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가
화가의 흔들림
`행복을 추구한다. 어떤 때는 매우 행복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지나가면 불행하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의 즐거움도 잠깐, 곧 일상의 지루함으로 되돌아간다. 살면서 외롭고, 힘들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훨씬 많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하는 숱한 다짐은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스러진다...(중략)
작업을 한다. 창작은 언제나 첫 여자를 만나는 설레임이다. 열정의 시간이 지나가면 작품은 저만치에서 무료하게 노려본다. 제법 탄탄하게 밀어 넣은 형태나 색조, 잔 붓질과 세심한 정성을 들여 완성한 작품. 그러나 알맹이는 없고 물감 덩어리만 허허하게 존재한다. 마치 앙상한 뼈대 위에 화려한 옷을 입힌 것과 같다. 사람에게 좀더 접근해 본다. 사회적 본성은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질긴 삶을 사는가. 그 대답을 찾아 근현대사를 뒤적이고, 민중과 통일과 신자유주의와 제국의 오만한 세계지배 야욕을 본다. 여지없이 작품은 구호와 주장뿐이다. 근엄하게 훈계하지만 따뜻한 가슴은 사라지고 없다. 앙상하게 메마른 손재주를 한탄한다.
사람들이 작품을 본다. 전시 작품은 흔들림과 열등감, 특권의식으로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다. 하지만 언제나 화려한 색상과 근엄함으로 무장하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작품은 알 듯 말 듯한 제목과 생소한 재료, 제작연도와 작가의 이름만 알려주고 애매함 속으로 숨어버린다. 큰 것을 비판하면 작은 것으로 도망가고, 세부를 비판하면 나약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서로의 가슴에 칼질을 한다...(중략)
그래도 나는 이 일을 멈추지 못한다. 내가 사람을 만나고, 세상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창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흔들림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비록 외롭고, 아픈 상처를 줄지라도 나를 바닥에서 밀어 올려 성숙시키는 거름이기 때문이다.`(창작노트 중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은 나름의 고민과 흔들림이 있다. 애써 그것을 보여주지 않을 뿐이다. 또한 작품에서 그런 흔들림과 고통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혹 빈센트의 작품에서라면 모를까.
작품은 나름의 완결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작은 흔들림은 색채와 형태 따위의 복잡한 구조 속으로 숨어버린다. 사람들이 작가의 창작노트를 훔쳐본다면 미묘한 흔들림을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도 마치 누군가가 볼 것을 예상하고 쓰는 일기와 다를 바가 없다. 작가의 흔들림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은 평론가가 가족, 가까운 친구 정도이다. 또한 작품활동에 오랜 시간동안 상당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가끔 사람들이 북한미술을 보고 `흔들림이나 고뇌`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장하는 바가 너무 또렷하고, 비판의 여지가 없어 인간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북한미술을 비판하는 사람은 주로 작품 하나 하나가 아니라 `북한미술` 전체를 겨냥한다. 이것은 북한의 주체사상과 체제비판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미술이 우리에게 알려진 때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충분한 자료와 연구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북한화가의 작품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사회적 합의와 토론, 비판을 거쳐 나온 것들이다. 화가 개인의 흔들림은 사회구조 안에서 정화되고 걸러진다. 이것 또한 북한사회의 다른 점이다.
물론 북한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술잔을 기울이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한다면 나름의 흔들림과 예술적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이해하고 달래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어우러지는 그 날은, 통일의 날이다.
사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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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향가/김영호/조선화/140*350/1985 |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북한화가 김영호가 그린 <사향가>라는 조선화이다. 작품의 가로 길이가 3미터 50센티나 되는 대작이다.
이 작품은 항일무장투쟁 대원들이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장소는 북만주 어디쯤일 것이고 보름달 휘엉청 떠있는 늦은 밤이다. 가슴을 녹이는 애절한 피리소리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상념에 젖는다. 담배를 피워 문 사람도 있고, 애써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다.
화면 중앙의 여성대원은 나무에 기댄 채 가슴에 손을 얻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고향의 산천이 한 손에 잡힐 듯한 표정이다. 좌측 화면의 소년대원은 고향에 대한 생각보다는 피리 부는 것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갈색조의 은은한 느낌이고 서정성이 돋보인다. 과장해서 그린 보름달도 크게 어색하진 않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북한미술을 처음 대한 사람들은 으레 `이발소그림`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티에르를 배제한 화려하고 은은한 색채, 강하지 않은 명암, 서정성과 낭만성, 순간포착 따위의 요소는 확실히 `이발소그림`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런 생각의 바닥에는 색이 칙칙하고 두터운 마티에르와 알 수 없는 형태를 가져야만 고급미술이라고 여기는 의식이 깔려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의 경계가 애매하며, 고급 취향을 위한 미술보다는 보통 인민들이 선호하는 그림을 추구한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문작가의 어려운 작품보다는 저렴하고 멋있는 이발소그림을 선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실제 투자목적으로 작품을 사고 파는 경우 말고, 그냥 좋아서 사는 작품의 대부분은 은은하고 화려한 색상의 정물화, 고향산천을 인상파 풍으로 그린 풍경화이다. 작품의 내용도 단순하거나 추상적이다. 작가의 수상경력이나 이름을 보지 않는다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그림도 많다.
북한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인민이 좋아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그림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화가는 특권층이 아니며, 우리와 같은 스타시스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별히 돈을 많이 벌 수도 없다. 따라서 북한미술에서는 인민들이 좋아하는 사실성, 낭만성, 낙관성 따위가 짙게 배여 있으며, 비판, 부정, 퇴폐, 개인주의 요소는 부정한다.
우리가 어떻게 비판하든 북한미술은 나름의 논리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물론 미술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흐름에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다.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긴장관계가 풀려 인민들의 생활이 향상되면 거기에 맞는 다양하고 질 높은 미술문화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이발소그림` 같다는 자기중심적 비판보다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 특권층이 아닌 보통 인민들의 정서와 수준에 맞는 미술문화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