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통일여정에 쓴약인가 걸림돌인가

2000-10-10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ckkim@tongilnews.com


1. 시대의 흐름과 보수주의


일찍이 산업혁명의 시기 노동자들이 갈수록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게 되면서 그 원인을 기계 때문이라고 보고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기계 문명은 더욱 융성하게 되었고,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함으로써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세우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해 나가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당대가 처한 현실에 대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올바르게 대응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래 한반도의 통일정세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시대의 흐름을 되돌아 보고 먼 미래를 예견하며 올바른 대응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최근 통일정세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신중히 검토되고 올바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2. 보수진영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고, 여기서 합의된 6.15 남북공동선언 역시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합의문과 최근의 급변하는 통일정세를 둘러싸고 국내의 의견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우리사회에 소위 보수주의로 분류되는 쪽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과연 이들의 주장은 통일정세에 쓴약의 역할을 할 것인지 걸림돌의 역할을 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그렇다면 먼저 보수주의 진영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먼저 분명히 할 것은 보수주의 진영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회적 입지나 철학적 입장, 정치적 파벌이 다양하여 단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표적 보수 정치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김용갑의원은 최근 DJ의 대북정책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해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대한매일 2000.9.10)

그러나 대체로 보수진영이라고 분류되는 정치인, 언론, 각계 인사들의 공통성은 그간의 통일관련 사안에 대한 입장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세력과 언론에서는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세력이 그러하고, 사회각계에서는 반공단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제1당으로서 그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이들의 입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6월 15일 한나라당은 김대통령이 귀국하기 전에 `김대중 대통령 귀국에 부쳐`라는 성명을 통해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관련자료일지 참조) `자주적 통일` 부분이 주한미군철수 요구로 즉각 이어질 수 있다는 점부터 시작해 핵과 미사일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는 점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공동선언에 대한 전면적 비판에 나섰다.

이러한 시각은 국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6월 20일에 열린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남북정상회담의 문제점들에 대해 통일부 장관을 거세게 몰아부쳤고, 7월 12일에 열린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도 이런 기조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심지어 한나라당 김기춘의원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이며 국군통수권자인 우리 대통령이 북측 자동차에 동승함으로써 우리 나라는 1시간 가까이 국가원수 부재의 통치공백이 생겼"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정상회담 때문에 통일지상주의적 논의가 분분하고 주적개념이 흔들리는 등 우리 내부의 이념교육에 많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관련자료일지 참조)

이런 논란은 9월 2일 비전향장기수 북한송환을 둘러싸고 다시 한번 재현되었다. 보수진영의 대체적인 주장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일방적 북송은 국군포로나 납북자들의 문제를 도외시한 상대주의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것이다. 한동안 보수적 색채를 띤 언론들의 지면에서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가 연일 거론되었다. 마침내 비전향장기수들이 송환되는 당일에 납북자가족모임과 전물군경유가족회 등은 임진각과 통일대교 남단 등지에서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관련자료일지 참조)

▶지난 9월 21일 부산역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김대중 정권 국정 파탄 범국민 규탄대회 [사진-시사저널]

이후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적십자회담,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각종 남북회담에 대한 보수진영의 평가는 대단히 비판적이었고 이를 둘러싼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의 첨예한 성명전이 이어졌다.(관련자료일지 참조)

특히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방북을 둘러싼 논란과 경의선 복원 기공식 행사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참석 여부를 둘러싼 여야간 논쟁은 이런 시각차이를 가장 잘 드러내 보였다.(관련자료일지 참조) 이회창 총재는 지금은 방북의 시기가 아니라고 공식 발표하는 한편, 경의선 기공식 행사 당일날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더구나 김용갑 의원은 "경의선 복구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거꾸로 남침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국민일보 2000.09.18)

최근에는 북한에 차관 형식의 식량지원 여부를 두고 한나라당은 물론 보수 언론 등의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관련자료일지 참조)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런 문제들에서 항상 하나의 목소리만을 내온 것은 아니었다. 경의선 복원 기공식 행사에 이부영, 김덕룡, 손학규 의원 등이 참석했는가 하면 김원웅 의원은 한나라당의 대북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기도 했다.(관련자료일지 참조)

3. 보수진영 감상의 두가지 별미

그런데 여기에 예측되지 않았던 변수가 하나 발생했다. 다름 아닌 김영삼 전대통령의 등장이 그것이다. IMF사태를 촉발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사실상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김 전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김전대통령은 두차례의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하고 있으며, 대다수 국민들이 적화에 따른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우려하고"있다고 주장하며 `金正日의 反民族的 犯罪行爲를 糾彈하고 告發하는 二千萬 國民 署名運動`을 전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런 귀결로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저지하자고 호소하며 "이것은 제2의 3·1운동"이라고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10월 5일 `김정일 한국방문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고 투쟁위원장에 이철승씨가 선출되었다.(연합 2000.10.5)

이러한 김영삼 전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경실련은 "모처럼 일고 있는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수구냉전세력을 대변하는 듯한 그의 발언은 전직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반박하였는가 하면(관련자료일지 참조), 김전대통령과 가까웠던 재야출신인 이삼열 교수, 박형규 목사, 서경석 목사 등이 모임을 갖고 YS의 대북 관련 행보가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김전대통령을 방문해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전대통령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동아 2000. 9.16)
이러한 김 전대통령의 처신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코메디를 넘어서 국민들의 걱정거리가 된 듯하다"(통일뉴스 2000.8.26)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대목은 대표적 보수우익 정치인이라 할 수 있는 김용갑의원이 이러한 김전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YS가 남북관계를 둘러싼 보수세력의 순수성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면서 "YS는 보수의 중심에 서서 운동을 전개하기에 적합치 않은 인물"이라고 비난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대표적 보수우익 언론인이라 할 수 있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시각은 상당수 국민들의 생각과 울분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며, "억눌려 있는 듯한 보수층의 언론자유 문제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이란 인식이 확산되면 한나라당에 대해 보다 과감한 행동을 촉구하는 압력이 형성될 수도" 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중운동이 거리로 나올 때 과거 민주화 투쟁시기에 있었던 장면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는 기대 섞인 평가를 하고 있다.(관련글-조갑제 참조)

