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비판하면 북한 동조자? (한겨레 2000.7.13)

2000-10-10     연합뉴스
조선, 국내 비판세력을 `사술집단` 매도
"반북대결등 반통일 논조 반성해야" 지적

그동안 반북 대결적인 보도태도를 보여 온 `조선일보`가 북한 당국과 격한 설전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일보가 자신을 꾸준히 비판해 온 국내 비판적 단체들을 마치 북한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사술집단`으로 매도해 말썽을 빚고 있다.

조선일보는 11일치 `조선일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통단 사설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썼다.
"근년에 조선일보의 대북 논조를 가지고 일부 사람들은 조선일보를 `반통일 신문`이라고 매도해 왔다. 그런데 지난 8일에는 평양방송도 조선일보를 `통일에로의 민족의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반통일적` 신문이라며 `조국통일의 길위에 가로놓인 걸림돌은 들어내야 하고 암초는 폭파하여 없애버리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그리고 조선일보에 대한 국내의 비판을 "조선일보와 기자들을 매도하거나 저주하는 주문"이라고 규정한다.

한일장신대 김동민 교수(언론학)는 "조선일보 폭파 운운하는 북한의 태도는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서, 이는 오히려 국내 언론운동세력의 설 자리를 좁히는 효과를 낳는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조선일보가 자신에 대한 국내 비판세력을 사술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민족화해에 딴죽을 거는 반통일 수구언론의 본질을 감추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조선일보의 통일관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대결적 흡수통일 노선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남쪽의 체제와 이념에 따른 통일이 있고, 북쪽의 이념과 주의에 따른 통일이 있을 수 있다. 두 체제가 절충되어 중간에서 만나는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11일치 사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남한의 남북연합안과 북한의 낮은 수준의 연방제에서 공통점을 찾기로 합의한 6.15 남북 공동선언 제2항에 대한 전면 거부에 해당한다.

조선일보는 여러차례 사설과 칼럼을 통해 `우호적 분단`과 6.15 남북공동선언문 정신에 기대어 `서로 다름속의 공존`을 주장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흡수통일관 속에서 `우호적 분단`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비판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언론학계 일각에서는 "남북 관계보도는 `언론의 자유`라는 차원보다는 민족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한 `언론의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게 타당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가 내세우는 미국식 자유주의 언론관에 바탕한 언론의 자유에는 언론의 책임이 따른다는 얘기다. 실제로 1947년 미국 각계 전문가 13명으로 이뤄진 `허친스위원회`는 "언론의 자유가 여론 독과점, 일부 집단에 대한 편견 강화, 언론 비리의 은폐 등의 부작용을 낳아 오히려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며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이란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멀리는 친일과 일본 제국주의 미화, 가깝게는 군부독재를 찬양하고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탄압을 부추겼으면서도, 이를 반성하기는 커녕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민주화 과정에 무임승차했던 조선일보가 이제 언론의 자유를 내걸며 민족화해의 고정에 무임승차하려 한다. 조선일보는 언론의 책임을 깨달아야 한다."

얼마 전 `한겨레`에 `조선일보여, 우리를 고소하라`란 의견광고를 낸 모임인 `우리모두`(urimodu.com) 주장의 요체다. 조선일보는 이들과 이들의 주장을 `사술집단`과 `조선일보를 저주하는 주문`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조준상 기자 sang21@hani.co.kr

한겨레 200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