 대외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광의의 연방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간 상호관계가 느슨하며 연방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 협의의 연방제와 다르다.
이에 따라 국가연합제 하에서 연방의회와 같은 연방 차원의 기구는 성격상 의결보다는 협의의 성격이 강하다. 즉 지방정부의 필요와 지방정부간 상호합의에 의해 연방차원의 정책이 결정, 집행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국가연합제 하에서도 연방정부는 대외적으로 대표성을 갖는다. 이러한 내적 이중성은 국가연합제가 가지는 하나의 국가로서 내적 결합력을 향상시키는데 어려움을 던져 주고 있어 (협의적 의미의) 연방제 국가로 발전하는데 지방정부간 공동 이해의 발견 및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연대의식의 향상이 긴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당국이 국가연합제 성격의 연방통일 방안을 제시한 것은 1973년 6월 23일 김일성 주석의 연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제1서기 후사크 환영 군중대회에서 김일성은 기존에 제시한 과도적 차원의 연방제안을 발전시켜 완전한 통일방도로서 `고려연방공화국` 수립을 내놓으며 단일국회에 의한 유엔 가입도 제시하였다. 북한의 통일방안에서 통일정부의 국호를 처음으로 제시한 당시 김일성의 제안은 "대외관계에서 공동 보조", "정치·군사분야의 합작"을 주장하며 남북한의 상이한 제도의 상호존중을 전제하였다. 그러나 당시 제안은 국제무대에서 치열하게 체제경쟁을 벌이던 상황에서 남한으로부터 대남 통일전선전술의 하나로 판단되었다.
북한이 국가연합제 통일방안을 보다 눈에 띠게 보인 것은 1990년대 초이다. 당시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이어지고 남북한 역학관계에서 남한의 우위가 확연해진 상황에서 김일성은 1980년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을 완화하는 입장을 보였다. 1991년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80년의 방안에서 연방 중앙정부가 관장한다고 되어 있던 국방, 외교분야까지도 남북한 지방정부가 당분간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후퇴하였다.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제도통일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최종적인 통일형태는 후대에 맡기자고 하였다. 이같은 내용은 이미 1988년 김일성의 신년사에서 시사된 바 있으며, 북한은 당시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편승한 남한의 흡수통일 논의를 방어하는 차원에서 이같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된 6.15 남북공동선언에는 북한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남한정부의 통일방안 중 국가연합 단계와 공통점이 있다고 하였다. 최근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돼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개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 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의 발언).

북한당국이 90년대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말하는 통일방안은 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의 기조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북한체제가 처한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하여 탄력적인 입장을 전개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남북공동선언에서 북한이 말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90년대 초 김일성의 통일관련 신년사 발언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은 현상황에서 연방제식 통일의 비현실성을 인식하고 남북한의 두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민족통일 기구" 창설을 제시하고 있다. 거기에 남북 국회회담, 정상회담, 각료회의, 부문별 실무회의가 포함될 수 있으며, 회의기구들이 정례화되면 형식적 차원에서는 국가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①국방, 외교는 물론 양체제의 기존 모든 정책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상호 협력이 필요한 사안 중심으로 공동사업이 추진되고, ②그런 상태에서 구성, 운영되는 회의 기구가 형식적이며, ③남북관계를 그 이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강제 또는 유인장치의 제도화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국가연합제로 평가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남한의 경우 북한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해당 정권 담당자 또는 재임시기에 국한되지 않는 국민적 합의 도출이라는 정치적 요구가 담보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있다는 점도 이같은 한계를 부각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