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 당창건 행사로 속앓이
2000-10-09 연합뉴스
정부는 8일 오후 3시와 오후 8시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4층 통일부회의실에서 남측 사회단체 참관단을 위한 북한 방문 안내 교육을 그야말로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실시했다.
단체별로 3명, 수사중이거나 재판 게류중인 인사 제외 원칙에 반발하는 일부 단체를 의식해 참관단의 실무지원반 형식으로 방북 인원을 5명 늘려 결국 30명이 조금 넘어서는 규모로 가닥을 정리했다.
일단 정부는 고심 끝에 참가자로부터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에 단순 참관하며 일체의 목적 외 활동은 하지 않는다 ▲단순 참관 목적을 벗어나는 어떠한 정치적 언동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는 조건부로 방북을 승인하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 각서에는 이같은 사항을 어길 경우 초래되는 결과에 대해 당사자가 책임을 지며 그에 따른 불이익과 처벌도 감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의 시민사회가 북측의 정치적 공세에 현혹되지 않을 만큼 성숙했고 교류를 통한 화해라는 정책적 기본 이념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간다는 정부의 이같은 결정에는 고심의 흔적이 담겨있다.
북측이 지난달 29일 정부.정당.사회단체 합동회의에서 남측 인사에 대한 초청의사를 밝혔고 이달 3일 편지를 전달해 왔지만 정부는 7일에서야 뒤늦게 입장을 확정했다.
각 단체의 방북신청이 들어온 다음에 관계부처별 입장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는 정부측 설명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사실 단체별 3명이라는 인원 제한과 법적 효력이 의문시되는 각서 작성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은 아직 남측 사회 내부적으로 당창건 행사 참석을 수용하지 못하는 여론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회단체는 정부의 제한적 방북 승인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한완상 상지대 총장을 비롯해 각 단체 방북 신청자들은 8일 낮 박재규 통일부 장관을 면담하고 `각 단체의 참여인원을 제한하지 말고 재판에 계류중이거나 수사중인 사람에 대해서도 방북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민주노총은 9일 오전 7시 회의를 다시 열어 참관단 참여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중립적으로 말해 정부는 이번 당창건 방북단을 위해 이례적으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방북 안내교육을 서울 수유리 통일교육원이 아닌 정부 중앙청사에서 실시했고, 보통 2주 정도 걸리던 방북승인도 2∼3일만에 신속하게 내줄 계획이다.
게다가 방북단의 편의를 위해 북측에 판문점 개방을 요구한 것은 물론 북측이 일방통보해 온 항공기의 김포공항 착륙을 선뜻 받아들여 실무협의까지 가졌다.
그런데도 각 단체의 반발이 제기되자 정부의 고심은 더해만가고 있다. 가뜩이나 식량차관 제공을 둘러싸고 성급함과 분배 투명성의 확보를 지적하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자칫 일부 단체 인사의 노동당 창건 행사 참여로 국민감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걱정이 바로 그것이다.
또 최근 북측이 공동선언 직후와는 달리 선전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조짐이어서 불안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7일 성명을 발표하고 남측의 국방예산 증가를 비난했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이제 남한 사회내에서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으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남북관계를 끌어가야할 시점`이라며 `남북 모두 공동선언의 소중한 실천을 위해 감성적인 대응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2000/10/08)