김영삼 전대통령의 행보 못지않게 흥미로운 관심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역시 조선일보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사회의 보수주의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조선일보는 남북정상회담과 이후의 사태전개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논조를 견지하고 있다.
더구나 북측에 의해 철저히 거부당한 경험도 있는 조선일보로서는 북한이나 남한 정부 모두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는 지금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북한의 비난과 위협이라면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라 무대응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남쪽 일각에서는 「남북 큰걸음」에 저해되는 언론이라며 조선일보와 기자들을 매도하거나 저주하는 주문들이 연일 횡행하고 있다"며 상당한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다.(조선 2000.7.11)
▶조선일보 사설들


조선일보는 남북정상회담 이전부터 안티조선일보(www.urimodu.com) 운동의 도전을 받고 있었으며, 8월 7일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지식인 1차 선언`에 이어 2차 선언이 이어졌고, 9월 20일 `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가 발족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독재권력 시절 북한관련 보도에서는 오보를 일삼으며 남북적대적 관계를 부추키기에 급급했던 조선일보는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최근까지도 북한의 대남전략 운운하며 안보상업주의를 버리지 않고 있다"며 조선일보는 반통일 수구신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관련자료일지 참조)

또하나 조선일보와 관련해서 눈데 띠는 대목은 조선일보의 국방부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국방부의 반론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송이전달을 위해 방문한 북측 박재경 대장을 국방부 장관이 면담을 졸랐다는 비판(조선 2000.9.15)에서부터 우리군의 `주적개념`의 혼란을 지적하는 비판(조선 2000.10.2)까지 국방부를 향한 비판적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역시 "군 전체를 모독한 것이자 군의 명예를 심대히 훼손한 것으로서 그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역공에 나섰고(국방 2000.9.15), "명확한 사실관계와 객관적 검증도 없이 `군을 흔들고 폄하하는 것`이야말로 군과 국민들을 이간시킴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적을 이롭게 하는 어리석은 행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는(국방 2000.10.5) 강력한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선일보가 북한섹션을 신설해 화제가 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논조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북한관련 보도를 두고 논설위원실과 편집국이 견해를 달리해 적잖은 마찰이 있어 왔다고 전하기도 한다.(미디어오늘 2000.9.28) 통일정국에서 조선일보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는 대목인 것이다.

4. 보수주의 진영의 칼끝

최근 통일정세에 대한 보수주의 진영의 일관된 반대와 문제제기는 과연 어디를 겨냥하고 있을까? 물론 겉으로는 점진적이고 균형잡힌 남북관계를 촉구한다는 겉포장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실상 최근의 통일정세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며, 김대통령의 통일정책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당연히 그 칼끝은 김대중대통령과 진보진영에 겨눠져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보수진영은 이를 우회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임동원 국정원장이다. 박지원 장관이 비리사건으로 자리를 물러한 지금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남북관계에서 특사역을 맡고 있는 임국정원장이야말로 가장 적당한 공격대상인 것이다. 한나라당은 공식논평을 통해 임국정원장의 퇴진을 요청하였고, 보수언론들 역시 이를 거론하고 있다.(관련자료일지 참조)

또하나의 경우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공격이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이미 `김정일의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규탄하고 고발하는 2천만 국민 서명운동` 전개를 표방하고 나섰고, 우익단체들은 `김정일 한국방문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6.25남침, 국군포로 억류, 아웅산 폭탄테러, KAL기 폭파 등에 대한 시인.사과.보상 조치없는 김정일 답방반대를 내걸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근의 통일정국이 정부가 앞서나가고 민간 통일운동이 아직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진보진영에 대한 공격은 비교적 미미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이 활기를 띠고 전개될 경우나 진보진영이 국민정서를 넘어서는 우를 범할 경우 언제든지 보수진영의 공격의 칼끝은 예리하게 진보진영을 파고들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최근 북측이 당창건 행사에 남측 인사들을 초청한 것을 놓고 조선일보 등이 반대 여론을 싣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조선 2000.10.9)

5. 통일정국에서 보수주의, 쓴약인가 걸림돌인가

기름 보일러가 등장하면서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거의 사라졌다. 그것도 매우 짧은 시간에. 흔히 새로운 것이 등장하게 되면 옛것은 자연히 그 자리를 내놓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새것과 옛것의 갈등과 마찰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보수주의는 늘 기존의 가치를 고수하고자 하는 긍정적 측면과 새로운 가치의 유입을 거부하는 부정적 측면을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딜렘마를 안고 있다.

갑작스런 남북관계의 해빙과 이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을 걱정하고 점진적 접근과 보수층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는 보수적 관점은 통일정국에서 쓴약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정국 자체를 부정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주의는 도도한 역사의 물결 속에 익사하고 말 것이다.

바야흐로 보수진영에 커다란 도전이 가로놓인 상황에서 이미 한나라당은 내부에서의 갈등과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도 새로운 자기정립을 강요받고 있다. 통일정국에서 보수주의가 쓴약이 될 지 걸림돌이 될 지는 보수진영 내부의 자기 성찰과 앞으로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