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국] 北은 「남과 북은 힘을 합쳐 미국을 몰아내고 통일하기로 하였다」고 해석할 듯

2000-10-10     연합뉴스
對北전문가 분석 - 남북공동선언문 精讀

한영국(통일정책연구원 연구원)

연방제는 「自主化」된 남한 정부와 하는 것

6월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 동안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정상회담은 5개항으로 된 남북 공동선언을 결실로 남기고 막을 내렸다. 이제 들떴던 기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결과를 재평가하고 앞으로 전개될 사태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공동선언에 담긴 핵심 합의사항들은 지극히 원론적이고 방향적인 성격을 띠 고 있어 그대로는 남북관계에 구체적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개최될 당국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이 합의사항을 구체화하고 실천에 옮길 방안을 도출해야 하는 과정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전망은 반드시 낙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과 1990년의 남북기본합의서의 경우를 통해 경험했다시피 남북간에는 합의 서 이행 방법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인해 합의서 자체가 死文化(사문화)되 어 버린 경험이 있다.

앞서의 두 합의서가 이러한 운명에 빠지게 된 원인은, 당장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여 엄연히 존재하는 양측간의 견해 차이를 대화 과정에서 정면으로 제기하여 해결하기보다는 이러한 차이를 기술적으로 적절히 배분하고 쌍방 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한 문구를 선택하여 합의서를 작성하고는 이행단계에 들어가서는 각기 자기측의 논리에 입각하여 恣意的(자의 적)으로 해석하려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전례를 염두에 두고 보면 이번 남북공동선언도 향후 남과 북이 각기 자기측 통일논리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게 되고, 앞으로 이 선언을 구 체적으로 이행하는 데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이번의 통일선언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 앞으로 있을 당국간 회담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통일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북한의 통일론은 분단이 외세의 개입에 의해 발생했으며, 남측지역에 대한 외세의 개입이 지속됨으로써 통일이 지연되고 있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른바 反외세 민족자주화 문제를 통일로 가는 방법론의 핵심으로 삼고, 남과 북의 전체 민족이 단결하여 외세와 反통일 세력에 대한 투쟁을 구체적 행동강령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민족자주화 과정 이 북한 통일정책의 첫 단계에 해당한다.

그 다음 단계가 우리가 흔히 북한의 통일방안이라고 알고 있는 남북연방 창설이다. 즉 외세가 축출된 후, 자주성이 회복된 남측과 북측이 각기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통일적인 상부구조를 만들어 연방을 창설함으로써 통일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따라 북한은 통일을 「조선반도 남쪽에 서 외세를 몰아내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적 자주성을 회복하는 문제이며, 남북간에 연방제를 실시하는 문제」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통일논리를 염두에 두고 이번 공동선언에 어떤 문제점이 개재되어 있는지, 당국간 회담을 비롯하여 향후 남북관계에 어떠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인지 전망해 보기로 한다.

우선 제1항에 통일문제의 自主的(자주적) 해결이 규정되어 있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제1항은 그 문서 전반을 규제하는 보편적 원칙이 된다는 점에서 이 조항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북 한이 自主(자주)를 주한미군 철수 주장의 근거로 이용해 온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自主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의 통일논리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自主는 남측을 외세, 곧 미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공동선언 제1항,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부분을 북 한식으로 해석해 보면, 「남과 북은 서로 힘을 합쳐 미국을 몰아내고 통일하기로 하였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북한은 이 조항을 통해 우리 정부와 북한간의 反美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연합제=연방제?

1998년 8월 金大中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북측에 기본합의서의 이 행을 촉구하자, 북한은 『미국의 영구 强占(강점)을 애걸하면서 민족 自主 를 핵으로 하는 조국 통일 3大 원칙을 재확인한 북남합의서의 정신에 대해 운운할 수 있는가』라고 「공개 질문」했다.

물론 북측이 우리 정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反美 연합전선을 구축하자는 극단적인 요구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공동성명의 이행 문제 협의과정에서나 우리 정부의 대내외 정책 수행과 관련하여 이 조항을 들어 문제를 제기해 올 소지는 다분히 있다고 본다. 이 조항은 우리측이 북한의 주장을 수용한 결과임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측으로서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자주적 통일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에 굳이 문서마다 강조해서 명시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우리측이 합의 도출을 위해 노심초사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제2항, 즉 우리측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낮은 관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다」는 조항은 합의 배경이 상당히 의문스럽다. 이른바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1991년 김일성이 「잠정적으로 지역정부에 점차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1992년 9 월 전금철이 언급한 「지역정부에 외교와 국방권을 부여하는 느슨한 연방제 」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남측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측의 사회주의 체제가 공존하는 기초 위에서 연방정부를 구성,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다는 기존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을 바탕으로, 잠정적으로 지역정부에 외교와 국방권의 행사를 부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북한의 이 방안은 연방 구성국이 외교와 국방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형태가 가능한지 등 그 자체로서도 모호한 점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점 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 방안은 하나의 연방국가로 통일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개의 독립국가의 존속을 전제로 하는 국가연합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문제와는 별개로 북한이 이 조항을 근거로 우리측에 대해 이른바 反외세 자주화를 강요하거나 우리측의 외교정책에 대한 시비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간 통일방안 논의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자주」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측의 통일논리에 의하면 연방제는 反美 자주화 투쟁을 통해 남한지역이 「자주성을 회복한 후」 그 다음 단계에 시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통일방안 논의의 선결조건으 로 「자주」를 강요할 소지가 없지 않다.


국군포로·납북자 송환은 언제나

제3항 이하는 교류와 협력에 관한 실천적 문제들로서 남북간에 이미 실행에 옮겨본 경험이 있거나 여러 수준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이므로, 頂上간 합의사항으로 내세우기가 조금은 쑥스러운 문제들이다.

그중에서도 이산가족문제가 1984년에 한 차례의 방문단 교환으로 마무리된 것은 큰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전체 이산가족들이 보편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항구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계속될 수 있는 방안이 도출되었어야 했다고 생각된다. 아직 우리 사회 내부에서조차 공감대가 확고하지 못한 非전향 장기수 문제해결은 합의사항에 포함되면서도 국군포로와 납 북자들은 제외되었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 문제들은 당국자 회담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월간조선 2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